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사상

손제민 논설위원

유기농산물을 사고파는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은 알아도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6~1994)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학창 시절과 사상범으로 수감된 몇년을 제외하면 고향 원주를 거의 떠나지 않았고, 늘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밀어줬던 선생의 삶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사상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무위당만큼 큰 빚을 진 선학은 없을 것이다. 그를 사상의 은사로 여겼던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생전 그가 쉽게 풀어준 해월 최시형의 ‘이천식천’(以天食天·하늘이 하늘을 먹고 산다)을 자주 되새겼다. 농민들의 땀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일체가 되어 만든 것이 “나락 한 알, 밥 한 사발”이라는 점에서 사람만이 하늘이 아니라 곡식 하나, 돌 하나, 벌레 하나도 ‘한울님’이라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먹고 먹히는 순환적인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심오한 이치가 담겼다.

이런 생각은 1970년대 원주에서 함께 폐광촌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도모했던 시인 김지하 등의 생명사상에 영향을 줬고, 1986년 한살림 창립으로 이어졌다. 유기농산물 도농 직거래로 환경과 농업, 농민을 살리는 생명공동체 운동의 시작이었다. 자율적이고 협동적인 공생을 추구한 한살림 운동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를 이 운동만으로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위당의 이 말을 떠올려보고 싶다.

“무농약 음식을 먹으면 건강하다고 하고 또 장수한다고 하고, 다 좋지요. 다 좋은데 저만 오래 살려고, 저만 오래 건강하려고 그렇게 되었을 때에는 바로 그 자체가 엄청난 공해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에게 이게 이롭다는 사고와 이렇게 하면 이로우니까 한다든가 했을 때에는 또 하나의 위태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될 겁니다. … 각자가 서게 하는 것이고 각자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것이지, 그것을 갖자는 이야기가 아니지요.”

나 혹은 우리가 더 좋은 것을 갖겠다기보다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이 각자 바로 서게 하고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함께 가려는 태도, 5월22일 무위당 30주기에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직접 쓴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생전에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이현주 목사의 질문에 “세월이 수상할 적에 필적을 남기면 괜히 여러 사람 다치겠더구먼”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는 녹색평론사에서 장일순 선생의 강연, 대담 등을 모아 1997년 펴낸 책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직접 쓴 글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생전에 ‘왜 글을 쓰지 않느냐’는 이현주 목사의 질문에 “세월이 수상할 적에 필적을 남기면 괜히 여러 사람 다치겠더구먼”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는 녹색평론사에서 장일순 선생의 강연, 대담 등을 모아 1997년 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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