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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반전시위
미국이 참전한 전쟁이 없는 시기에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는 외교 문제가 유권자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경제, 불평등, 인종, 임신중지 등 미국 국내 문제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해 선거에서는 그런 공식이 깨질지도 모르겠다.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돼 다른 대학들로 확산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1968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떠올리게 된다. 56년 전 조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 대학생들의 친구·형제가 전장에서 죽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대학이 이스라엘군이 쓰는 무기 사업에 투자하고,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데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그때와 비슷하다. 가자지구의 참상을 시시각각 접하면서 자신들이 공범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1968년의 대학생과 2024년의 대학생은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연결고리로 만나고 있다... -
정치하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4·10 총선 참패 후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만 놓고 보면 생뚱맞기 그지없다. 대통령은 정치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 지도자이다. 그런데 취임 2년이 지나서야 정치를 하겠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뭘 했길래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정치하는 대통령’의 뜻을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 2년 동안 중요한 국정과제를 정책으로 설계·집행하는 데 업무 중심이 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정책에 대해 더 설득하고 소통하겠다.” 정책과 정치를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국정 방향은 옳았지만 소통과 홍보 부족 때문에 (총선에서) 국정운영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독단의 연속선에 있는 발언이다.대통령에게 정치는... -
‘소박한 자유인’ 홍세화
홍세화(1947~2024)를 세상에 알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1995)에서 개똥 세 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이야기는 그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일화에서 비롯됐다. 서당 선생이 3형제에게 장래희망을 묻는다. 서당 선생은 ‘정승’이 되겠다는 맏이, ‘장군’이 되겠다는 둘째를 칭찬하며 막내를 쳐다본다. 막내는 장래희망을 말하는 대신 ‘저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큰형에게 개똥 세 개 중 하나를, 저보다 겁이 많은 둘째 형에게 개똥 하나를 입에 넣어주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 개똥은? ‘당연히 서당 선생에게’라고 답한다. 할아버지는 ‘살아가며 세번째 개똥이 서당 선생 몫이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네가 그 세번째 똥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어린 홍세화는 수긍했다.군사독재 박해를 피해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23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을 때 그는 55세였다. ... -
네타냐후의 ‘위험천만 생존법’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을까. 미국의 도움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싸움마저 불사하더니, 급기야 이란 본토를 공격해 전선을 위험천만하게 넓히고 있다.이런 행보는 ‘전략적 실용주의 대가’로 불리던 과거의 네타냐후에 비춰 이해되지 않는다. 집권기간만 17년에 달하는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가 전략적 사고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극단적 선택을 반복하는 원인은 하나의 키워드로 좁혀진다.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다.정치적 생명이 끝나가는 듯했던 네타냐후 총리가 2022년 극우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기사회생한 후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사법부 무력화 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세 건의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네타냐후 방탄법’으로 불렸다. 이 법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사회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네타냐후가 사법부 무력화에 쏟은 노력의 극히 일부라도 국경 안보에 쏟았다면, 지난해 1... -
삼성 임원 ‘주6일 근무제’
삼성그룹 임원들이 이르면 이번주부터 주 6일 근무에 들어간다. 평일 외에 토·일요일 중 하루를 더 일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이미 주 6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관계사 임원들이 이번주부터 참여하고,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 임원들도 동참을 검토 중이다.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지침을 내리지 않았지만,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오죽 어려우면 이럴까 싶으면서도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삼성은 지난해 반도체에서만 15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올해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들 먼저 정신 재무장을 통해 올해 반드시 위기 극복을 해내자는 결의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신 무장이 토·일요일에 출근해야만 되는 것인가. 사실 대기업 임원들은 일과 사생활이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산다. 사무실에 있으나 집... -
가장 나쁜 ‘사과’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패배 후 ‘반성문’을 썼는데도 민심은 싸늘하다. 국민은 왜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걸까.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바티스텔라가 쓴 <공개 사과의 기술>을 보면, 윤 대통령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의 첫 단계부터 잘못됐다. ‘그러나·하지만’ 같은 ‘잘못을 축소하려는’ 조건을 달았다. 윤 대통령이 16일 직접 내놓은 첫 총선 관련 메시지에는 ‘국민이 이해하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장이 되풀이됐다.“취임 후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가 관리에 총력을 다했다. 그러나 서민들의 형편을 개선하는 데에 힘이 닿지 못했다.”사과에도 정석이 있다. ①무엇이 미안한지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하고 ②늦지 않게 제때 ③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④앞으로의 다짐과 약속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과가 완성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사과에는... -
환율 1400원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도 환율 상승과 함께 시작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다는 소식에 두려움이 엄습한다.연일 연고점을 높이던 원·달러 환율이 16일 한때 1400원 선까지 올라섰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한 데다 중동 지역에 전운이 드리운 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해 주가가 급락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자 외국인들이 주식시장에서 한국 주식을 내다팔았고, 그것이 다시 외환시장에서 환율 상승 폭을 키웠다. 당국은 환율 방어와 금융시장 안정에 사력을 다했다. 이례적으로 신중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오금화 한국은행 국제국장이 공동으로 나서 시장에 구두 개입했다. 이날 하루는 그런대로 약발이 들었지만 앞으로도 시장이 반응할지는 의문이다.환율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외국... -
기후 인플레이션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주식시장의 격언이 있다. 주요 커피 생산국 브라질에서 가뭄이 끝나고 비가 내리면 커피 생산량이 늘어나 원두 가격이 낮아지면서 스타벅스의 이익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서로 무관한 상황이 실제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나비효과를 설명할 때도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책사로 대중국 무역전쟁 선봉에 섰던 피터 나바로가 2000년대 초반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점차 현실화하는 기후변화는 이제 나비효과보다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동결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제일 곤혹스러운 점은 사과 등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기후변화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정도다. ‘금사과’에 이어 대파 등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국내 물가를 자극하고 있지만 통화정책이나 정부재정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
이란·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
이란과 이스라엘의 사이가 애초 이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팔레비 왕조(1925∼1979) 때 이란은 이스라엘(그리고 미국)과 우호 관계를 가졌다. 이란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이슬람권 국가로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번째로 인정했다. 이란의 1979년 이슬람 혁명 후에도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후 이란이 레바논·예멘·시리아 등에서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를 지원하면서다. 친이란계 무장단체들의 이스라엘 공격에 이스라엘은 이란 요인 암살, 핵시설 사이버 공격 등으로 응수했다. 양국 모두 자신이 했다고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소행임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두 나라가 ‘그림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해졌다.대리전 혹은 비밀 전쟁을 뜻하는 그림자 전쟁을 진짜 전쟁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상태가 지속되면 상호 신뢰는 고갈되고 증오가 커지며 오판에 의해 전... -
한동훈의 ‘정치 112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11일 사퇴했다. 지난해 12월21일 그 자리를 지명받고 112일 만이다.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이라 했지만, 현실은 짧은 ‘여의도 정치’의 막내림이다. “총선에 이기든 지든 4월10일 이후 인생이 좀 꼬이지 않겠나”라던 허세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다.고군분투부터 독선까지, 그를 보는 당내와 보수의 시선은 착잡하다. 궁금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한동훈 정치는 왜 실패했을까’와 ‘정치적 미래는 있을까’이다.당내에선 그의 실패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불신을 연결짓는다. 정치 본령에 해당할 ‘정치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 경험은 더 빈곤했다. “여의도 사투리”로 청산 대상을 지목하고 공격하는 데는 능했다. 검찰 출신의 그가 잘하는 일을 다시 했을 뿐이다. 정치 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고 빈곤함만 노정됐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정치에 문제 있다고 보는데 야당을 향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외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