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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5
  • [여적] 민주주의와 밥
    [여적] 민주주의와 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근의 원인이 자연재해보다 불평등한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1983년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일어났다. 에티오피아에선 곡물가가 3배로 뛰었고 100만명이 굶어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곡물 생산량은 1982년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1983년에도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시기 보츠와나는 곡물 생산이 예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지만 아사자는 없었다.당시 에티오피아는 군사독재, 보츠와나는 민주 정부였다. 에티오피아는 국내총생산(GDP)의 46%를 군사비로 지출하며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을 구제하는 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면 보츠와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취약계층에 직접 식량을 나눠줬다. 식량 자원을 분배할 권한을 누가 가졌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생사가 갈린 것이다. 독재국가는 사람들이 ...

    13시간 전

  • [여적] 반구천 암각화
    [여적] 반구천 암각화

    바위나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예술 흔적이다. 흔히 암화(바위그림)라고 부른다. 바위를 캔버스 삼아 윤곽을 그린 뒤 색을 입힌 건 암채화, 돌이나 쇠로 바위를 쪼아 형상을 드러낸 것은 암각화라고 한다.한국에서는 아직 암각화만 발견됐다. 특정한 형상이 새겨진 일반 암각화 유적이 37곳, 윷판이 새겨진 253개의 윷판형 암각화가 60곳에서 보고됐다. 이 바위그림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다. 풍요와 비를 빌던 기도였고, 삶의 기록이자 의례였다. 바위에 새겨진 선 하나, 점 하나는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에 띄운 간절한 마음이다.울산 반구천(대곡천)에 자리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한반도 선사문화의 정수로 꼽힌다. 이 두 곳이 ‘반구천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12일 한국의 17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선사인의 예술성을 보여준다”며...

    2025.07.13 18:10

  • [여적]박정훈 대령의 복귀
    [여적]박정훈 대령의 복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나.” 2023년 7월31일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폭우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한 말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이 ‘격노’로 180도 바뀌었다. 수사 축소, 경찰 이첩 자료 무단 회수, 구명로비 의혹까지 무리한 수중수색을 지시했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비호하려는 권력의 무리수가 이어졌다. 이 사건을 파헤치던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수사권을 뺏은 것도 ‘격노’ 직후였다. 경찰 이첩 서류를 회수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박 대령을 국방부 검찰단이 ‘집단항명 수괴’로 기소했고, 권력 실세들도 “채 상병 사건은 박정훈의 항명이 본질”이라고 몰아세웠다.하지만 윤석열은 짐작이나 했을까. 박 대령 기소는 정권 몰락을 당기는 또 하나의 방아쇠였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걸려온 대통령실 내선번호 ‘02-800-7070’은 윤석열의 수사 외압을 밝혀줄 실체적 단서가...

    2025.07.10 19:41

  • [여적]‘VIP 격노설’ 피의자 김태효
    [여적]‘VIP 격노설’ 피의자 김태효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최고 실세였다. 그의 지론인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윤석열의 기본 노선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측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소극 대응한 것이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3자 변제 해법을 불쑥 내놓은 것도 그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잠깐 변호사로 일한 것 말고는 줄곧 검사로 재직한 윤석열이 외교안보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자유’ 타령을 입에 달고 산 윤석열이 일방적 친일외교 주연배우였다면 김 전 차장은 그 총감독이요, 배후 복화술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윤석열 방미를 한 달 앞둔 2023년 3월29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했다. 윤석열의 대광초등학교 동창인 김 전 실장은 윤석열의 ‘외교안보 과외 교사’로 불렸다. 그런 사람이 돌연 사퇴했으니 추측이 분분했다. 그중 하나가 김 전 차장과의 갈등설이었다. 대일협력 강화를 두고 신중론자인 김 전 실장과 속...

    2025.07.09 18:10

  • [여적]고공여지도
    [여적]고공여지도

    박노해의 시 ‘이 땅에 살기 위하여’는 고공농성, 지하 수백m 막장 봉쇄농성, 해외 원정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을 다룬다. 노동자들은 “이 땅에 발 딛고 설 자유조차 빼앗겨/ 지상 수십미터 아찔한 고공농성”을 한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 우리의 노동으로 일떠세운 이 땅에/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다. 록밴드 YB가 1997년 이 시를 랩으로 만들어 2집 음반에 수록했다. 윤도현이 외치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라는 구절이 노동자들 절규처럼 들린다.이 땅에서 벌어진 노동자 고공농성의 원조는 ‘체공녀’ 강주룡의 평양 을밀대 고공농성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5월23일 평원고무공장의 조선인 사장이 임금 17%를 일방적으로 삭감하자 여성노동자 49명이 파업을 선언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사측은 경찰을 불러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해고를 통보했고, 강주룡은 5월29일 새벽 홀로 무명천 밧줄을 타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 7시간...

    2025.07.08 18:10

  • [여적] 머스크의 아메리카당
    [여적] 머스크의 아메리카당

    기행과 좌충우돌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급기야 ‘아메리카당’이라는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감세와 국경 보안 강화책 등을 담아 상·하원을 통과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날을 세우더니 아예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다. 머스크는 “신당 창당 여론조사 결과 찬성 65%, 반대 35%로 나왔다”면서 “여러분들은 새 정당을 원하며, 그것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머스크의 창당을 ‘터무니없는(ridiculous)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일’은 트럼프가 세계에 한 것도 결코 적지 않다. 머스크가 내세운 명분은 정치 혁신, 기득권 정당 타파로 요약할 수 있다. 선거 국면에서 한국의 유권자들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소리다. 머스크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상원 2~3석, 하원 8~10석 확보가 목표라고 한다. OBBBA가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조차 1표 차이로 통과한 점을 고려하면, 이 정도 캐스팅보트...

    2025.07.07 18:52

  • [여적] 납북자가족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
    [여적] 납북자가족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

    납북자피해자가족모임이 8일 임진각에서 파주시와 함께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선언한다. 대북전단 단체들 중 살포 중단 결정은 처음이다. 남북의 확성기 방송 중단에 이어 접경지 주민 안전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반가운 소식이다.납북자가족모임의 전단 살포 중단 결정엔 새 정부의 정책 변화와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김남중 차관의 ‘위로 전화’를 받은 뒤 모임 내 논의가 급진전됐고, 가족들의 전원 찬성으로 중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최성용 모임 대표는 지난 5일 “이 정부를 믿고 더는 소식지를 날리지 않겠다”고 했다. 대화와 신뢰구축이 남북 간에도 남남 간에도 평화를 향한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확인하게 된다.대북전단 살포 단체는 납북자가족모임 외에 탈북민 단체, 보수성향 시민단체, 기독교 단체 등 다양하다. 전단 살포 목적도 다르다. 납북자가족모임은 납북 가족의 생사 확인·송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전단은 주로 ...

    2025.07.06 19:04

  • [여적]9년 만의 특별감찰관 부활
    [여적]9년 만의 특별감찰관 부활

    자리와 이권을 노리는 부나방들은 늘 대통령 친인척 주변에 꼬여들었다. 대통령의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른 비선 실세 친족도 있었다.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은 ‘소통령’으로, 김대중의 세 아들은 ‘홍삼트리오’로 불리며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친족이 수사받지 않은 대통령은 없었다. 그 제도적 귀착점이 특별감찰관제였다.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2014년 2월 여야 합의로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대통령실 수석급 이상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5년 3월 검사 출신 이석수 변호사가 초대 특별감찰관(특감)에 임명됐다. 특별감찰 1호는 2016년 7월 검찰에 고발한 박근혜의 여동생 박근령이었다. 그러나 이 특감은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의 감찰 내용 유출 논란이 불거지더니 3년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9월 사실상 해임됐다. 쫓겨난 실제 이유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미르재단 불법 모금을 감찰·내사했기 때...

    2025.07.03 19:35

  • [여적]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
    [여적]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무위원들에게 “국회에 가시면 직접 선출된 권력에 대해 존중감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국회 존중’을 당부했다. 국무회의 첫머리에 “국회와의 관계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쏟아낸 작심 발언이었다. 국회를 콕 집어 ‘몸 낮출 것’을 주문했지만 대통령 자신이 선출 권력의 정점이니, 전 정부 국무위원들과의 동거가 길어지면서 기강을 잡은 것이란 해석이 그리 틀리지 않다.공직자들은 통상 국회 답변 때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말문을 연다. 동료 의원들 간에도 마찬가지다. 의회 기원인 영국 의회의 ‘Honorable’에서 유래한 것일 텐데, ‘상호 존중’이 의사당의 근본임을 담은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공직자들이 야당 의원들과의 설전을 잘하는 걸로 여기는 풍경이 다반사가 됐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정점을 이뤘다.한덕수 전 총리는 대정부질문에서 “똑바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똑바로 듣는 게 중요하다”며 의원들을 타박했고, 한동훈 전...

    2025.07.02 19:42

  • [여적] 딱 걸린 ‘내란 대행’, 한덕수
    [여적] 딱 걸린 ‘내란 대행’, 한덕수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12·3 비상계엄 사흘 뒤 새로 작성된 계엄 선포문에 한덕수가 뒤늦게 서명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이 김주현 민정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조작된 공문서에 한덕수 서명을 받았다. 해당 문서엔 이후 윤석열도 서명한다. 계엄의 절차적 흠결을 감추기 위해 선포문이 마치 12월3일 밤에 승인된 것처럼 공문서를 조작한 것이다.그러나 문건 조작 사실이 들통날까 두려웠던 한덕수는 강 실장에게 해당 문서의 폐기를 요구한다. 강 실장 보고를 받은 윤석열은 한덕수의 뜻대로 하라고 지시했고, 그 문서는 결국 폐기됐다. 한덕수가 비상계엄 위법성을 인지했을 뿐 아니라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거다. 앞서 한덕수는 국회 국조특위에서 “소지하고 있던 계엄선포문 두 장 중 한 장을 부속실장에게 보냈고 부속실장이 한 장 겉표지에 서명을 요청하기에 이 문서가 소지하고 있었던 문서가 맞다는 의미로 서명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

    2025.07.01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