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출석 의원 295명 가운데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이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정기승 후보자 이후 처음이다. 삼권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장은 사법 행정은 물론 사법부를 대표하는 최고 공직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이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은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 후보자는 10억원에 이르는 비상장 주식을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누락했다.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부산 지역 농지를 사고도 “농지법 위반은 없다”고 했다. 자녀 해외 재산 미신고와 건강보험법 위반 논란, 증여세 탈루 의혹, 아들의 김앤장 인턴 채용 등 개인적 흠결이 차고 넘쳤다. 이 후보자는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가 먼저 접근했다’ ‘피고인이 젊어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등 이유로 감형을 해줬다. 법조계 평판도 낙제였다. 이 후보자는 서울남부지방법원장과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재임한 4년 내내 법원공무원들이 실시한 8차례 다면평가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반헌법적인 역사관도 문제였다. 헌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후보자는 1948년 건국론을 주장했다. 스스로를 ‘대통령 친구의 친구’라고 한 이 후보자가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성을 지킬지에 대한 의구심도 작지 않았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부결은 사필귀정이다. 헌법에 적시된 국회 임명동의 절차는 이 후보자 같은 인사가 사법수장이 되는 걸 막자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부결’ 당론은 당연하고 적절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임명동의안이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부결됐다”며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적반하장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그를 지명한 윤석열 대통령이 져야 한다. 인사 검증을 맡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잘못도 크다. 한 장관이 이 후보자의 비위 등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절차를 진행했다면 대통령을 기망하거나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뒤 시작된 사법수장 공백 사태는 길어지게 됐다. 새 후보자 지명부터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대법원은 당분간 안철상 대법관 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안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심리나 대법원 행정 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선거로 뽑는다.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는다. 사법부에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라는 특별한 사명을 맡기고자 하는 헌법적 결단이다. 윤 대통령은 인권과 정의를 최우선하고 사법부 독립을 지킬 수 있는 대법원장 후보자를 신속히 지명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