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기준금리, 재정 정책 활로 뚫어야

한국은행이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3.5%로 묶었다. 지난 2·4·5월에 이어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 6명 만장일치”라고 설명했다. 한은의 결정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시장의 예상과도 부합한다. 그러나 경제 위기 국면에서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정책 시도가 여의치 않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경제가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는 걸로 해석된다.

물가와 환율만 보면 한은은 이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야 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고 하지만 생필품을 중심으로 한 근원물가는 여전히 높고, 다음달부터 서울 버스요금이 300원 오르는 등 고물가 압박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달 말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되면 한·미 금리 격차는 2.00%포인트까지 벌어지고, 외국인 자금 유출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한동안 줄던 가계 대출이 3개월 연속 증가한 것도 기준금리 인상을 필요로 한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주택담보대출(814조8000억원)은 한 달 새 7조원 급증했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은행빚이 많은 ‘영끌’ 대출자와 자영업자들은 더 궁핍해진다. 최근 발생한 새마을금고 연체율 상승과 예금 인출 사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경기는 더욱 급격히 가라앉는다. 정부는 이달 초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한은이 본연의 임무인 물가와 금융 안정을 내팽개치고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출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은의 통화 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로 3계단이나 밀려났고,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정부 지출을 늘려 내수를 살리고, 대기업 외에 중소·중견기업의 수출도 적극 지원해 성장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 언제까지 전임 정부 탓을 하고, ‘건전 재정’에만 매달려 있을 것인가. 윤석열 정부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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