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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 레이디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의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는 고양이에 대한 재미있는 찬사가 있다. “고양이에 대한 의례는 외교 의전보다 더 까다롭다”는 것이다. 애묘인 하인라인은 인간이 고양이를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대를 풍미한 작가나 예술가들 중 고양이를 각별히 사랑한 ‘캣 맨’은 이 밖에도 많다.그러나 고양이 애호가가 많은 서양에서도 유독 ‘캣 레이디’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 말은 보통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만 키우는 중년 독신 여성을 비하할 때 쓴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좋아한다면 종종 등장하는 ‘크레이지 캣 레이디’를 알고 있을 것이다.미국 대선에서도 캣 레이디가 소환됐다. “자녀도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비참한 삶을 사는 여성들(cat ladies)이 나라의 미래도 비참하게 만든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가 과거 인터뷰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공격했던 말이 도화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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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토론 성적표
미국 대선에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의 TV토론이 10일 열렸다. 전 세계가 지켜본 토론은 올 대선의 최대 고비였다.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1%포인트 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중에 여전히 5%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초박빙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대선 전 추가 토론이 있을지 불확실해 이번 토론에 시선이 집중됐다.78세 트럼프는 지난 두 번 대선 때 못지않게 정력적이었다. 과도한 단순화와 사실 왜곡을 무릅쓴 쉬운 화법도 한결같았다. 해리스는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한 듯 때론 단호하고 때론 부드러운 발언으로 덜 알려진 자신의 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원래는 정권심판론이 압도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가 돌연 교체되며 트럼프의 화살은 “나는 바이든이 아니다”라는 해리스의 앞에서 과녁을 빗나갔다. 이미 대선에 3번 연속 나와 비슷한 얘기를 반복한 트럼프가 심판 대상처럼 보였다.토론은 경제·에너지 분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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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의 ‘허위·왜곡’ 웹툰
1978년 제작된 만화영화 <똘이장군>은 볼거리가 많지 않던 당시 어린이들에게 호러와 스릴러적 재미를 함께 안겨준 문화콘텐츠였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어린이들은 북한 군인이 정말 늑대와 여우 모습을 한 줄 알았고, 김일성은 실제로 돼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나중에 이 영화가 중앙정보부의 직간접적 협찬을 받아 제작된 반공선전영화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았다.문화체육관광부가 제작해 지난 7월30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웹사이트에 게시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로 북한 주민들의 삶을 말합니다> 웹툰이 허위·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책자로도 제작돼 국회도서관에 배포된 이 콘텐츠는 컴퓨터 앞에 앉은 학생이 군인에게 적발되는 장면에 “북한이 대북풍선 속 USB에 담긴 한국 드라마를 본 중학생 30명을 공개처형했대”라는 해설로 시작한다. “이뿐만이 아냐.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17세 안팎 청소년 30명에게 무기징역과 사형을 선고했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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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
1945년 8월15일 한반도 인구 8%에 해당하는 약 210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들 중 70만명이 일본에 남았고, 140만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귀향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귀환 수단은 선박이 유일했고 그마저도 자리를 얻기 어려웠으며 항해 도중 숨진 이도 많았다. 가장 비극적 사례는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 폭침 사건’이다.그해 8월22일 일본 본섬 최북단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노무자 수천명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이 출발했다. 이 배는 이틀 뒤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로 침몰했다. 당시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때로 일본 군부가 수송 책임을 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일본 정부는 이 배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쳐 폭발해 승선자 3735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하면서도 승선자 명부는 침몰 당시 상실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재일 사학자 김찬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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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아닌 세상을 바꾸자”
앞으로의 모든 여름은 2024년과 비교될 것이다. 이전까지 폭염의 ‘바로미터’였던 1994년과 2018년의 여름을 제치고, 올해가 가장 더운 여름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올여름 전국 평균 열대야는 20.2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평년 6.5일의 무려 3.1배에 달한다. 전국 평균기온(25.6도)은 평년보다 1.9도 높았다. 이는 기상관측망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1973년 이래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 기록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 같은 기후변화 추세대로라면, 올해가 우리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란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지난 7일 서울 강남역 앞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2만여명의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기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네번째를 맞는 ‘기후정의행진’이 예년과 달리 종로·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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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대통령의 사저
대한민국 헌법 85조는 “전직 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6조는 전직 대통령 또는 유족에게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 등 예우를 할 수 있도록 했고,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4조는 퇴임 후 최장 15년 이내의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도 대통령경호처의 경호 대상으로 정한다. 이런 법률에 근거해 퇴임한 대통령을 위한 경호시설에 국고가 지원되는데, 정부는 통상 대통령 임기 3년차에 관련 예산을 편성한다.전직 대통령 사저는 곧잘 반대 정파의 공격 소재가 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국회의원이던 2008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주변에 1000억원이 들어갔다며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인근 웰빙숲 조성 등은 사저 공사와 무관했고, 사저 땅값·공사비 등으로 쓰인 12억여원은 노 전 대통령이 개인 돈에 대출받은 돈을 보태 마련했다.대통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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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만 없으면…” 김문수의 망발
국회가 없다면, 장관은 필요할까. ‘권력자 1인과 나머지’뿐인 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4일 KBS 1라디오에서 “국회만 없으면 장관 할 만한 것 같다”고 또 한번 ‘황당 발언’을 했다. “인사청문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또 “국회에 나오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제, 그저께도 계속 (예산) 결산심사 때문에 국회에 나왔다”고 했다. 진행자의 ‘국회 경시 발언’ 우려에 김 장관은 “국회를 너무 중시해서 아주 무겁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결국 듣기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피하고 싶다는 것인데,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기사만 안 쓰면 기자도 할 만…’처럼 술자리 농담이면 몰라도, 국무위원 공개 발언으로는 몹시 부적절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항의를 우려해 민주화 이후 국회 개원식을 ‘패싱’한 첫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의식의 흐름’이다.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내내 대통령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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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평가원
“김 대리 어딘가?” “지금 ‘거래처’인데요.” “그래, 수고하게.”‘거래처’라는 술집 이름에 직장 상사가 속아 넘어간다는 에피소드 한 도막이다. 비슷한 일이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다.‘한국학력평가원’, 일개 사설 출판사이지만 공공기관을 연상케 한다. ‘평가원’으로 축약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주관하고 교육과정·교수학습·교육평가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국책연구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헷갈린다. 이 회사가 최근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 교육부 검증을 통과했지만 친일 인사와 이승만 독재 옹호, 일본군 위안부 축소 서술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는 ‘우세한 경제력과 군사력’ 등으로 표현해 강대국의 논리를 반영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세월호 참사의 국가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비판, 예전 국사 교과서 내용을 표절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여 있다. 집필자 중 한 명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 보좌역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거창한 이름과 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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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처지’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가 맞닥뜨리는 가장 첨예한 문제가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대통령 노선을 계승할 것인가, 차별화를 꾀할 것인가. 인기 없는 정권의 주자일수록 후자로 기울었다. 김영삼 정권 때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의원이 그랬다. 반응은 대통령마다 달랐다. 김영삼 대통령은 YS계 이인제의 탈당 및 대선 출마를 묵인했고, 이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야당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대안이 여의치 않았는지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불사해가며 정적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차기 주자의 차별화 시도는 대개 대통령이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임기말에 본격화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에선 집권 3년차인 올해 초에 벌써 시작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총선 때 김건희 여사 문제로 윤 대통령과 충돌했고, 지난 6월 당대표 경선 때는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약속했다. 당대표가 된 뒤에는 2026년 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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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통문의날’과 딥페이크 성착취
1898년 9월8일자 황성신문은 논설을 빼고 그 자리에 ‘별보(別報)’를 실었다. “하도 놀라고 신기하여 우리 논설을 빼고 아래에 기재하노라”라는 설명을 달았는데, 그 놀라운 일은 서울 북촌 양반 여성들의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여권통문) 발표였다.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과 경제 활동 참여권(직업권), 정치 참여권(참정권) 주장이 주된 내용이다.황성신문뿐 아니라 다음날 독립신문 등에도 전문이 게재됐다. 선언은 이소사·김소사의 이름으로 9월1일 발표됐는데, 여기서 소사는 기혼 여성을 가리킨다. 여성들이 이름도 없이 소사로 통칭되던 시절, 여권통문 발표는 세상을 뒤집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들의 외침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 설립으로 이어졌고, 1899년 회비를 모아 최초의 민간사립 여학교 순성여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