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된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각색된 내용임을 알립니다.
처음 상담실에서 재희씨(가명)를 만난 날 그는 이미 많이 지쳐 보였다. 사전 심리검사 결과지에는 그의 깊은 고통이 잘 나타나 있었지만 사실 굳이 결과지를 살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얼굴에는 오래된 우울함과 무기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왜 이제야 오셨느냐"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싸서요” 대답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그날의 상담이 끝난 뒤에도 내 마음에 길게 남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마음을 돌볼 기회를 놓치고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희씨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복잡한 인간관계 스트레스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버겁게 느껴졌고, 쉼 없이 밀려오는 업무에 어느 순간부터 번아웃인지 우울증인지 모를 무기력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예전처럼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점점 꺼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빠듯한 생활에 상담 비용을 충당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다 보니, 상담실의 문턱은 높게만 느껴졌다. 결국 돌봄이 필요했던 그의 마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참는 것’뿐이었다.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이맘때)은 바로 재희씨와 같은 분들이 금전적 부담 때문에 넘지 못했던 심리 상담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지난 7월부터 실시된 국가사업이다. 나는 상담실에서 이맘때를 통해 그 문턱을 넘어온 여러 내담자분들과 몇 달째 함께하고 있다. 재희씨 역시 이 사업을 통해 나와 심리상담을 시작했고, 상담 과정을 통해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조금씩 풀어놓고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점차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정하게 돌보는 법을 배워갔다. 마지막 8번째 상담이 끝나던 날, 그는 “이제 제 마음에도 작은 숨구멍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처음보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섰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치유되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하게 됐다. 심리상담이야 말로 우리의 마음 건강에 지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상의 필수적인 서비스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나의 오랜 바람은 이토록 좋은 심리상담이라는 서비스가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더욱 가까이 자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상담의 문턱이 높다. 그 문턱을 높이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경제적 부담이다. 외국에서는 심리상담에 대하여 보험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심리상담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큰 편이다. 그래서 재희씨처럼 심리상담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비용 부담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정말 많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이맘때의 존재가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이맘때는 나와 재희씨를 만나게 해주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재희씨들이 상담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용 부담을 덜고 상담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사업이 마음의 돌봄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고, 안정을 회복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상담자로서 크나큰 보람이자 감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람과 감동은 우리 상담 전문가들이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맘때가 우리가 걷는 이 길을 함께 걷는 든든한 동반자가 돼 주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더 이상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숨구멍을 열어주고 그들이 새로운 삶의 힘을 얻도록 돕는 일. 나는 이맘때가 이러한 마음의 회복과 성장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