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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휘호석
군사반란과 내란, 학살을 빼고 전직 대통령 전두환을 평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집권 후 폭압적인 공안 통치로 이어졌다. 그러나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은 그를 상찬했다. “5·18과 12·12를 빼면 전두환은 정치는 잘했다.” 그때 윤석열의 속내를 알아차려야 했다. 단순한 강경 우파 지지층에 대한 구애성 발언이 아니라 ‘집권하면 전두환식 통치를 하겠다’는 뜻이었음을.윤석열 정부 3년은 전두환 독재와 여러모로 닮았다. 전두환 곁에 정치군인 ‘하나회’의 몽둥이가 있었다면 윤석열에겐 검찰의 칼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몽둥이와 칼로 냉전 이데올로기를 지폈고, 민주주의에 총부리를 겨누고, 반노동을 노골화했다. 전두환은 쿠데타, 비상권력기구, 정치인 구금을 밀어붙였다. 그 궤적을 좇은 윤석열도 지난해 12월3일 대한민국 시곗바늘을 1979년 12월12일로 되돌렸다. 12·12 쿠데타를 “우발적 사건”이라고 한 전두환처럼, 윤석열은 12·3 내란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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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빨대
2019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선대본부장인 브래드 파스케일은 종이 빨대로 음료를 마시던 도중 짜증이 밀려왔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눅눅해지고 금세 찢어지다니…’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트럼프 로고를 새긴 플라스틱 빨대를 선거 캠페인에 도입해보면 어떨까.’ 지지자들에 보낸 e메일에서는 ‘음료를 마실 때 젖으면서 흐물흐물해지고 이상한 맛이 나는 종이 빨대’에 대한 반감을 자극했다. ‘진보적인 종이 빨대는 쓸모없다’며 환경 문제를 우선 가치로 두는 민주당 조롱도 잊지 않았다.트럼프라고 적힌 9인치(약 23㎝) 길이의 플라스틱 빨대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0개들이 한 묶음에 15달러로 비싸도 판매 1주일 만에 46만달러(약 6억6800만원)나 벌어들였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은 선거자금에 보탰다. 트럼프의 상징과도 같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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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을 넘어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의 자식이었다. 부모가 농민이 아니어도 조부모가 농민이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농촌·농민과의 연결이 옅어졌거나 끊어졌다. 밥과 채소를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식재료가 농촌에서 온다는 실감을 잃어버린 이들이 많다.경향신문이 지난 한 달간 ‘남태령을 넘어’ 기획 기사를 8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 기사들은 20~30대 여성 기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농촌에서 한달살이 등 현장 취재를 통해 기록한, 포괄적이고 사실적인 2025년 농촌 보고서이다. 농촌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더 심각하며, 의료와 교육 같은 공공재를 누리기도 더 힘들어졌다. 농민들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농산물값 폭등·폭락이 심해지며 유통업자에게 주도권을 점점 더 내줬으며, 외국인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도시민의 안락한 삶을 위해 송전선과 쓰레기 매립장·소각장 같은 혐오시설을 떠안으며 농촌 환경과 공동체가 파괴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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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생 없는 초등학교
막냇동생을 들쳐 업은 어머니와 한참을 걸어 학교란 곳에 처음 갔다. 하얀 가재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차고 신주머니를 들었다. 동네 공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운동장이었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벽보에서 이름을 찾아 ‘1학년 7반’ 알림판을 든 선생님 앞에 가서 섰다. 맨 처음 배운 것은 ‘앞으로나란히’, 선생님을 따라 병아리 떼처럼 줄지어 들어간 교실은 ‘콩나물시루’였다. 남자는 1번, 여자는 51번부터 번호를 매겼다. 나는 33번이었다. 그래도 오전·오후반으로 나누는 ‘2부제’ 수업은 안 한다고 어머니가 기뻐하셨다.교육 여건이 개선돼 콩나물 교실과 2부제 수업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됐다. 입학식장 질서 유지를 위해 어린이들에게 ‘앞으로나란히’를 강요할 일도 없다. 이젠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1968년에 100만명을 넘은 초등학교 입학생은 올해 32만명으로 줄었고, 내년부터는 30만명 밑으로 떨어진다. 올해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어 입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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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개발처
“우리는 미 국민을 대신해 해외에 민주적 가치를 전파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한다.” 1961년 설립된 미국국제개발처(USAID) 선언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은 한국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야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할 수 있고, 그것이 미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한국과학기술원과 한국개발연구원 모두 USAID 차관으로 설립됐다. 통신망, 상하수도 등 인프라를 깔 때마다 USAID 지원금이 투입됐다. USAID가 주거 여건 개선을 위해 제공한 차관으로 지은 ‘AID 아파트’는 나중에 금싸라기 땅이 됐다.냉전은 종식됐지만 USAID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기후위기로 기아는 오히려 확대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위험이 등장했다. 시리아·미얀마·우크라이나 등 전쟁과 분쟁은 더 잦아졌다. 현재 USAID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100여개국이다.이러한 USAID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연방정부 예산을 큰 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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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홍수 전략’
취임하자마자 전 세계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식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상을 뛰어넘는 극단적인 정책들을, 압도적인 양으로,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이다.트럼프가 취임 후 불과 2주 동안 쏟아낸 행정명령은 무려 53개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취임 후 100일 동안 서명한 42개를 이미 뛰어넘었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100일과 비교하면 5배 수준이다. 내용 면에서도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해외 원조 중단, 미등록 이민자 추방 등 하나하나가 모두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이 중에는 ‘출생시민권 폐지’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벗어나고 명백히 위헌적인 것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몰역사적인 ‘가자지구 영구 소유’ 발표도 그렇게 나왔다.복수심에 불타는 트럼프가 앞뒤 재지 않고 위법적인 행정명령을 폭탄투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그의 언행은 철저한 계산에 따른 전략이다. 한때 트럼프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은 과거 미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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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허황된 “가자지구 차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집트 등 이웃 나라로 “재배치”하고, 미국이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파괴된 잿더미”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TV쇼가 아니라 지난 4일 2기 행정부 첫 정상회담에서 한 말이다.미국이 가자지구를 차지할 법적 권한은 없다. 무력으로 차지하겠다면 미군 주둔이 필요한데 중동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 이웃국이 200만 팔레스타인인을 수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가 봐도 허황된 발언이 나오는 동안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씩 웃으며 트럼프를 바라봤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싹 다 정리해버리겠다는 건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조차 차마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꿈이니까.트럼프의 말 중에 유일한 진실은 가자지구가 사람 살기 어려운 “지옥”이 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2007년 이후 가자지구 불법 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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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연합’과 촛불정신
12·3 비상계엄과 내란의 겨울 이후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통령 윤석열의 공동체 파괴에 한마음으로 나섰지만, 광장을 밝힌 응원봉만큼 ‘새봄’의 꿈은 형형색색일 터다. 옥중의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윤석열 이후 사회대개혁을 위한 ‘정치 연합’ 화두를 쏘아올렸다.그는 지난 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수구·보수 진영은 권력 유지·연장을 위해 총집결하고 있다”며 ‘새로운 다수연합’을 제안했다. “자산·주거·건강 불평등 등이 국민의 최고 고통”이라 진단하고, 연합정치를 길잡이로 불평등·양극화·차별 없는 사회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김동연 지사는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 전 대표 인터뷰를 공유한 뒤 “정권교체, 그 이상의 교체가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SNS에서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국민이 함께하는 “국민연대”를 주장했다.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기 마련이다. 조 전 대표의 다수연합은 ‘진보연합’에 가깝다. “이재명 대표가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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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방화벽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요즘 잘나가는 민주주의 연구자들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공저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이비 민주주의자 판별법으로 극단적 정치세력, 그리고 폭력과 선을 긋는지를 보면 된다고 했다. 2020년 1월6일 미국 연방의회 건물 난입 사건과 선을 긋지 못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한 공화당 지도부를 사이비 민주주의자 사례로 들었다.비슷한 시험대에 오른 중도보수 정치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곧 있을 총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독일 기독민주연합(기민련)이 그중 하나다. 이 중도보수 정당은 지난달 29일 연방의회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과 연합해 이민 규제 강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난민 신청이 거부된 이민자를 구금하고 미등록 이주자의 입국을 막는다는 내용이다. 비록 결의안이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 차원에서 유지된 ‘방화벽’이 무너진 첫 사례였다. 방화벽은 홀로코스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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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
“사는 게 너무너무 피곤합니다.”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지난해 9월 세상을 등지면서 남긴 말이다. 오씨는 휴대전화에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유족이 ‘직장 내 괴롭힘’ 정황이 담긴 유서를 발견하고, 동료 직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보도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오씨는 2021년 5월 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기상캐스터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즈음 오씨와 그의 동기를 뺀 ‘MBC 기상캐스터 4인 단톡방’이 생겼고,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오씨와 같은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피해를 호소하기도 어렵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21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 인력 중 919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중 32.1%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