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폭침당한 귀국선

이명희 논설위원
우키시마마루호 생존자 전영택씨가 올해 초 방영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화면 캡처.

우키시마마루호 생존자 전영택씨가 올해 초 방영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화면 캡처.

“부산행 마지막 배입니다. 이 배를 놓치면 조선으로 못 갑니다.”

1945년 8월22일 밤 일본 해군특설함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가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했다. 우키시마마루호는 일본의 패전 이후 조선인들의 본국 송환을 위해 띄운 1호 귀국선이었다. 하지만 조선으로 가는 ‘마지막 배’라는 소문이 돌았고, 조선인들은 앞다투어 배에 올랐다. 이틀 후 교토 마이즈루항을 지나던 배는 의문의 폭발로 침몰했다. 그렇게 수많은 재일 한국인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수장됐다.

일본이 공식 발표한 사망자 숫자는 549명이다. 그러나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사망자는 최대 8000여명으로 추정된다. 폭침 원인도 일본 정부는 기뢰에 의한 폭발이라고 했지만, 생존자와 유가족은 일본이 전쟁범죄를 감추기 위해 고의로 배를 폭침시켰다고 주장한다. 일본 당국이 침몰 경위는 물론 사망자 수조차 은폐·축소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런 의심을 뒷받침하는 일본 정부 기록물이 공개됐다. 그간 일본 정부는 배 침몰과 함께 승선자 명부가 사라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교도통신은 일본 후생노동성이 한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3점을 공개했다고 지난 23일 보도했다.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해군시설부 ‘승선명부’ 표지에는 “총원 2429명”이라고 적혀 있다. 제4부대장 명의의 명부에는 333명,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의 명부에는 144명으로 기재됐다. 승선자 명부가 버젓이 있었는데도 일본 정부는 왜 그동안 명부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의문이다.

이 사건을 다룬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엔 생존자들의 증언이 나온다. 생존자들은 다들 알몸으로 헤엄쳐 나왔다고 했다. 아비규환 속 옆사람이 자꾸 옷을 붙잡아서, 그 손을 뿌리쳤던 기억이 큰 돌처럼 얹혀 있다고 한다.

우키시마호 비극은 전모조차 뚜렷하지 않다. 광복 80주년이 되도록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이제라도 정부는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해야 한다. 이런 일조차 하지 않고 한·일 화해를 말할 수 없다. 현재 폭침 생존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우키시마호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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