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지닌 무선호출기(삐삐) 수천 대가 동시 폭발했다. 호출기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가 수신된 직후 폭발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숨지고, 3000명 가까이 부상을 당했다. 부상자 중엔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많았다. 하루 뒤인 18일에는 헤즈볼라 대원의 휴대용 무전기 수백 대가 폭발해 어린이 4명 등 20여명이 숨지고 450여명이 다쳤다. 호출기 폭발 사건 희생자 장례식장에서 일어난 폭발로 희생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인 공격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정보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정보당국과 군이 오랫동안 계획한 공격이라고 보도했다. 2년 전 헤즈볼라가 휴대전화 해킹을 피하려고 재래식 무선호출기를 구비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호출기 제조공장을 위장해 미량의 고폭약을 내장하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자신들 소행인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새로운 전쟁 단계의 시작점에 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레바논 국경 지대로 전쟁의 초점을 옮긴다는 의미다.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이번 공격을 강하게 규탄한다. 일상을 영위하던 레바논 사람들은 이 사건 후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다닐 정도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 효과는 이 뉴스를 접한 전 세계인들에게도 각인됐다.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아 안전 안내 문자 알림음에 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전쟁을 거듭할수록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기술도 고도화되지만, 이번 공격처럼 비전통적인 무기에 대한 궁리도 깊어진다는 점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번 공격의 국제법 위반을 신속하게 따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쟁법은 민간 용품을 위장해 무기화하는 것과 비전투원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 공격을 기획했다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을 받아 자국민 1100여명이 숨진 뒤 가자지구에서 이어온 무차별 보복 공격은 전쟁범죄 수준에 이른 지 오래됐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만6500명을 포함해 4만1000명이 숨졌다. 이스라엘은 전쟁범죄를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