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병, 팔각모 팔각모, 팔각모 사나이!”
군가 ‘팔각모 사나이’는 해병대원들의 대표적인 애창곡이다. 해병들은 훈련소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팔각모를 쓴다. 제대할 때도, 예비군 훈련을 할 때도 팔각모를 자랑스럽게 쓴다. 빨간 티셔츠와 함께, 해병의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울 만한데도 해병대 출신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 채모 상병 사건 수사외압 파동 이후 이 노래가 거리에서 자주 울려 퍼진다. 수사 기록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명시했다는 이유로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동기생들이 지난달 26일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다. 지난 1일에는 팔각모를 쓰고 군사법원에 출두하는 박 대령의 손을 굳게 잡은 동기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자 박 대령은 눈물을 훔쳤다. 이날 사전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군 검찰이 무리하게 항명 혐의를 덧씌웠다는 비판이 일었다.
‘팔각모 사나이’가 급기야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도 울려 퍼졌다. 해병대 예비역 400여명이 모여 수사외압을 규탄하는 집회에서다. ‘진상 규명 촉구한다’ ‘(박 전 수사단장의) 직무복귀 명령하라’라는 손팻말도 등장했다. 예비역이긴 하지만 해병대원들이 대통령실 앞에 모여 보수 성향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광경은 이채롭다. 마침 이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제73주년 서울수복 기념행사에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해병대가 국민의 군대로서 대한민국의 평화로운 내일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채 상병 수사외압 파동은 군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사기(士氣)와 긍지를 바로 세우는 일 아닐까. 하지만 윗사람의 잘못이 아랫사람에게 전가되는 조직에선 불가능하다. 집회에 참가한 예비역들은 진상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는 윗선의 행동에 ‘후배(채 상병)를 못 지킨 죄책감에 해병대 정신을 모욕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수사외압의 진상을 밝히고 해병의 긍지와 자존심을 살려야 한다. ‘사기가 떨어진’ 군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