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윤정희, 영화를 살다

이용욱 논설위원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한 윤정희씨가 2010년 4월 영화 <시> 개봉을 앞두고 경향신문과 인터뷰할 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한 윤정희씨가 2010년 4월 영화 <시> 개봉을 앞두고 경향신문과 인터뷰할 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배우 윤정희씨(본명 손미자·1944~2023)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남정임·문희씨와 함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여성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인기를 얻었다. 한국 영화 황금기였던 1967년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2010년 <시>까지 45년 동안 약 30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전통적·순종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도도하고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고 신상옥 감독은 “파격적 캐릭터의 여주인공은 윤정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윤씨 역시 생전 인터뷰에서 “계산적인 것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연기를 했다”고 돌아봤다.

윤씨의 삶은 영화 못지않게 드라마틱했다. 배우로서 전성기였던 1973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 제3대학에서 영화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력 자체가 그 시대의 전형에서 벗어났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문화축제 때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처음 만났고, 2년 뒤 파리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우연히 재회했다. 운명 같은 사랑은 1976년 결혼으로 이어졌다. 최고의 영화스타와 촉망받는 신예 피아니스트의 결혼은 멜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신혼부부는 결혼 이듬해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현 크로아티아 수도)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 위기를 겪었다. 가까스로 자그레브 주재 미 영사관으로 탈출한 스토리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2018년쯤부터 알츠하이머 병세가 악화되면서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 2021년에는 ‘성년후견’ 논란에 휩싸였다. 윤씨 동생들이 윤씨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씨가 갖고 있던 성년후견인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공교롭게도 그는 <시>에서, 알츠하이머로 어휘를 잃어가면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시를 쓰는 ‘미자’를 연기했다. 이 작품 개봉을 앞둔 언론 인터뷰에선 “제 인생이 영화배우다”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배우가 하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들꽃에, 조그마한 한 송이 들꽃으로도 감탄하는 어린애 같은 감정을 가진 그런 모습이 바보 같은 나를 좀 닮은 것 같다”고 했다. 배우 일에 대한 애정,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 덕분에 최고의 배우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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