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머

안홍욱 논설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미국 배우 우피 골드버그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미국 배우 우피 골드버그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시복식과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차 닷새간 한국을 찾았다. 방한 이틀째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KTX를 이용하게 됐다. 교황은 대전역에서 영접 나온 코레일 사장에게 “헬기가 못 뜨게 어젯밤에 구름을 불러온 사장이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튿날에는 앞선 일정이 지연돼 한국 수도자들과의 만남이 늦게 시작되자 저녁 기도와 찬미 순서가 생략되고 곧장 교황이 연설하게 됐다. 교황은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다 “오늘 저녁 기도는, 개인적으로 하길 바랍니다”라고 고쳐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5년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났을 때도 “한국을 다녀온 지 꽤 돼서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농담을 던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과 겸손을 강조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머를 중요하게 여긴다. 수도자들에게는 딱딱하고 완고한 신앙이 아닌 유머를 통해 신앙을 전파해줄 것을 당부해왔다. 교황 스스로 ‘셀프 디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2013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추기경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지지해준 데 감사를 표하면서도 “신께서 여러분들이 한 일을 용서하기를 바란다”고 했을 정도다.

교황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바티칸으로 15개국의 유명 코미디언 107명을 초청했다. 영화 <시스터 액트> 시리즈의 배우 우피 골드버그, 미국 TV 토크쇼 진행자 코넌 오브라이언 등이 참석했다. 교황은 이들에게 “우리가 미소를 지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주여, 나에게 좋은 유머 감각을 주소서’라고 40년을 기도해왔다”며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농담도 빼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우울한 일이 많아지면 웃을 일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유머는 긴장된 자리에서도 기분을 좋게 하는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소통 능력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분노·허탈케 하는 말 대신 따뜻한 웃음을 주는 리더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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