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한 증거가 또 나왔다. 국방장관 군사보좌관이 해병대사령관에게 ‘수사 의뢰 대상을 줄이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6일 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은 지난 8월1일 낮 12시6분 김계환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단장 등 상급자는 수사 의뢰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의미다. 이틀 전인 7월30일 당시 이종섭 장관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단장 박정훈 대령)의 보고를 받고 서명까지 마친 상태였다.
군사보좌관은 준장, 해병대사령관은 중장이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 군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그것도 장관 결재를 뒤엎는 내용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군사보좌관은 국방장관의 비서 역할을 하는데, 당시 박 보좌관은 이 장관의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24시간 밀착 수행 중이었다. 따라서 박 보좌관의 문자메시지는 사실상 장관 지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방부는 보좌관의 문자가 수사 대상자를 축소하라는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억지에 가깝다. 박 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2시간여 전인 당일 오전 9시43분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자 적시 범위를 한정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국방부 수뇌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외압을 행사하고도 박 대령이 항명하고 상관 명예를 훼손하려 했다며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으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심지어 이달 초 단행된 군 장성 인사에서 박 보좌관은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 56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국방부 장관이 입장을 바꾸고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질책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은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최대한 신속하게 관련자들의 신병을 확보해 증거 인멸을 막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국회도 채 상병 순직의 진상을 밝히고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수사 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