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선거 코앞에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 홍보 영상을 시청하도록 권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선택한 길’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R&D 예산 혁신’ ‘한·일관계 정상화’ ‘건전재정 기조 구축’ 등을 윤 대통령 치적으로 꼽은 뒤 “정책 추진과 성공의 동력은 결국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입니다”라는 윤 대통령 말로 맺는다. 지난 4일 대통령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은 ‘전 부처 직원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문체부 요청으로 각 부처 전산망에 게시됐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선거 앞두고 이런 적 없었다’는 반발이 나오자 삭제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의심케 하는 일이다.
이 영상은 시점·내용·방식 모두 부적절하다. R&D 예산 삭감, 국민적 동의 없는 한·일관계 개선 등 많은 비판을 받는 정책들에 대한 일방적 홍보만 담겨 있다. 영상이 올라온 것도 사전투표 하루 전날이었다. 공무원을 선거에 이용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앞서 국방부도 장병 정신전력 교육 시간에 ‘자유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주제로 한 윤 대통령 강연을 특별교육하라는 공문을 전군에 내려보냈다가 ‘정치적 중립’ 시비가 일자 연기했다. 군사정권 시절 군대에서 여당 후보 찍으라고 강요받고 사실상 공개 투표를 해야 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윤 대통령은 노골적 선거 개입 의도를 감출 의사가 없어 보인다. 지난 5일엔 부산에서 혼자 사전투표를 하고 대학병원·항만부두·사찰 등을 방문했다. 자신의 주소지에서 부인과 함께 투표를 한 역대 대통령과 다른 행보이다. 이번 총선 접전지로 분류되는 이 지역의 표심에 어떻게든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미 토건 개발·선심성 퍼주기 공약을 들고 전국에서 24차례 진행한 민생토론회에서도 ‘관권선거’ 시비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다른 공무원과 달리 여당 당원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동시에 대통령은 그 자리의 중요성과 언행이 가진 정치적 파장에 비춰 그에 상응하는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하고, 국민이 보기에 그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선거를 앞두고는 더 그래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윤 대통령처럼 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할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국정지지율 30%대인 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과연 얼마나 여당 후보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매우 부적절한 선례를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즉각 선거 개입을 중단하고, 공무원들은 관권선거 소지가 있는 정치권과 상부의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