사설

배상 아닌 ‘공동기금’·사과 대신 ‘담화 계승’, 해법 아니다

시민들이 5일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5일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이르면 6일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내용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국내 기업 출연으로 재원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배상 판결금을 지급하고, 양국 재계를 대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미래청년기금’을 공동 조성·운영한다는 것이다. 또 한국 정부가 이 같은 해법을 먼저 발표하면 일본 측이 과거사에 대한 지난 정부들의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힌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피고기업의 직접 배상’과 ‘일 정부의 직접 사과’가 빠진 방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한·일 간 새로운 불씨만 될 것이 뻔한 만큼 정부는 이를 발표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곧 발표할 방안의 핵심은 배상금을 내는 주체를 일본 기업이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의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들로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18년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피고기업의 배상 책임을 확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어긋난다. 피고기업들이 미래청년기금에 돈을 내는 방식은 직접 배상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담화 계승’ 방침도 피해자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과거 정부의 담화를 승계하는 것으로 사과의 뜻을 대체한다는 방식인데, 이는 ‘지금 사과한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사과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는 매우 분명한 사죄의 뜻을 담았지만, 이후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아베 신조 정부 이래 현 기시다 후미오 정부까지 모든 일본 정부는 겉으로만 한·일관계 개선을 말할 뿐 실제로는 온갖 망언을 일삼고, 반한 감정을 조장해왔다.

한·일관계 개선은 중요하며, 이를 위해 강제동원 문제를 조기에 푸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너무나 성급하고 미숙했다.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만 외치다 보니 속내를 다 드러내 협상의 주도권을 일본에 내줬다. 결과적으로 가해자인 일본은 꿈쩍도 않는데 우리가 합의를 구걸하는 꼴이 됐다. 강제동원 해법에서 중요한 것은 합의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지금 알려진 방안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대일 외교의 심각한 실책이 되어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이 뻔하다. 정부는 발표하지 말고 방향부터 새로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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