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등 9명의 해경 고위 인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세월호 구조 실패로 유죄가 선고된 이는 김경일 해경123정장(경위)이 유일하다. 권한과 책임이 큰 윗선은 면죄부를 주고, 현장에 맨 먼저 갔던 말단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과실의 경중을 따져 책임자를 단죄하는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2014년 4월16일 오전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해경은 승객 470여명이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선내 진입도 하지 않았고, 승객들에게 탈출 지시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책임이 해경 지휘부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휘부가 신속·정확한 판단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면 인명 피해는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청장 등은 사과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해경 지휘부가 승객들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회피 조치가 가능했는데도 못한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검찰 제출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해경 지휘부가 기소된 건 문재인 정부 때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의 재수사를 거친 후인 2020년이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와 해경의 비협조로 초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304명이 사망한 사건에 해경 지휘부가 통째로 무죄인 건 납득하기 어렵다. 피해자와 유족은 참사 대응에 실패한 국가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한단 말인가. 해양 사고 발생 시 수색·구출 계획 수립, 선내 상황 파악 및 통보 하달 등은 해경 지휘부의 기본 임무이다. 현장으로부터 정보를 보고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역시 지휘부가 책임질 일이다.
이번 판결은 김경일 123정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기존 법원 판결과도 배치된다. 1심에선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해경 지휘부와의 공동책임을 인정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몰랐다”는 이유로 윗선은 제외하고 일선만 처벌하면 대형 재난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책임자는 모를수록 유리하므로 현장 상황을 적극 파악하고 지시를 내려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공직 기강도 해이해진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이태원·오송 참사 수사·재판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책임이 큰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기소해 엄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