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기반 보도로 국민의 막연한 화학물질공포 없애야읽음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최재욱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위원장,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위원장,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과학과 기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지만,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분야이다. 특히 안전성 관련 이슈가 생기면 소비자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유명한 일례가 1976년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다. 생선구이의 탄 부분에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발암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한 요미우리는 실제 발암물질과 암을 유발할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구분하여 사실관계를 명확히 전달했음에도 독자들은 탄 부분을 모두 발암물질로 인식해, 한동안 일본 전역에서 생선구이를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과학적 사실과 독자의 위해인식 그리고 예방행위 간에는 분명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인정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언론보도는 대중의 과학 인식과 이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조사 결과 전체 미국인 중 54%가 전문매체가 아닌 일반 언론매체에서 과학 관련 정보를 얻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언론의 과학보도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는 않았다. 전체 중 41%가 ‘언론이 과학관련 보도를 잘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도 과학, 기술 관련 언론보도로 인한 사회적 이슈화 논란 사례가 많다. 특히 최근 2년간 전 인류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은 코로나-19 감염병부터, 라돈침대,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학물(VOC) 등 일반 소비자라면 누구나 접하는 생활용품 속 화학성분까지, 많은 보도가 그간 소외되어왔던 생활속의 위험요인을 밝히는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정책결정과 여론 형성을 이끌어내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내 과학계와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해왔지만 일부 비과학적인 기사들로 인해 사회적 논란이 가중되었던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자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공동으로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보도준칙’을 발표했다. 출처가 명확한 의·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명확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고, 추측과 과장을 지양하며, 유해성과 위해성을 오인하거나, 막연한 우려를 낳지 않도록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보도준칙의 골자다.

이번 보도준칙은 지나친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로 인해 발생 할 수 있는 비과학적인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고, 안전성 이슈 초기단계에서부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언론의 신속한 보도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지만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성분 안전성 이슈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과 함께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과학적 불확실성과 함께 위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언론계의 선도적인 개선 노력이어서 더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코로나-19 발생 직후 2020년 4월에 발표된 ‘감염병 보도준칙’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 인류가 유례없는 감염병 위기 상황으로 두려움에 떨던 시기였다. 2009년 신종 플루,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과장 혹은 추측 기사가 난무했던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언론계와 의료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년간의 고민과 노력 끝에 소개된 ‘감염병 보도준칙’은 감염병 보도에 심층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고, 자칫 자극과 과장으로 점철될 수 있던 감염병 보도의 흐름을 안정화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환경 및 생활용품 안전성 보도준칙’을 계기로, 학계,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와 산업계도 언론을 매개로 원활하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위해성에 대해 소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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