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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0
  • [여적] 홍준표·권성동의 ‘입틀막’
    [여적] 홍준표·권성동의 ‘입틀막’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 경구는 ‘시민의 알권리’와 ‘권력 감시’를 위한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일깨운다. 그래서 권력자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퇴행도 언론 자유 위축으로 드러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입틀막’이 민주주의 억압의 총체였고, 그 결과가 12·3 내란이었다.윤석열은 비판 언론과 취재를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바이든-날리면’ 발언 논란 후 이를 처음 보도한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못 타게 했다. “MBC는 잘 들어”라며, 황장무 전 대통령실 수석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고, CBS 기자는 윤석열의 주말 골프 현장을 취재하다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입건됐다. 비상계엄 땐 경향신문·한겨레·MBC·JTBC의 단전·단수 지시도 소방청에 내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앞세운 공영방송 ...

    2025.04.17 18:28

  • [여적] 11번째 봄, 세월호
    [여적] 11번째 봄, 세월호

    “살수록 사무치는 게 부모여도 결국 명치 끝에 백혀 사는 거는 자식이라. 부모는 죽으믄 하늘로 보내도 자식은 죽으믄 요기서(가슴에서) 살린다. 영 못 죽이고 여기서 살려.”(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봄은 생명이 잉태되는 계절이다. 희망이 솟고 꿈이 영근다. 하지만 11년 전 봄은 꿈이 꺾이는 계절이었다.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의 생명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생중계된 참사 현장에서는 허둥대는 국가를 목도했다. 침몰하는 배와 승객들을 내팽개친 선장은 직업윤리를 벗어던졌고, 학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은 저 살기에 바빴다. 안전·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한없이 무력했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11번째 봄을 맞지만 지금도 명치 끝이 아프다.참사 후에도 국가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파릇파릇한 생명을, 아리셀 공장 폭발 참사로 고국으로 돌아가 행복하자던 다...

    2025.04.16 18:10

  • [여적]여의도 ‘난가병’
    [여적]여의도 ‘난가병’

    귀울림(이명)은 자기 귀에는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다. 코골이(비한)는 본인은 못 듣지만 다른 사람은 듣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공작관문고 자서>에서 이명을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비한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비유했다. 연암은 글쓰기 태도를 논하며 이명·비한을 거론했지만,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명은 ‘나잘난병(病)’에, 비한은 ‘나몰라병’에 비유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이명·비한은 일상에서 큰 문제가 아니고 치료도 가능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잘난병’ ‘나몰라병’은 여간해선 고치기 힘들다.배철수씨가 지난 9일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을 하면서 “현대인의 난치병 중 하나가 ‘난가병’(나인가? 병)”이라고 언급해 화제다. 그는 “객관적 자기 평가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병한다”며 “보통 사람들은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2025.04.15 18:15

  • [여적] 장하준의 ‘대선 제안’
    [여적] 장하준의 ‘대선 제안’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모두 힘을 합쳐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하면 좋겠지만 다른 나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트럼프의 전략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다. 협상 대상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고, 나라별로 따로 협상해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첫 번째 협상 대상이 된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에 따른 대미 협상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인도와 같은 3개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밑에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장하준 교수(영국 런던대 경제학과)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결코 서두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으로 권력 공백 상태인 점을 미국에 설명하고 협상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

    2025.04.14 18:54

  • [여적]금지단어 된 ‘배민 수수료’
    [여적]금지단어 된 ‘배민 수수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이 물음 하나로 배달앱 ‘배달의민족’은 국내 음식배달 시장을 장악했다. 2014년 배우 류승룡이 철가방을 들고 내달리던 광고는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상고 시대 이름인 ‘배달’(倍達)에서 착안해 만든 브랜드명도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갔다. 조선 후기에 이미 냉면이나 해장국을 배달해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배달의 민족이라 불러도 억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배달 천국이다. 한밤중이나 새벽, 한강 잔디밭부터 갯바위 낚시터까지 배달 안 되는 시공간을 찾기가 힘들다. 모바일 통신 덕에 위치 찾기가 쉬워진 데다, 폭염과 혹한에도 배달하는 노동자들 덕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배달앱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꼭 그만큼 자영업자들은 여위어갔다. 배달앱이 독과점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수익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영업자들이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포장 주문’마저 14일부턴 불가능해진다. 고...

    2025.04.13 18:46

  • [여적] 트럼프의 ‘시장 조작’
    [여적] 트럼프의 ‘시장 조작’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사건 발생 전 이스라엘 상장지수펀드(ETF)에 공매도가 급증했다. 누군가 테러 발생을 미리 알고 주가 하락에 투자해 돈을 벌었음을 의미한다. 2001년 9·11 사태 직전엔 일부 항공사 주식에 ‘풋옵션’ 매수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풋옵션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이다. 요즘 금융시장은 대형 사건 발생이나 주요 정책을 1분 전에만 미리 알아도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다.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의 관세정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고려할 때 관세 관련 정보에 대한 미 당국의 보안 유지는 필수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거꾸로다. 공식 발표 전까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도 부족할 판에 사전에 정보를 흘렸다. 9일 오전 9시37분(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945만명 팔로어에게 “지금이 매수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D...

    2025.04.10 18:15

  • [여적] 김연경의 ‘해피엔딩’
    [여적] 김연경의 ‘해피엔딩’

    김연경은 늘 ‘최초’였고 ‘최고’였다.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이자, 세계가 인정한 레전드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김연경을 가리켜 “10억분의 1(의 선수)”라고 평가했고, 지오반니 귀데티 전 세르비아 감독은 “축구로 치면 리오넬 메시 이상”이라고 극찬했다.‘배구여제’ 김연경이 ‘정상에 오른 뒤 은퇴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코트에 작별을 고했다. 김연경이 이끈 흥국생명은 지난 8일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정관장과의 최종 5차전에서 3 대 2로 승리하며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5개 세트 모두 2점 차로 갈린 명승부였다.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로 챔프전 MVP에 뽑힌 김연경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은퇴한다”면서 “마지막 경기에서의 내 모습을 팬들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정상에서 은퇴하게 돼 정말 좋다”며 웃었다. 스포츠 스타의 라스트댄스가 해피엔딩이 된 것이다.김연경이 써내려간 이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2005~2006시즌 흥국생명에서 프로 데뷔...

    2025.04.09 18:36

  • [여적] ‘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여적] ‘김장하 장학생’ 문형배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선고한 뒤로, 한 사람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김장하 선생(81)이다.김 선생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한약방 점원으로 일했다. 낮에는 약재를 썰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19세에 한약사 시험에 합격했다. 1963년부터 한약방을 운영하며 값싸고 효험 있는 처방으로 큰돈을 벌었다. 1984년 가산을 털어 진주 명신고를 설립해 7년 뒤 국가에 기증했다. 형편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는데, 다 합쳐 1000명이 넘는다. 지역 환경운동, 여성 인권, 문화예술 후원도 아끼지 않은 진주 시민사회 운동의 버팀목이었다. 김 선생은 2021년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남은 재산 34억원을 경상국립대에 기탁했다. 2022년 한약방 문을 닫았다.김 선생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고 했다. ‘줬으면 그만’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

    2025.04.08 18:45

  • [여적]미국 수출 금지된 ‘태평염전’
    [여적]미국 수출 금지된 ‘태평염전’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오웰이 막장에 들어가 함께 먹고 지내며 기록한 이 르포르타주에는 1930년대 북잉글랜드 탄광 노동자들의 실상이 생생히 담겨 있다. 노동자들이 묵는 침대는 청결은 고사하고 두 발조차 뻗지 못할 구조였고, 탄광 안은 흡사 지옥 같았다.오웰이 묘사한 참상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 염전 노동자들의 실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2014년 전남 신안의 ‘염전 강제노동’ 사건은 큰 충격을 줬다. 장애인을 유인·감금한 사업자들이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노예처럼 부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감금까지 했다.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1년 또 폭로가 나왔다. 지적장애가 있는 박영근씨는 7년간 감금당한 상태로 이 염전에서 일했지만 월급 한 번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얼마나 더 있...

    2025.04.07 19:00

  • [여적] 논술의 전범, 헌재 결정문
    [여적] 논술의 전범, 헌재 결정문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지난 4일 인천 안남고 1학년 학생들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헌법을 짓밟은 대통령이 파면되는 역사적 순간을 TV로 목도하고, 민주주의 의미를 새겨보는 ‘계기교육’을 체험한 것이다. 계기교육은 교육 과정에 없는 소재나 주제를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진행하는 비정규 수업이다. 시청 후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 학교처럼, 전국 10개 시도에서 ‘윤석열 탄핵’ 계기교육이 학교 재량으로 이어졌다. 박수가 터진 교실도 많았고, 진지한 작문·토론도 이어지면서 ‘살아있는’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졌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2분간 낭독한 윤석열 파면 결정문은 ‘논술문의 전범’으로 불릴 만하다. 쟁점마다 객관적 증거와 법 조항을 열거하면서 법리적 해석을 내놨고, 관형어·부사를 절제한 문장으로 정의와 단죄를 역설한 선고는 간단명료하고 단호했다. 딱딱한 법원 판결문과도 달랐다. 헌재 ...

    2025.04.06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