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T 윤경림 후보마저 사퇴, ‘관치 폭거’ 끝은 어딘가

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23일 사의를 표명했다.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정 이후 여권의 전방위적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내정된 지 16일 만에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윤 후보가 사퇴하면 KT는 오는 31일 주주총회에 맞춰 새 대표 후보를 선임할 시간 여유가 없다. 국내 대표 통신기업이 외압에 의해 최고경영자(CEO)가 없는 경영공백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민간기업 인사를 이토록 쥐고 흔드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부르짖어온 자유시장 경제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윤 후보는 전날 이사진 등과의 간담회에서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규제산업인 통신사업 특성상 버티는 것이 기업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권의 윤경림 후보 흔들기는 노골적이었다. KT가 구현모 현 대표의 연임 의결을 취소하고 차기 대표 후보군을 원점에서 추렸지만 대통령실이 KT 대표이사 선임과정이 불투명하다고 했고, 여당은 윤 후보를 ‘구현모 아바타’라며 몰아붙였다. 이어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구현모 대표와 윤경림 후보를 일감 몰아주기와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일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여기에 KT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방위의 압박이 윤 후보에 가해졌다. 반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윤 후보의 대표 선임에 잇따라 찬성을 권고했고, 소액주주들이 윤 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며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예상되던 터였다. 윤 후보는 주총에서 대표에 선임되더라도 정부의 압박이 기업 운영에 줄 부담을 우려했던 것 같다. 주총에서 대표를 선출하지 못하면 KT는 당분간 경영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31일 주총에서 사내·사외이사 선임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윤 후보가 사의를 표명하자마자 여권이 미는 대표 후보들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 2월 KT 차기 대표 공모에 지원했다 탈락한 윤석열 캠프 출신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또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하다. 민영화된 지 20년이 넘은 민간기업의 인사에 권력이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개입하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KT 사태는 현 정권이 직권을 남용한 최악의 관치 행태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Today`s HOT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사해 근처 사막에 있는 탄도미사일 잔해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구의 날 맞아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한국에 1-0으로 패한 일본 폭우 내린 중국 광둥성 교내에 시위 텐트 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 황폐해진 칸 유니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