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자감세로 빈 나라 곳간, 유류세로 채울 생각 마라

지난 20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지난 20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연합뉴스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유류세 인하 정책의 폐지나 축소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 추산으로 유류세 인하 후 지난해 5조5000억원의 세수가 줄었다. 최근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 세금을 오는 5월부터 다시 걷겠다는 것이다. 올 들어 세수 결손이 심각해진 건 사실이다. 지난 1월 기준 국세 수입은 42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조8000억원이나 줄었다. 한 해 세수 목표 대비 징수 금액을 나타내는 국세 수입 진도율은 1월 기준 10.7%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세수 결손은 재정 악화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세수 결손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 지난해 정부와 여당은 과표구간별로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하한 법인세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감면 정책을 폈다. 이런 ‘부자 감세’ 정책들로 인해 올해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17조6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전국 공동주택 1486만가구의 공시가격도 지난해보다 20%가량 낮춰 부동산 관련 세금을 그만큼 덜 걷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급조된 ‘K칩스법’은 반도체 기업 등의 설비투자에 세액공제를 늘려줘 내년엔 3조6500억원, 내후년엔 1조37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처로 정부 부채가 심각히 늘어났다며 재정 건전화를 국정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한쪽에선 대규모 감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과 자가당착이 없다.

유류는 서민과 부자 모두에게 필수품이다. 현재 정부는 휘발유엔 25%(ℓ당 205원), 경유는 37%(ℓ당 212원)의 유류세를 할인해주고 있다. 정부가 세수 부족을 이유로 유류세 인하를 폐지·축소하면 결국 법인세·종부세 감세로 생긴 세수 결손을 ‘서민 증세’로 채우는 셈이다. 유류세 인하는 서민 지원뿐 아니라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장점도 크다. 유류세를 올리면 물가를 전반적으로 다시 자극할 우려도 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민생이 엉망이다.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이 지난해 3·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소득 증가가 물가 상승을 못 따라가고 있다. 조세를 이용한 적극적인 소득 재분배를 추진해도 부족한 판에 부자·대기업 세금은 깎아주고 서민 세금을 늘리려는 것인가. 기업 감세가 투자·고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정부 주장도 이명박 정부 시절 사실이 아님이 증명됐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세금 낭비가 없도록 예산 집행의 효율성·투명성을 높이고, 양극화만 부추기는 조세·재정 정책은 전면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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