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8일 구속됐다. 수원지법 손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 사실이 중대하다”며 박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영자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건 박 대표가 처음이다. 같은 날 대구지법 안동지원 박영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를 받는 영풍 석포제련소 박영민 대표이사에 대해 “범죄 혐의가 중대하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선 최근 9개월 간 3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동안 검찰·법원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 3월 말까지 이 법이 적용된 사건은 543건이다. 이 가운데 1심 판결을 기준으로 경영책임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3건에 불과하다. 아리셀 화재참사 이전에 검찰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경영책임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두성산업·삼표산업·세아베스틸·기성건설 등 4건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법원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기각했다.
아리셀 화재 참사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났고, 납기일에 맞추려고 비숙련 노동자를 교육도 하지 않고 무리하게 업무에 투입하는 등 사업주 과실이 명백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난 사건이라야 비로소 법을 적극적으로 집행한다면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제도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겠는가.
아리셀 화재 참사 배경에는 불법파견, 저임금·고위험·고강도 노동에 이주노동자들이 투입되는 ‘위험의 이주화’ 등 구조적 요인이 깔려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리셀과 비슷한 노동환경에 처한 사업장이 적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자 296명 중 50명(16.9%)이 이주노동자다. 박 대표의 구속은 유사 사업장의 노동 안전은 물론,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법원의 솜방망이 처벌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