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민영 논설위원
한 중국동포 육아도우미가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중국동포 육아도우미가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0년대 서울에서는 두 집에 한 집꼴로 ‘식모’를 두었다. 건축업자들은 집을 지을 때 주방 옆에 식모가 기거하는 조그만 방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가난한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어린 여성들은 낮은 보수에 손빨래를 하며 삼시세끼를 차렸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처럼 돌봄노동도 했다. 24시간 호출 대기 상태로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했다. 계를 들어준다는 미명하에 임금을 떼이는 건 다반사였고,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고 쫓겨나기도 했다.

식모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경공업이 발전하면서다. 식모로 일하던 여성들이 대거 공장으로 옮겨갔다. 부엌 구조가 개선되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대중화하며 ‘시간제 가사근로자’로 고용 형태가 바뀌고 처우가 개선됐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자는 걸까. 정부가 저출생 완화책으로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띄우더니,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월 100만원에 최장 5년 고용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자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합계출산율 0.78명의 국가소멸 위기를 이주노동자의 ‘저가 돌봄노동’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우회하는 사실상의 인종차별법이다. 헌법정신에 어긋나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위반된다. 이주노동자 가사노동은 고질적 인권 사각지대다. 조 의원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은 싱가포르에서도 미얀마·필리핀 출신 가정부 학대 및 사망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출생률 폭락은 노동가치를 후려치고, 건강권은 아랑곳없이 ‘주 69시간제’를 밀어붙이고, 청년 일자리 대책에는 손놓고,계급이동 사다리는 끊어버린 사회 탓이다. 누가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겠는가. 기득권 세력이 문제의 핵심은 외면한 채 또 다른 노동착취를 참신한 해법인 양 내세우며 변죽만 울려대는 꼴이다. 비판이 거세자 발의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이 입장을 뒤집으며 법안은 하루 만에 철회됐다. 그러나 조 의원은 추가로 공동발의자를 찾아 22일 다시 법안을 접수했다. 조 의원이 꿈꾸는 ‘시대전환’은 이런 것인가. 국회 통과는 당치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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