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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적] ‘총알받이’ 평가원장
    [여적] ‘총알받이’ 평가원장

    한국에서 대학 입시만큼 휘발성이 강한 소재도 없다. 대통령 등 권력자 입장에선 대입 관리가 엄청난 ‘리스크’이고, 잘해야 본전이다. 특히 대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공정성과 엄밀성,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다. 단 한 명이라도 불합리하게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입으면 안 되고, 출제·채점 과정에 털끝만 한 오류도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정부는 수능을 ‘외주화’하고 있다. 대기업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대입 정책을 총괄하고 제도를 운용하는 부처는 교육부지만, 수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관장한다. 10일 오승걸 원장이 사임해 또 한 명의 평가원장이 ‘총알받이’ 신세가 됐다. 평가원은 “오 원장은 수능 영어 영역 출제가 절대평가 취지에 부합하지 못해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입시에 혼란을 일으킨 점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며 사임했다”고 밝혔다. 올 수능에선 영어 영역이 지나치게 어렵게 ...

    14시간 전

  • [여적] ‘다문화 국가’ 한국
    [여적] ‘다문화 국가’ 한국

    스리랑카 청년 이완은 경기 포천시 의료원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취업한 부모님과 양계장 기숙사에서 자랐다. 미등록 상태였던 이완은 2021년 한국에서 15년 이상 거주한 청소년들이 벌금을 내면 비자를 주는 구제 조치에 따라 920만원을 내고 체류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완이 성년이 돼 보호자 자격으로 체류해온 어머니와는 헤어져야 한다.한국에서 24년째 거주 중인 몽골 출신 마리나도 고교를 졸업하면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였다. 인권위원회가 국내에서 장기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의 고교 졸업 후 강제 출국은 인권침해라며 시정을 권고한 뒤 마리나는 2021년 임시체류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체류 자격은 유학생으로, 졸업 후 바로 취업해야만 추방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극한에 가까운 청년 취업 현실을 감안하면 아뜩하다.이두안은 한국 생활 18년차인 필리핀 출신 청년이다. 특성화고를 다니며 기술자격증을 취득했고, 학교 소개로 취업에 성공했으나 고졸로는...

    2025.12.09 18:10

  • [여적] 변동불거(變動不居)
    [여적] 변동불거(變動不居)

    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서 고대로부터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지만, 이를 진보로 여기는 건 “그릇된 해석”이라고 경계했다. 대신 “미술사는 기술 숙련도의 진보가 아니라 관념과 필요의 변화에 관한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변화는 곧 적응이다. 실상 변화의 압력은 미술만 아니라 인간 삶의 매 순간 모든 것에 마치 중력처럼 달라붙어 있다.교수신문이 8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했다. 설문에 응한 전국 대학교수 776명 중 33.9%가 1위로 꼽았다고 한다. 공자가 ‘천하의 도’라 했던 <주역>에 해설을 단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말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한다’는 의미다. 교수신문은 “한국 사회가 거센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상징한다”고 설...

    2025.12.08 18:50

  • [여적]간토대학살 진상규명법
    [여적]간토대학살 진상규명법

    지난 7월19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극우 참정당(參政黨)의 요코하마 집회에서 한 지지자가 외국인 차별 반대 팻말을 내건 시민에게 ‘주고엔 고짓센’을 발음해 보라며 시비를 걸었다. ‘주고엔 고짓센(15엔50전)’은 1923년 9월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직후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 일본인이 아닌 이들을 색출하는 데 쓴 말이다. 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번지자 일본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체포·살해했다. ‘주고엔 고짓센’에 섞인 탁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숱한 조선인들이 끌려가 잔혹하게 학살됐다. 그 흑역사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100여년 전 조선인들의 생사를 가르던 말을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이다.간토대지진 6개월 뒤 당시 요코하마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작문들이 100년 만인 2023년 공개됐다. 일본 TBS가 취재한 영상을...

    2025.12.07 18:10

  • [여적]쿠팡, 탈팡, 갈팡
    [여적]쿠팡, 탈팡, 갈팡

    정말 화가 난다. 이번에야말로 쿠팡을 끊으려 했건만, 절차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소셜미디어 약자로 ‘탈팡’, 즉 쿠팡 탈퇴는 PC에서만 가능하다. 모바일 앱에선 ‘마이쿠팡’의 ‘회원정보 수정’을 눌러 PC 버전을 선택한 뒤 ‘본인 인증’ ‘이용내역 확인’ ‘설문조사’ 등 총 6단계 과정을 거친다. 설문은 ‘쿠팡에 바라는 점’을 주관식으로 적어야 한다. 여기까지 왔어도, 다시 마우스를 위아래로 여러 번 이동하다, 페이지 맨 아래에 있는 ‘탈퇴’ 버튼을 찾아내야 끝이다. 이 정도면 미로찾기에 가깝다. 오죽하면 온갖 커뮤니티에서 ‘쿠팡 탈퇴’ 방법을 공유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까지 긴급 사실조사에 착수했을까.업계 1위 쿠팡의 정보 유출은 국민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계정 탈퇴가 잇따르고, 동종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갈팡’ 이용자도 늘고 있다. 소비자단체는 불매 선언을 하고, 집단소송도 본격화됐다.급한 대로 사람들이 등록된 카드·계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지워도...

    2025.12.04 18:42

  • [여적] 징역 15년 구형된 ‘V0 김건희’
    [여적] 징역 15년 구형된 ‘V0 김건희’

    ‘V0 김건희’의 1심 결심 공판이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민중기 특별검사는 “헌법 질서 내에서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고 누구도 법 밖에 존재할 수 없는데 김건희만은 대한민국 법 밖에 존재해왔고 대한민국 법 위에 서 있었다”며 징역 15년과 벌금 20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건희는 일반 국민은 상상하기 어려운 특권적 행태를 보여왔다고 했다. 이날 언론 카메라에 잡힌 김건희 모습은 초췌했지만, 변호인과 소통할 때 보인 그의 눈빛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었다. 검은색 상·하의에 흰 마스크·뿔테 안경을 착용한 그는 법정에 들어서면서 잠시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 역시 세인의 동정심을 사기 위한 연출이라는 의심을 갖게 했다. 김건희는 최후진술에서 “저로 인해 국민께 큰 실례를 끼친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도 “특검이 말하는 것처럼 그건 좀 다툴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특검의 이날 구형은 현재까지 재판에 넘겨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

    2025.12.03 20:01

  • [여적]분노 미끼
    [여적]분노 미끼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매년 사회적 변화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포착한 단어를 신조어로 정한다. 올해의 단어는 ‘분노 미끼’(rage bait)다. 이 말은 소셜 미디어에서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계를 넘어 분노나 불쾌감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클릭·댓글 참여를 높이는 콘텐츠 전략이다. 지난해보다 사용 빈도가 3배 늘어난 ‘분노 미끼’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것이 선정 배경이라고 한다.지난해 ‘메타 플랫폼’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공포 같이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 공유율이 긍정적 콘텐츠보다 평균 32% 더 높았다. 분노를 미끼로 삼은 콘텐츠가 사용자 참여도를 높이고 더 많이 공유된다는 결론인 셈이다. 빠르고 통쾌한 말일수록 ‘좋아요’가 많아지고, 상대 비난에 가담하면 소속감이 커지는 것이 SNS가 분노를 키우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분노→반응→확산→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분노 미끼 콘텐츠의...

    2025.12.02 18:51

  • [여적]백악관 ‘수치의 전당’
    [여적]백악관 ‘수치의 전당’

    미국은 1791년 12월 채택한 수정헌법 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언론의 자유는 연방대법원 판례로도 몇 가지 원칙이 정립됐다. 그중에 ‘실질적 악의’ 원칙이 있다. 명예훼손 입증 책임은 권력을 가진 공직자에게 있다는 것으로,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로 확립됐다. 공직자가 소송 남발로 언론 자유를 위축시켜선 안 된다는 취지다. 언론을 증오하고 불신하는 대통령들은 많았겠지만,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결국 자진 사퇴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마찬가지다.그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집권 1기 때는 걸핏하면 ‘가짜뉴스 CNN’ ‘망해가는 뉴욕타임스’라고 하더니, 집권 2기에선 천문학적 금액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이지만, ABC 방송과 CBS 방송은 트럼프에게 1500만달러(22...

    2025.12.01 18:19

  • [여적]홍콩의 애도
    [여적]홍콩의 애도

    홍콩은 마천루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도시다. 그 독특함에 한몫 톡톡히 하는 게 건물 외관을 에워싼 ‘대나무 비계’(작업용 발판), 곧 ‘죽팡(竹棚·광둥어 발음)’이다. 홍콩영화에서도 아슬아슬한 대결을 펼치는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그 죽팡이 이번 홍콩 아파트 화재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걸로 전해진다. 지난 26일 화재가 발생한 홍콩 타이포의 32층짜리 아파트 단지 ‘웡 푹 코트’는 보수공사를 위해 설치한 대나무 비계와 공사용 안전망이 불길을 키웠다고 한다. 30일 기준 146명이 사망했다. 실종자도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안전 등을 이유로 진즉에 금속 비계로 대체된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서는 죽팡이 여전히 널리 쓰인다. 작은 아파트와 건물이 밀집해 있는 홍콩의 특성상 유연한 대나무가 더 적합하고 가격이 저렴해서다. 하지만 속이 빈 대나무는 가연성이 높아 안전문제가 제기됐었다. 웡 푹 코트 주민들도 외부 보수공사 기...

    2025.11.30 19:38

  • [여적]‘초코파이 재판’ 무죄가 남긴 것
    [여적]‘초코파이 재판’ 무죄가 남긴 것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징역을 살았다. 밀렵꾼인 그의 사냥용 총이 발각됐다는 이유로 5년형이 추가됐고, 4차례 탈옥을 시도한 괘씸죄가 덧씌어져 형량이 늘어난 것이다. 장발장이 감당한 가중처벌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도망친 장발장을 감옥에 넣는 일이 과업이었던 자베르 경감도 있다. 장발장이 존경받는 ‘마들렌 시장’이 된 뒤에도 자베르는 “범죄자는 영원히 악하다”는 신념을 꺾지 않은 극단적 법 수호자이자 가해자였다. 감옥에서 나온 장발장을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 받게 한 ‘노란 여권’ 역시 그에겐 전과자 증명서라는 가중처벌이었다.미리엘 신부의 사랑과 용서가 장발장을 다시 태어나게 했단 것이 <레미제라블>의 서사다. 하지만 상처 없는 사랑과 용서가 있을까. 장발장에겐 빵 한 조각이 자신의 운명을 파멸시킨 상처도 컸지만, 약자에게 가혹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온갖 ‘가중처벌’이 더 ...

    2025.11.27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