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내후년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현재 대학입시가 진행중이므로 수정할 수 없지만 2026학년도 이후는 증원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고집한다는 것은 가짜뉴스”라며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금이라도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포함해 의료 개혁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 제안도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이날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고, 대통령실도 협의체 결정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앞서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더불어민주당은 한발 더 나가 협의체를 즉시 가동하고, 2025년 정원 규모까지 논의하자고 밝혔다.
정부·여당의 입장 변화로 새로운 대화 채널이 마련된 것은 다행이고 의미 있다. 의·정갈등 해소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는 대통령실 해명만으론 부족하다.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의사들과 대화할 의향이 있다면 참모들 뒤에 숨지 말고 직접 나와 향후 계획에 관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다. 안이한 인식과 대응으로 사태를 악화한 관료들에 대한 문책도 필요하다. 모든 책임을 의사에게 떠넘기고, 고열·복통·출혈 정도는 응급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망언 등으로 염장을 지른 보건복지부 장·차관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의사들과 의사단체를 굴복시키기 위한 목적의 먼지털기식 수사도 멈춰야 한다.
이날 한국갤럽 여론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의대 증원 관련 대응이 잘못됐다는 응답이 64%에 이른다. 의사 증원이라는 큰 틀은 찬성해도 구체적인 정부의 후속 논의와 조치엔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당장 응급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심정지 상태의 20대 젊은이가 100m 앞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공사장에서 추락한 70대 노동자는 응급실 뺑뺑이 끝에 숨졌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병원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환자가 의사를 만날 수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 대란이 과장됐다고 설레발치고, 임시방편으로 파견된 군의관이 응급실 근무를 거부해 혼란을 더 키웠다. 이런 와중에 권력자들은 연줄을 동원해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는 치료를 받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도 화답하기 바란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협의체에 적극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응급 현장에 조기 복귀해 의료 문제로 불안하고 지친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