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농업국가 프랑스에서 농민들이 29일(현지시간) 수도 파리행 간선도로를 트랙터로 무기한 점거했다. 벨기에 농민들은 30일 유럽 무역통로인 제브뤼헤 항구를 봉쇄했다. 독일 베를린에는 농업용 트랙터 5000여대가 지난달 15일 집결했다. ‘못살겠다’는 농민들의 절박한 분노가 유럽 각지에서 터져나오는 중이다.
이 시위가 촉발된 공통분모 하나는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다. 농업 부문은 EU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그 이유로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농업용 연료 보조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유가 급등으로 연료비 부담이 커진 농민들에게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부담을 떠넘긴 격이니, ‘정의로운 전환’과 거리가 멀다. 또 다른 원인은 세계화 이후 밀려든 값싼 수입 농산물이다. 일례로 프랑스의 모로코산 방울토마토 수입량은 1995년 300t에서 2022년 7만t으로 급증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흑해 운송이 막힌 우크라이나산 밀이 유럽 육로로 들어오면서 밀 가격도 반토막 났다.
‘알디’로 대표되는 대형 소매업체도 시위대의 표적이다.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농산물을 ‘가격 후려치기’로 매입하며 그 부담을 농민들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EU 환경규제에 맞추려면 생산비용은 더 늘어날 텐데 농가소득은 이미 최저임금을 밑돈다고 한다. 농민들은 물러날 곳이 없다. 프랑스 국민 약 90%도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걸로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가 농민 지원책을 내놓으며 시위대에 강경 대응하지 않는 이유다.
농민들의 분노를 달래지 못하면,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이 약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책 풍향계’로 꼽히는 네덜란드에선 축산농가에 질소 감축을 요구했던 집권당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극우성향 농민당에 참패한 바 있다.
기후위기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의 생계가 위태롭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이번 시위는 일깨운다. 아무리 좋은 목표더라도, 함께 가야 할 시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없다면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다. 탄소 감축이나 에너지 전환 시 약자 피해가 속출하는 국내의 ‘정의로운 전환’도 되짚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