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9시간 노동’ 보완 지시한 윤 대통령,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토록 한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의 보완을 검토하라고 14일 지시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일 입법예고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 52시간(법정 노동시간 40시간 + 연장근로 12시간) 상한을 무력화함으로써, 특정 주 노동시간이 69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는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 푹 쉬자’는 취지로 설명하지만,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 문제는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보완’ 수준에 그칠 사안이 아니다.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윤 대통령은 정부 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근로시간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제도 개편의 본질”이라 했고, 노동부도 “근로자의 선택권과 건강권에 기반해, 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현행 제도의 경직성을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이번 개편의 본질은 노동자의 선택권·건강권 보장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과로사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기준이 ‘발병 전 4주 연속 주 64시간 노동’인데, 정부 안대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분기로 확대할 경우 과로사 수준까지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주 52시간 노동이 법제화된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초과노동과 공짜 야근에 시달리고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장근로 후 긴 휴가를 보장한다는 말은 노동자 교섭력이 약한 사업장에선 현실성이 없다.

노동부는 입법예고 시한인 다음달 17일까지 각계각층에 제도 개편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해 보완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사탕발림해봤자, 사용자 이익을 위한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물론, 이른바 MZ세대 노조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개편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둘러대기와 ‘찔끔 수정’으로는 성난 여론을 달랠 수도, 야당을 설득할 수도 없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17시간)보다 311시간 길다.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개편안은 백지화돼야 한다. 노동자는 돌리면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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