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분노엔 답 않고 독선·왜곡·변명 일관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며 “저마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강제동원 해법과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외교참사’ 논란이 확산되자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 일본에 면죄부를 주면서도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해 ‘굴욕외교’ 비판을 야기한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가량이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비판적이다. 정당한 분노를 ‘배타적 민족주의’로 치부하다니 독선적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23분간의 모두발언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내용도 형식도 진정한 소통과 거리가 멀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수십 차례에 걸쳐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고 했다. 일본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했지만 ‘사죄와 반성은 더 이상 없다’고 한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과거사 문제에서 퇴행했다. 이번 정상회담 상대방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역대 담화에 담긴 ‘반성’ ‘사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일본이 수십 차례 반성과 사과를 했다고 하다니 윤 대통령은 어느 나라 지도자인가.

윤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거론하며 “불행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본과 새로운 지향점을 도출하고자 한 노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달았다. 이 부분을 빼놓은 채 계승을 언급하는 것은 왜곡이다. 윤 대통령은 또 1·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프랑스의 화해를 예로 들었는데,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다니 어이가 없다. 독일은 전쟁범죄에 대해 ‘변명 없이’ 사과하고 자발적으로 피해 배상 노력을 했다. 어떤 세력이 집권해도 지도자들은 일관되게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또한 나치즘이 다시 발호하지 못하도록 자국민을 교육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는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과 국민 여론을 살피지 않은 채 덜컥 합의해 놓고, 논란이 커지니 뒤늦게 설득에 나서는 건 일의 선후가 바뀐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결단’을 강조했는데, 그토록 떳떳하다면 기자회견을 열어 민감한 질문에 답했어야 옳다.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해서는 분노만 돋울 뿐이다. 일본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철폐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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