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분노·일본 외면 속 “미래 위한 결단”이라는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해법에 대해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 말했다고 대통령실이 12일 전했다. 윤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정신의 계승과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등이 대선 때 외교정책이었다며 “공약을 실천한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실은 이 발언을 유튜브 쇼츠(짧은 영상)로 제작해 공개했다. 국내 반발이 거센 데다 일본도 호응을 보이지 않자 ‘여론전’으로 돌파하겠다는 의도로 본다. 그러나 이는 역사와 가치의 문제이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안이다. 그럴듯한 수사(修辭)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0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정부 해법에 대한 반대(59%)가 찬성(35%)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지난 9일 중의원에서 강제동원 자체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분노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하야시 외무상은 강제동원이란 표현이 적절한지 의원이 묻자 “(징용 등) 어떤 것도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최종 해결이 끝난 일”이라고 답했다. 이런 와중에 윤 대통령이 ‘미래를 위한 결단’임을 강조하다니 어처구니없다.

윤 대통령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한·일 공동선언을 정부 해법의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전제는 과거를 직시하는 데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나는 일본이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미래를 보라고 조언했다. 그것은 과거를 직시해야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선언의 중요한 반쪽을 빼놓고 ‘계승’을 언급하는 건 왜곡이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역대 내각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면서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사죄와 반성’ 표현은 피해갔다.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 해법을 ‘공약 실천’으로 지칭한 것도 견강부회다. 공약에 ‘셀프 배상’ 방안은 들어 있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실이 공개한 영상에선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 패에 적힌 글귀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가 부각됐다. 책임지겠다는 태도는 나쁠 것 없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통령 결정을 따르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윤 대통령은 겸허한 자세로 성난 여론을 들어야 한다. 오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 의사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지는 태도’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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