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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4
  • [여적]성평등 조각
    [여적]성평등 조각

    “미국 헌법은 여성에 대해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미국의 헌법·민주주의 권위자인 로저스 M 스미스가 “대통령·부통령 등을 설명하면서 남성 대명사를 30번 사용한 미국 헌법”이 여성 시민권을 외면한다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는 비단 미국 헌법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스미스의 경고는 지난 6·3 대선을 관통한다. 여성 후보 부재, 성평등 의제 실종, 이준석의 성혐오 발언, 유시민의 여성 노동자 폄훼… 여성을 외면하고 홀대하는 정치의 흔적들이다.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처참하고 구조적이다. 윤석열 정부에선 더 뒷걸음쳤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국가성평등지수는 전년보다 낮은 65.4점을 기록했다. 2010년 이후 처음 후퇴했다. 나아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유리천장 지수, 여성 국회의원 비율(20%)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야 후보들은 성평등 가치는 뒷전이었고, 광장의 2030 여성들을 상찬했을 뿐 이들의 요구에 진지하...

    2025.06.12 19:33

  • [여적] 완전체 BTS
    [여적] 완전체 BTS

    2018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다. ‘병역 특례’ 문제가 불거졌다. “국위를 선양한 대중문화 예술인들도 올림픽에서 메달 딴 운동선수처럼 병역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병역 의무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원칙론이 맞섰다. 2020년 BTS 히트곡 ‘다이너마이트’가 세계 시장을 강타하자 여론이 다시 들썩였다.긴 논란을 잠재운 것은 2022년 12월 맏형 진을 필두로 자발적으로 입대한 BTS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해답은 바로 ‘실천’이었다.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거나 편법으로 얼룩졌던 과거 일부 연예인들과 달리, BTS는 예외를 요구하지 않았다. 세계적 인기와 한류의 상징성이 컸음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입대했고 묵묵히 병역의 의무를 다했다.어느새 병역을 마친 BTS 멤버들이 속속 복귀해 무대로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다. 지민과 정국이 1년6개월간의 군 복무를 끝내고 팬들의 축하 속에 11일 만기 전역했...

    2025.06.11 18:15

  • [여적] 이민자의 나라
    [여적]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웠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민자의 나라’라고 자부한다. 17세기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래, 아메리카 대륙은 희망을 품고 도착한 사람들의 터전이 됐다. 각기 다른 삶과 배경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언어·문화와 신념을 나누며 살아왔다. 미국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멜팅폿(melting pot)’이란 표현도 다양성과 융합을 상징한다. 서로 다른 인종·민족·문화가 하나의 용광로에서 녹아 미국이란 공동체를 완성했다.그러나 용광로가 항상 평온하지는 않았다. 이민자는 활황기에 값싼 노동력으로 환영받았지만, 위기 때는 사회의 불안과 분노를 떠안는 희생양이 됐다. 일본계 미국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수용소에 보내졌고, 9·11 뉴욕 테러 이후엔 무슬림 커뮤니티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 중동계 이민자들이 겪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지금 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추방 작...

    2025.06.10 18:10

  • [여적] ‘어쩌면 해피엔딩’의 해피엔딩
    [여적] ‘어쩌면 해피엔딩’의 해피엔딩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9일 연극·뮤지컬 분야 최고 권위의 미국 ‘토니상’에서 작품상 등 6관왕에 올랐다. 가장 많은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앞서 뉴욕드라마비평가협회 작품상 등을 휩쓸 때 돌풍은 예견됐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에 비견할 만하다. 한류 영역이 공연예술의 꽃이라는 뮤지컬로까지 넓어졌다.토니상 수상이 더욱 돋보이는 건 <어쩌면 해피엔딩>이 2016년 서울 대학로에서 출발한 순수 토종 창작물인 데 있다. 앞서 <위대한 개츠비> 등이 토니상을 받은 적 있지만 국내에서 개발·초연된 뮤지컬의 수상은 처음이다. 스토리에도 한국적 정서가 가득하다. 세계인이 친숙한 AI 로봇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운명적 상실’이라는 한국적 비감(悲感)을 담아 보편적 공감을 끌어냈다. “공상과학적 기발함 속에 독창적인 인간 비극을 숨겨 놓았다”는 게 뉴욕타임스 극찬이었다....

    2025.06.09 18:23

  • [여적]저소득 ‘혼밥’ 노인
    [여적]저소득 ‘혼밥’ 노인

    한국인들에게 ‘혼밥’(혼자 먹는 밥)은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혼자 식당에 들어설라치면 혹시 아는 얼굴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던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혼밥은 사회성이 없거나 무리에서 소외된 ‘왕따’로 비치기 일쑤였다. ‘밥 먹었냐’고 묻는 게 인사말이기도 했던 한국 사회에서 밥을 함께 먹는 일은 그만큼 중요했다.그러나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세상은 바뀌었고, 혼밥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흔히 일본을 혼밥족의 나라로 알고 있지만,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 3월 발표된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이 타인과 저녁 식사를 하는 횟수가 1주일 평균 1.6회였다. 주요 20개국(G20) 중 일본(1.8회)보다 적은 최하위권이다. 점심, 저녁을 합쳐도 4.3회에 불과하다. 중남미 국가 8.8회, 북미·호주·뉴질랜드와 서유럽이 각각 8.3회로 우리의 두 배다. 보고서는 다른 사람과 식사하는 빈도와 삶의 만족도는 연관관계가 깊다고 분석했다....

    2025.06.08 18:33

  • [여적]국민주권정부
    [여적]국민주권정부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취임한 건 1980년 8월이다. 이후 개헌으로 제5공화국 체제가 됐고 ‘체육관 선거’로 1981년 2월 12대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1979년 12·12 군사반란부터 1988년 2월 물러날 때까지 그가 권력을 휘두른 시기는 ‘5공’ 시절로 통칭된다. 흔히 ‘6공’이라고 하면 노태우 정부 때를 말한다. 1987년 개헌으로 제6공화국이 수립된 후 9명의 대통령이 등장했지만 6공화국의 첫 대통령이어서 그렇게 불린다.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였다. 공식 명칭은 아니었지만,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32년간의 군 출신 대통령이 끝나고 첫 민간인 대통령이란 의미가 담겼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정부’라고 공식 명명했다. 헌정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로 집권했고, 새 정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시민의 폭넓은 참여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미로 ‘참여정부’란 별칭을 썼다. 이처럼 별칭에는 정부의 국정기조, 시대정신이 압...

    2025.06.05 18:15

  • [여적]진보정치 ‘종잣돈 0.98%’
    [여적]진보정치 ‘종잣돈 0.98%’

    선거철만 되면 진보정당 후보들은 사표론에 시달린다. 소수 정당 후보의 낙선자 표는 주권자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죽은 표’라는 의미다. 사표론은 ‘거대 정당의 인질극’이라 불릴 정도로 양당제 폐해를 상징하는 한국 정치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다당제를 가로막고 진보층의 주권 행사를 침해하는 정치가 사표론이라는 비판도 되풀이된다. 반면 결선투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사표를 제도적으로 제거하는 정치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노회찬 진보신당 후보(득표율 3.6%)가 나섰던 2010년 서울시장 지방선거, 심상정 정의당 후보(득표율 2.7%)가 완주한 2022년 대선은 ‘0%대’ 격차로 보수 정당 후보들이 신승한 박빙 승부였다. 당시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노·심 후보 때문에 석패했다며 일부 민주당 지지층이 쏘아 붙인 것도 사표론이다. 사표 방지 심리를 활용한 진보 표심 흔들기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를 외치며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2025.06.04 18:39

  • [여적] ‘김용균’이 또 죽었다
    [여적] ‘김용균’이 또 죽었다

    한국서부발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2일 50대 하청업체 노동자 김충현씨가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졌다. 2018년 스물네 살 김용균씨가 새벽에 혼자 일하다 석탄을 운송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바로 그 발전소다. 또 한 명의 ‘비정규직 김용균’이 또 혼자 일하다 죽은 것이다. 안타깝고 황망하다.2인1조 원칙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도와줄 동료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던 죽음’이라는 뉴스 문장이 또 등장했다. 김씨 빈소를 찾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바뀌지 않은 근무 환경에 분통을 터뜨렸다. 기본 작업 원칙부터 어긋나니 하청·재하청 구조 개선이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발전소 연료와 환경 설비 운전·정비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6년 전 국무총리실 산하 김용균특조위 권고에는 발전회사들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사고 후 ‘임의 작업’ 등을 언급하며 회사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도 ‘김용균 참사’ 당시와 다르지 않다.김용균씨 죽음을...

    2025.06.03 20:17

  • [여적] 투표 못하는 사람들
    [여적] 투표 못하는 사람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외국민 선거지만, 한때 해외에 체류하는 국민은 투표할 수 없었다. 1967년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해외에 나간 국민들을 위해 ‘해외 부재자 투표 제도’가 도입됐다가 1972년 유신체제 선포와 함께 폐지됐다. 그러곤 32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야 재외국민 참정권이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되살아났다. 공직선거법의 재외선거 배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라면 어디에 있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이 다시 자리 잡았다. 2009년 재외국민 선거 제도가 정식 도입됐고,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시행됐다.머나먼 타국에서도 6·3 대선에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이 있는 반면, 정작 국내에 있으면서도 투표를 못하는 유권자가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교대 근무나 건설현장 등에서 일해 선거일에 쉬지 못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투표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번 대선은 사전투표일조차 평일이...

    2025.06.02 18:20

  • [여적]낯 두꺼운 ‘파면 대통령들’
    [여적]낯 두꺼운 ‘파면 대통령들’

    독단에 사로잡힌 국정 최고 지도자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리 없다.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인재풀이 좁고, 실정 원인은 야당·언론 탓으로 돌린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국정농단, 윤석열의 12·3 내란은 그렇게 잉태됐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다.”(박근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윤석열) 파면 후의 두 말도 똑같이 민심의 분노를 불렀다.2022년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박근혜 파면·단죄 후에 꿈꾼 새 세상의 기대가 환멸로 바뀐 악몽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사건과 인물은 역사에 두 번 등장한다’는 헤겔의 경고처럼, 결국 윤석열 내란이라는 더 큰 비극이 재현됐다. 정권에 반대·비판하는 사회 구성원과 정치세력은 절멸·추방 대상으로 규정하고, 헌법기관을 총칼로 짓밟으려 한 내란은 박근혜를 탄핵할 땐 생각도 못했던 반국가적·몰역사적 망동이었다. 자숙하고 속죄하며 살아도 모자랄 전직 대통령 윤석열·박근혜가 내란까지 비호하는 보수세력 후보 김문수를 돕자고, 대선판을 ...

    2025.06.01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