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순직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서 회수한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로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뿐 아니라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신범철 국방부 차관과도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 후 임 전 비서관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했고, 유 관리관은 경북경찰청에 “사건 기록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수사 이첩 서류 회수에 전방위로 관여했다고 의심할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경향신문 등이 확인한 이 사건 관련자들의 지난해 8월2일 통화내역을 보면,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에게 낮 12시~오후 1시 사이 세 차례 전화했다. 이어 오후 1시25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오후 4시21분쯤 장관 직무대행 중이던 신 전 차관에게 전화했다. 윤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이시원 당시 공직기강비서관도 바삐 움직였다. 그는 낮 12시14분, 오후 1시21분 임 전 비서관과 통화했다. 이 전 비서관, 윤 대통령과 통화한 임 전 비서관은 1시42분 유 관리관과 통화했고, 유 관리관은 9분 뒤 경북경찰청에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고 통지했다.
이날은 수사 외압 의혹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이첩 보류를 지시받은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사건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자 이 전 장관은 박 전 단장을 항명 혐의로 수사하라고 국방부 검찰단에 지시했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보직 해임을 통보했다는 게 박 전 단장 측 주장이다. 오후 7시20분쯤엔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통화내역은 박 전 단장 보직 해임과 항명죄 수사 개시, 사건기록 회수의 전 과정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한 통로가 ‘윤 대통령→국방부 장차관’ ‘윤 대통령→임 전 비서관’의 통화였고, 다른 통로가 ‘이 전 비서관→임 전 비서관→유 관리관’으로 이어지는 실무 라인의 통화였을 개연성이 보인다.
대통령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사건기록 회수 등의 최종 실무를 담당한 사람도, 대통령실이 무엇을 어떻게 관여했는지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도 유 관리관이다. 유 관리관은 21일 이 전 장관 등과 국회 법사위 ‘채 상병 청문회’에 출석한다. 유 관리관은 많은 국민이 지켜볼 이 청문회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 바란다. 그것이 꽃다운 목숨을 억울하게 잃은 젊은 해병대원에게 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다. 통화내역 등 잇단 정황이 윤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을 가리킨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을 거부한다면 수사회피용 거부권 사유화라는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