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죽음을 선택할 권리읽음

차준철 논설위원
한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동.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동.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는 바다에 표류하는 작은 배 같다. 일상의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한다. 이제 마침내 내가 원하는 곳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간다.” 이탈리아 중부 세니갈리아의 트럭 운전사였던 페데리코 카보리니(44)는 12년 전 교통사고로 사지가 마비됐다. 병상에 누워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싸워온 그는 지난 16일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별한 기계를 통해서 치사 약물을 스스로 투여해 숨을 거뒀다. 이탈리아에서 2019년 9월부터 조건부 합법화된 의학적 조력자살(조력사)의 첫 사례다. 그는 “인생은 위대하고 단 한 번뿐이기에, 이렇게 떠나는 게 안타깝다”면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생의 밧줄 끝자락에 다다랐다”는 말을 남겼다.

불치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는 안락사·존엄사·조력사 등으로 구분된다. 의료진이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적극적 안락사,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소극적 안락사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를 뜻하는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다. 조력사는 의료진의 도움으로 약물이나 기구를 제공받아 스스로 생명 중단을 실행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에서 조력사나 안락사를 허용한다. 한국에서는 2018년 임종기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이 합법화됐다.

국내에서도 조력사 입법화 논의가 시작됐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지난 15일 말기 환자가 의사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 법안을 처음 발의했다.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도 품위 있는 죽음을 택할 권리를 부여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높인다는 것이다. 조력존엄사를 새로 정의하고 대상자를 결정·심사해 이행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연구진이 19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 입법화에 찬성한 응답자가 76.3%에 달했다.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거나 사전에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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