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내륙을 관통한 태풍 ‘카눈’이 전국을 할퀴고 지나갔다. 지난 10일 남해안에 상륙해 11일 새벽 북한 쪽으로 넘어가기까지 16시간 동안 강풍을 동반한 폭우를 쏟아내며 큰 피해를 냈다. 태풍이 북진하며 세력이 약해져 수도권 피해는 적었으나 영남·영동 지방에서는 침수·유실·낙하·파손 피해가 속출했다. 안전사고로 분류돼 태풍 인명피해 집계에는 빠졌지만, 대구에서는 하천에 빠진 시민 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났다. 경남 창원에서는 폭우에 맨홀 뚜껑이 솟구쳐 시내버스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아찔한 일도 벌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1일 이번 태풍으로 시설물 피해 379건, 이재민 1만5000여명이 발생했다고 밝히고, 위기 경보 수준을 가장 낮은 ‘주의’로 낮췄다. 정부는 피해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응급 복구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또 당분간 국지적인 호우가 예보된 터라 농작물 침수·낙과 등 농경지 피해가 늘어날 수 있어 2차 피해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카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처음 보는 태풍이었다. 우선 사상 최초로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백두대간을 넘은 태풍으로 기록됐다. 또 국내 상륙 후 진행 속도가 평균 시속 20㎞에 불과한 ‘느림보’였다. 지난해 9월 큰 피해를 낸 태풍 힌남노보다도 더 느렸다. 천천히 움직인 탓에 영동 일대에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그간 일본 쪽에서 북상해 동해안 쪽으로 우회전하던 태풍의 상궤를 벗어난 것이다. 게다가 뜨거워진 바닷물 영향으로 태풍 수명을 2주 이상 유지한 것도 특이했다. 카눈의 출현은 향후 기후변화로 더 특이하고 험한 태풍이 속출하리라는 경고다.
카눈 피해를 줄인 데에는 정부·지자체·민간의 선제적인 안전 점검·통제와 현장 대응 조치가 주효했다. 상시적인 재난관리 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이다. 갈수록 강력하고 예측불허인 기후재난이 빈발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대책도 계속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