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 발언은 충격적이다. 김 차장은 지난 16일 <KBS 뉴스라인W>에 출연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고개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 엄중하게 따지고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 한·일관계 협력에 도움이 되는가’ 생각할 때 지금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의 믿음과 신뢰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일본의 식민지배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례적인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물음에 “이제 자신감을 갖고 일본을 대하는 것이 윈윈 게임이 되지 않겠느냐”고 답한 뒤에 나왔다. 김 차장 의도를 이해하자면, 해방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며 한국이 일본과 대등한 나라로 성장했으니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미래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여기에는 일본이 더 이상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좌절감도 엿보인다.
그가 외교 당국자로서 일본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가 봉직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뭐가 되는 것인가. 마침 광복절은 어둠과 같았던 3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나 빛을 회복한 날로 함께 기뻐하는 날이다. 식민지배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사과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국민은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일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할 말을 하기를 바란다. 국민이 공직자에게 월급을 주는 데는 그런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전제돼 있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 쉽지 않고 많은 힘이 드는 과제라고 해서, 공직자가 아예 그 일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 자리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우리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 쪽 난 광복절 뒤에는 바로 이런 공직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덜 된 가해자를 억지로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받아오라고까지 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유와 인권’의 관점에서 정당한 문제 제기를 계속할 수는 있다.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 근대문화유산 등재를 막을 수는 없었을지 몰라도, 한국 정부가 국제 무대에서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하에서 벌어진 강제노동이 있었다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그것을 기록에 남길 수는 있었다. 행여나 한·일관계가 어그러질까봐 그조차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