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젠더 X읽음

조찬제 논설위원
미국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에 거주하는 성소수자가 지난해 10월 발급받은 첫 ‘성별 X’ 여권. AP연합뉴스

미국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에 거주하는 성소수자가 지난해 10월 발급받은 첫 ‘성별 X’ 여권. AP연합뉴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신체적으로 남녀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간성(intersex), 성 정체성 면에서 남녀 구분에서 벗어난 논바이너리(non-binary)가 그들이다. 이들은 ‘제3의 성’으로 불린다. 비서구권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인정돼왔지만 서구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달리, 후천적인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 개념이 도입되면서 주목받았다.

여권의 성별란(sex)에는 남성(male)은 M, 여성(female)은 F로 표기된다. 성평등이나 젠더평등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변하지 않는 풍속도다. 2003년 한 호주인의 여권 성별란에 M과 F가 아닌 X 표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제3의 성인 젠더 X의 존재를 인정한 첫 사례다.

미국이 오는 11일(현지시간)부터 여권의 성별란에 X를 추가하기로 했다. 일부 주에서 운전면허증 등에 X 표기를 해온 것이 여권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여권 발급 시 성전환수술 증명서를 지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성인 논바이너리 120만여명, 간성 550만명, 트랜스젠더 200만명인 미국으로서는 성소수자 인권 향상의 획기적 조치다. 미 정부가 이를 발표한 31일은 ‘국제 트랜스젠더 가시화의날’이라 의미가 더 크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성 및 소수자 존중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은 그동안 군대나 직장, 종교 활동은 물론 스포츠 분야 등에서도 차별을 받아왔다. 2015년까지만 해도 트랜스젠더가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수술 증명서를 내야 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더디다. 한국의 사정은 더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20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이 의료비 탓에 성별 정정을 시도한 적이 없다. 부당대우 우려 탓에 병원(21.5%)이나 보험 상담(15.0%), 은행 상담(14.3%)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여권 성별란에도 X 표기가 등장하는 날이 올까.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 사건과 퀴어퍼레이드에서 보인 몰상식, 남녀 성대결을 부추기는 보수 정치인의 행태를 보면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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