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에도 소금꽃은 필 것이다

김희연 문화부장

이제 봄이 가고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려 한다. 해마다 봄이 오고 또 여름이 되면 한두 번 스쳐지나가듯 떠오르는 이가 있다. 2010년 4월, 만난 사람인데 그 후로도 그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몇시간 얘기를 나눈 것은 9년 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아침을 열며]올여름에도 소금꽃은 필 것이다

계절이 봄이라 마침 하얀 목련이 탐스럽게 피어나 있었다. 그는 목련꽃을 보며 “꼭 삶은 달걀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꽃을 먹는 것에 비유해 재밌었는데 그 말을 듣고 다시 목련꽃을 올려다보니 정말 하얀 꽃봉오리가 삶은 달걀 같았다. 시간이 늦어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는 기차 안에서 먹으라며 까만 비닐봉지 안에 삶은 달걀 3~4개를 싸주었다. 그가 단식농성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이젠 좀 편히 지내시라” 인사를 건네고 왔었는데…. 이듬해 그는 추운 겨울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높디높은 크레인에 올라갔고 100일, 200일도 아닌 309일을 하늘에서 살았다.

지난달 그가 아프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진숙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올해 쉰아홉 살 된 사람, <소금꽃 나무>의 저자, 1982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첫 여성용접사, 해고자, 노동운동가, 그냥 한 사람….

지난해 말부터 암투병을 해왔지만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서 주위의 안타까움만 컸다고 한다. 지난해 3월까지도 그는 크고 작은 노동운동 현장이나 노조원 교육현장에 섰다. 이후에도 현장에서 요청이 이어졌지만 거절하며 마땅한 핑계가 없자 주위에서 이유를 설명하다보니 노동현장에선 투병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그가 속해 있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동료들은 마냥 손놓고 있을 수가 없어 궁리 끝에 오는 6일까지 작은 모금활동과 함께 ‘김지도(김진숙 지도위원)의 쾌유를 비는 손편지를 보내주시면 전달하겠다’며 외부에 이를 알렸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를 불편해하며 지금도 알려지는 것을 꺼려 주위에선 무척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동료들은 절대안정을 위해 문자 등 개인적인 연락은 삼가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손편지를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그와 노동현장에서 인연을 맺었던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들, 2011년 크레인 고공농성 당시 희망버스를 타고 응원하러 왔던 이름 모를 수많은 시민들, 노동의 참됨에 대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까지 이들이 보내온 편지들은 ‘정말 고마웠고 어려운 시기, 당신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김진숙이라는 인물이 단순히 노동계에만 머문 사람이 아니었구나, 새삼 깨닫고 있다고 한다.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해온 한 노동자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좀 변하기도 하는데 김지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물러서지 않아야 할 때는 격렬했고 비타협적이었다. 연설문 한두 장이나 작은 자리의 강의라도 본인이 깊이 고민해 완전히 준비되지 않으면 응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철저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데 애썼다”고 했다.

우리 나이로는 올해 환갑. 그 자신이 해고노동자였으면서 30년 넘게 노동자들을 위해 투옥되고 단식하고 고공농성을 하며 싸웠던 그는 어찌보면 인생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노동현장으로 돌아가 평범한 한 용접사로 은퇴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잘 마무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돌아가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가꾸고, 글을 쓰며 살기 바라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소금꽃 나무>를 펴내자는 출판사 직원에게 ‘(자신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 내도 되는 거냐’며 한사코 거절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의 글이 탐이나 원고청탁을 해본 적 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어도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의 말과 글과 행동은 언제나 노동의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기에. 그래서 핏물처럼 살아 있었고 뜨거웠고, 아팠고, 강했다.

지금은 노동자, 운동가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건강을 회복해 몸이 편안해지기만을 모두와 함께 바랄 뿐이다. 당시 인터뷰를 하며 ‘고생스러운 노동현장에 왜 그렇게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현장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그러워서인지 모르겠어요. 착하고 우직하게 일하면서 인간답게 살기를 소망한, 몸으로 소금꽃을 피우던 사람들이오.” 올 무더위에도 노동자들의 값진 땀으로 만들어진 소금꽃이 사방에서 피어날 것이다. 그의 소원대로 노동의 존엄도 반드시 함께 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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