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혼선 거듭하는 노동시간 개편, 정부안 완전 폐기가 답이다

노동시간 개편을 둘러싼 정부의 혼선이 더 이상 참고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안상훈 사회수석을 통해 전한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날(20일) ‘주 60시간 이상 무리’를 두고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60시간이 아니고 더 이상 나올 수도 있다”고 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설명과 배치된다. 사회수석이 전한 대통령 입장을 나흘 만에 다른 참모가 뒤집고,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재차 정정하는 ‘갈팡질팡’의 연속이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 개편을 물건값 흥정하듯 하는 경솔함에 분노가 치민다. 이런 역대급 혼선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대통령 입장에 대해 가이드라인이 아니라고 한 발언이 대통령과 조율 없이 나왔을 리 만무하다. 노동과 노동시간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광범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섣불리 개편안을 내놨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윤 대통령 스스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 아닌가. 서울대 노동자·학생 연대활동기구가 이날 대자보를 통해 밝힌 것처럼 노동시간은 ‘생명과 삶, 시간에 대한 권리’의 문제다.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에 관한 노사 합의 구간을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자유롭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노사 양측의 선택권이 넓어진다”며 ‘몰아서 일하는’ 개편안 골격은 관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주 69시간에서 몇시간 줄여본들 ‘장시간 압축노동’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노동시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 생체리듬이 깨지고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 기존 주 52시간 체제에서도 매년 500명 넘는 노동자가 과로사하고 있는데, 노동시간을 연장하면서 ‘건강권’이니 ‘선택권’이니 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일과 육아를 어렵게 병행해온 맞벌이 부모들 가운데는 노동시간 개편이 현실화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돌보는 육아는 몰아서 할 수 없다. 혼선을 수습하는 길은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퇴행적 생각을 깨끗이 접고, 정부안을 완전 폐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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