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 ‘왜곡 교과서’에 뒤통수 맞은 한국의 ‘강제동원 면죄부’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초등학생이 내년부터 사용할 사회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기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독도에 대해서는 ‘일본 고유의 영토’ ‘한국이 불법 점거’ 표현을 강화했다. 일본 정부의 퇴행적인 역사수정주의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으로 한·일관계 복원에 나선 윤석열 정부가 또 한차례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일본의 후안무치한 ‘과거 지우기’를 강력 규탄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8일 교과서 검정심의회에서 통과시킨 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를 보면 징병 관련 기술에서 ‘지원’을 추가했다. 한 교과서는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는 표현을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바꿨다. 전형적인 물타기이자 왜곡이다. 또 다른 교과서는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에서 ‘징병해’를 삭제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지원했고, 징병제 영향은 크지 않았거나 시행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줄 표현들이다. 강제동원 기술에서는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는 대목에서 ‘끌려왔다’를 ‘동원됐다’로 바꿨다.

모든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도 들어갔다. “한국에 불법으로 점령돼” “70년 정도 전부터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 등의 표현도 추가됐다. 올해 100주년이 되는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관련 기술이 지워지고, 한국이 고대 일본에 미친 영향을 축소했으며, 임진왜란 기술에서 조선의 피해를 뺀 교과서도 있었다. 이웃나라에 가한 죄악을 미래세대에게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이 ‘일본식 미래지향’인가.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2021년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각의에서 ‘강제연행’ ‘강제노동’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국회 답변서를 채택했고, 지난해 고교 교과서에선 ‘강제연행’을 동원으로 바꿨다. 이런 식이라면 일제의 한국 강점 역사 전체가 미화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를 초치해 항의했다. 하지만 대통령부터 과거사를 제대로 묻지 않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줬는데 일본이 들을 리 만무하다. 일본이 채울 거라던 ‘물컵의 나머지 반’이 교과서 왜곡인가.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 일본에 양보만을 거듭했다. 그러나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외무상은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했다. 역사는 부인한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기억하고 지키지 않는데 가해자가 책임의식을 가질 리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과거사·영토 문제의 중차대함을 깨닫고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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