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노태우 비자금

정유진 논설위원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아들·딸 모두 재벌가와 결혼시켰다. 딸 소영씨는 1988년 선경그룹(현 SK)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씨와, 아들 재헌씨는 1990년 동방유량 회장의 장녀 신정화씨와 각각 혼인했다. 혼맥으로 짜인 정경유착이었다.

사실 혼인은 정경유착의 시작이 아니라, 쐐기였다. 섬유회사였던 선경이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해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부터 당시 신군부 보안사령관이던 노 전 대통령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존재한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유공을 선경에 넘긴 사람은 노태우였고, 난 몰랐던 일”이라고 남긴 전두환씨 회고 기록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돈기업’ 선경을 대놓고 밀어주기 시작했다. 여신 규제에 묶여 있던 상황임에도 선경은 막강한 현금 동원력으로 태평양증권을 인수했다. 이때 자금 출처를 둘러싸고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는 치열한 제2 이동통신 사업권 수주전 끝에 선경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특혜 시비가 일자 포기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물심양면 지원이 1994년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국내 제1의 이동통신 업체가 되는 데 발판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이혼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재판부는 1조3800억원의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을 판결하면서,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 비자금 메모를 결정적 증거로 인정했다. 최 회장 측은 사적인 이혼 소송 판결 내용이 공개된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최태원·노소영 부부로 연결된 두 집안의 정경유착은 개인사가 아니다.

노 관장이 1심에서 받은 ‘현금 665억원’ 재산분할 판결은 아내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1.2% 수준으로 판단한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아버지의 불법 비자금 덕에 받아든 ‘1조3800억원’ 역시 노 관장의 정당한 몫이라 볼 수 없다. 뒤늦게 2001년에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만들어져 SK에 흘러든 비자금을 국고 환수할 법적 근거는 박약하지만,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권력의 검은돈이 스며든 ‘세기의 이혼’ 재산분할금은 사회 환원도 이뤄져야 한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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