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2일 기준금리를 10번째 동결했다. 가계부채와 내수 부진이 짓눌러 온 경기 불황을 벗어나려면 서둘러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여전한 물가 상승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동결 결정을 반복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물가 외에 고유가·고환율·재정적자·국가부채 문제까지 한꺼번에 톺아져 한국 경제는 깊은 난국에 빠져들고 있다.
여당 참패로 끝난 4·10 총선은 윤석열 정부 경제 운용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이 고물가 민생고에 불지른 게 상징적이다. 일자리 구하기 힘들고 실질소득이 뒷걸음치는데 과일·채소 등 밥상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 초점과 해법을 엉뚱한 곳에 집중했다. 총선 앞에 ‘관권선거’ 시비를 부른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부자감세와 토건개발 공약을 남발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훼손해가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완화, 법인세 감면 기조를 강화했다. 서민보다는 고소득 자산가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정책에 무게가 실렸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 방침이 대표적이다. 총선 판에서 윤 대통령의 경제 처방은 헛다리 일색이고, 국회에서 세법을 손봐야 하는 감세 공약들도 김칫국만 먼저 마시는 격이다.
정부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보면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국가 부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법정 시한인 4월10일까지 결산 보고를 미뤄 ‘총선 꼼수’ 손가락질을 받은 보고서다. 그 결산에서 실질적인 정부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로 집계돼 정부가 금과옥조 삼아온 ‘건전 재정’은 공염불에 그쳤다. 특히 국가채무는 1년 새 60조원 가까이 늘어 역대 최대인 112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50.4%)은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경기 침체에 아랑곳없이 부자감세 정책을 밀어붙이다 스스로 재정 위기를 키운 것이다.
총선 이후 경제 전망은 더 암울하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본격화하고 국제 유가와 환율 불안은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철도 지하화, 국가장학금 대상 확대,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 등 수백 조원의 재원이 소요될 개발 청구서들과 총선 후로 미뤄둔 공공요금 인상도 임박했다. 이대로라면 복합적 경제위기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하루라도 빨리 정부는 그간의 정책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근거없는 낙수효과에 기댄 감세 정책을 거둬들이고, 총선에 내놨지만 재정 압박을 가속화시킬 선심성 개발 공약은 원점에서 선별·재검토해야 한다. 고물가·고금리로 피폐해지는 서민들의 삶에 총선 후 국정을 집중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