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정 대화 창구 단일화, 의료계도 합리적 증원안 내놓으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의과대학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해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가 ‘2000명 증원’ 족쇄를 풀고 연일 의료계에 대화 의지를 피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내부 분열을 거듭하던 의료계도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중심으로 단일 창구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의·정 대화를 공전시켜온 두 난제가 풀릴 전기는 마련된 셈이다.

앞서 2020년에도 의료계는 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 400명 증원안을 수정할 수 있다고 밝혔음에도, 끝까지 ‘원점 재검토’를 합의문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해 증원을 무산시켰다. 현재 의료계 일각에서 ‘증원 1년 유예’ ‘원점 재검토’ 등의 전제조건을 요구하는 건 2020년 협의 방식을 다시 꺼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000명’이란 숫자를 고집해 사회적 피로감은 높아졌을지언정, 적절한 의대 증원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변하지 않았다. 의협이 제안한 ‘1년 유예안 검토 가능성’ 이야기가 흘러나와 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바로 진화에 나섰다.

국민은 의료정책 이해당사자로서의 입장이 아닌, 의료 전문가로서의 의사들 견해를 궁금해하고 있다. 의료계도 더 이상 증원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내부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증원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과가 부흥시킨 나라를 문과가 말아먹는다”는 식의 독단과 막말로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언행부터 멈춰야 한다. 정부도 ‘과학적인 증거를 먼저 가져오라’는 팔짱 낀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대 교육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료계 우려와 “의료 공공성 강화 방안이 부족하다”는 시민사회단체 지적을 무겁게 새겨 정부 차원의 새 절충안을 준비·제시해야 한다. 그제야 서로 백기 들고 카드를 먼저 까보라는 식의 벼랑 끝 대치를 접고, 실효적이고 투명한 논의가 조기에 시작될 수 있다.

어렵게 지핀 대화 불씨를 살리지 못하면 의료 시스템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수 있다. 더 이상 학사일정을 미루기 어려운 의대들이 개강 40여일 만에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의대생들의 무더기 유급 사태로 전문의 수급에 연쇄적으로 차질이 빚어진다. 또 증원 규모는 재조정 시 생길 혼란을 줄이려면 2025학년도 입시 모집요강이 확정되기 전 결정돼야 한다. 시간이 없다. 의·정은 환자와 국민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시작부터 삐거덕댄 의료개혁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7차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조태형 기자

7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제7차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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