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끝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해 육군사관학교 밖으로 이전하고 김좌진·이범석·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의 흉상은 육사 내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말년을 유복하게 보내지도 못했던 선열들이 후손들에게마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이것은 제대로 된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흉상 이전을 주도한 국방부는 시종일관 옹색한 논리와 오락가락 기준으로 비판을 자초했다. 국방부가 애초 육사 종합강의동 충무관 앞에 있는 5인의 흉상을 철거·이전하겠다며 밝힌 이유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 독립군·광복군 흉상만 있는 것이 역사 교육의 균형성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광복회 등 단체들이 대한민국 군의 뿌리를 왜소화하는 발상이라고 반발하자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자유시 참변 때의 독립군 탄압 역할을 부각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사료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이었다. 다수 연구자들에 따르면 홍 장군은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독립군 학살에 가담한 증거가 없고, 재판위원으로는 참여했지만 독립군 감형을 주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극우 유튜버의 주장과 흡사한 입장을 내고 그의 흉상이 육사의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했다.
결국 홍 장군 1인만 콕 집어 문제 삼기로 했지만, 그조차 일관되지도 않다. 육사 흉상은 철거하면서 국방부 홍 장군 흉상은 보존하기로 했다. 25년 전 설치된 국방부 흉상에는 ‘문재인 정권이 성급하게 설치했다’는 논리를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인가.
이번 일은 이명박 정권 때 ‘뉴라이트’ 세력이 벌인 건국절 논란의 재판이다. 당시 정부는 8·15를 건국절로 지정하려다 헌법 정신 위배라는 비판을 받으며 결국 포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 3·1운동으로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기 때문에 일제하에서도 나라는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헌법 해석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독립운동 역사까지 이념 전쟁에 끌어들인 배경에는 한·일관계를 급속히 강화하려는 외교 노선이 있다. 윤 대통령은 1일 국립외교원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흉상 철거 같은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홍 장군 같은 독립유공자들의 헌신을 기리는 대다수 시민들이 오히려 반일감정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역사에 도전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