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이 사측에 의해 무기한 제작 중단됐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월 개편에 착수하며 잠정 중단된 뒤 당초 예정했던 5월 방송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유가 제작진이 이미 정한 프로그램 진행자 배우 한가인씨를 사측이 막판에 아나운서 조수빈씨로 바꾸려고 한 무리수 때문이었다고 하니 당혹스럽다.
14일 KBS PD협회와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역사저널 그날>은 5월 중 개편 후 첫 방송을 할 예정이었다. 제작진은 4월 초 한가인씨를 새 진행자로 하고 5회차까지 내용 구성과 출연자 섭외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원 제작1본부장이 4월25일 진행자를 교체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제작진이 ‘낙하산 MC’라며 거부하자 이 본부장이 ‘조직 기강’을 이유로 제작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KBS 사측은 “향후 제작을 재개할 것”이라면서도 “프로그램 형식, 내용, MC·패널 출연자 캐스팅 등 관련해 의견 차이”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본 녹화가 임박한 시점에 이미 섭외된 진행자를 교체하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제작진 입장에 수긍한다. 아나운서 조씨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은 점 등을 보면 ‘낙하산’이라는 제작진의 비판도 이해가 간다. <역사저널 그날>이 지난 11년 동안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면서도 특별히 정치적 편향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사측의 조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KBS 편성규약을 위반한 것 아닌가.
KBS 사측의 무리한 요구로 제작 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18일 방영 예정이던 <다큐인사이트>의 세월호 10주기 방송도 사측은 ‘4·10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을 6월로 연기토록 했고 결국 불방됐다. 공영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이런 식으로 불방되거나 무기한 제작 중단된다는 것은 시청자 권익의 관점에서 묵과할 수 없다. 박민 KBS 사장이 지난해 11월 부임한 이후 이런 일이 잦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의 부임 후 KBS 메인 뉴스 시청자 수는 MBC에 1위를 내줬으며, 시사교양 라디오 유튜브 조회수도 급감했다. 편성·제작 독립성 침해가 계속되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 것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