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찬밥’ 부처

이기수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기획재정부가 시작한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가 종착역에 다다랐다. 27일까지 28개 부·처·청·위원회에서 이뤄졌고, 내주 금융위원회가 마침표를 찍는다. 유관 조직을 2~5개씩 묶고 전문가도 참여한 윤석열식 업무보고에선 세 그룹이 읽힌다. ‘실세’ 부처, 물 들어와 노 젓는 부처, ‘찬밥’ 부처이다.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병무청·방위사업청의 공동 업무보고에서 빠진 통일부는 27일 윤 대통령을 따로 만났다. 북한이 험담하며 거부한 ‘담대한 구상’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미사일·무인기 대치 후 “1000배 응징” “전쟁 불사”를 외치는 대통령 앞에서 분단국의 통일·대화 업무는 밀렸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는 외교안보 부처인데도 형식·내용 모두 ‘외톨이’가 된 업무보고였다.

여성가족부도 주눅들었다. 여가부는 전날 배포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을 명시했다가 8시간 뒤 철회했다. 강간죄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는 구상을 내놨다가 법무부·여당에서 제동 걸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정책 소신을 발표 당일 접은 여가부도, 사전에 협의·조율한 낌새가 없는 여권도 국민 눈엔 한바탕의 소극(笑劇)으로 비칠 뿐이다.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한 부처의 현주소를 보게 된다. 통일부·여가부 업무보고는 지난해 7월에도 당일 아침에 순연됐다. 눈칫밥 시비가 해를 넘어왔다.

정부 조직 위상은 정권마다 진폭이 컸다. 통일부는 1969년 박정희 정부에서 초당적으로 출범했고, 노무현 정부에선 정동영·김근태가 장관직을 물밑 경쟁한 외교안보 실세 부처였으나,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선 여가부와 함께 폐지론에 휘말렸다가 존속했다. 윤석열 정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무소불위 갑(甲)’ 부처는 한동훈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였다. 여가부 기본계획을 일축하고 노동계와의 일전도 예고한 공권력의 정점이다. 역대 보수정부에서 힘 못 쓴 노동부도 강성 노동정책의 첨병이 됐고, ‘영업사원’을 자처한 대통령 밑에서 산업부도 날개를 달았다. 그 막후엔 존재감이 뚝 떨어진 환경부와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보인다. 평화·여권(女權)·기후위기·협치는 뒷전인 씁쓰레한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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