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라인사태 ‘국가의 배임’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발생 직후 도쿄 시내 공중전화 부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순간적인 통신망 과부하 탓에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통화·문자메시지 다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기반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가족·친지 생사를 확인했다. 3개월 뒤 네이버의 일본 법인 NHN재팬이 출시한 메신저 ‘라인(LINE)’은 재난이 잦은 일본에서 절실한 서비스였다. 간 나오토 당시 총리가 한일병합 100년 사죄 담화를 발표하는 등 순탄했던 한·일관계도 라인 탄생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에도 의미가 각별한 ‘라인’에서 네이버가 쫓겨날 처지가 됐다. 라인야후의 이데자와 다케시 대표는 지난 8일 라인 지분 50%를 가진 네이버에 대해 “지분 변경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총무성 행정지도는 자본적 지배관계에 대한 재검토인데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일본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음도 확인했다.
기업 간 경영권·지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사례도 드물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사업 방해는 적대국 관계에서나 벌어질 일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인정보가 100만건 이상 유출된 사례가 8건에 이르는데도 51만건이 유출된 라인야후에만 일본 정부가 두 차례나 행정지도를 한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네이버가 지분을 매각해 라인 운영에서 물러나면 일본뿐 아니라 대만·태국 등에서 구축한 사업 기반까지 잃게 된다.
한국 정부는 수수방관 혹은 일본을 편드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교부가 ‘한국 내 반일여론이 드세니 전화로라도 한국 언론에 오해라고 말해달라’고 총무성에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 정부의 선 넘는 태도에 윤석열 대통령의 ‘저자세 외교’ 영향은 없었을까.
윤 대통령은 9일 국정보고에서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통해, 우리 기업의 운동장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으며, 새롭게 구축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경제적 기회를 더 확장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은 정반대로, 이미 쓰던 ‘운동장’에서도 쫓겨날 신세가 됐다. 국가 지도자가 자국 기업의 사업 기회가 부당하게 빼앗기는 상황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야말로 배임 아닌가. 서의동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