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가 지정한 시설로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추진한다. 법안은 성범죄자가 학교 주변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의 ‘제시카법’에서 착안했다. 법무부는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제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6일부터 입법예고한다고 24일 밝혔다. 정부는 당초 제시카법을 본떠 ‘학교 근처 500m 거주 제한’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수도권 인구밀집도가 높은 한국에서 성범죄자가 외곽으로 밀려나면 또 다른 지역 차별이 될 거란 우려에 방향을 선회했다. 정부로선 고육지책을 내놓은 셈인데,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3회 이상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은 자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성범죄자는 법무부 장관이 정한 ‘지정 거주시설’에서 거주해야 한다. 2022년 기준 법무부가 집계한 대상자는 325명이다. 이미 출소해 전자장치를 부착한 조두순·김근식 등에도 적용된다. 함께 추진하는 성충동약물치료법 개정안에는 약물치료 진단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법 도입 논의는 성폭행범 조두순이 2020년 말 출소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주민들이 반발했고, 피해자 가족이 이사하면서 전 국민이 분노했다. 법안 추진 배경엔 여론의 적잖은 공감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강제 거주지’ 기준은 결정되지 않았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든 새로 짓든 거주 제한은 위헌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형기를 마친 이에게 거주지 제한은 ‘이중처벌’에 해당하며,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무부 장관이 정한 시설에 거주한다고 했는데, 기본권 제한과 관련이 있는 만큼 하위법(대통령령)이 아닌 법률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시설 유치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이 법은 내달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입법과정에서 위헌 여지가 없도록 법적 토대를 분명히 하고 부작용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에 앞서 성범죄자들을 관리·감독하는 기존 제도를 강화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일대일 보호관찰전담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성범죄자의 양형 강화와 심리치료도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