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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적] 투표 못하는 사람들
    [여적] 투표 못하는 사람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재외국민 선거지만, 한때 해외에 체류하는 국민은 투표할 수 없었다. 1967년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해외에 나간 국민들을 위해 ‘해외 부재자 투표 제도’가 도입됐다가 1972년 유신체제 선포와 함께 폐지됐다. 그러곤 32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야 재외국민 참정권이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되살아났다. 공직선거법의 재외선거 배제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라면 어디에 있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이 다시 자리 잡았다. 2009년 재외국민 선거 제도가 정식 도입됐고,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시행됐다.머나먼 타국에서도 6·3 대선에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이 있는 반면, 정작 국내에 있으면서도 투표를 못하는 유권자가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교대 근무나 건설현장 등에서 일해 선거일에 쉬지 못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투표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번 대선은 사전투표일조차 평일이...

    2025.06.02 18:20

  • [여적]낯 두꺼운 ‘파면 대통령들’
    [여적]낯 두꺼운 ‘파면 대통령들’

    독단에 사로잡힌 국정 최고 지도자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리 없다.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인재풀이 좁고, 실정 원인은 야당·언론 탓으로 돌린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국정농단, 윤석열의 12·3 내란은 그렇게 잉태됐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다.”(박근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윤석열) 파면 후의 두 말도 똑같이 민심의 분노를 불렀다.2022년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박근혜 파면·단죄 후에 꿈꾼 새 세상의 기대가 환멸로 바뀐 악몽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사건과 인물은 역사에 두 번 등장한다’는 헤겔의 경고처럼, 결국 윤석열 내란이라는 더 큰 비극이 재현됐다. 정권에 반대·비판하는 사회 구성원과 정치세력은 절멸·추방 대상으로 규정하고, 헌법기관을 총칼로 짓밟으려 한 내란은 박근혜를 탄핵할 땐 생각도 못했던 반국가적·몰역사적 망동이었다. 자숙하고 속죄하며 살아도 모자랄 전직 대통령 윤석열·박근혜가 내란까지 비호하는 보수세력 후보 김문수를 돕자고, 대선판을 ...

    2025.06.01 19:40

  • [여적] 김문수표 ‘인천상륙작전’
    [여적] 김문수표 ‘인천상륙작전’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6·3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인천 계양구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이곳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역구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인천상륙작전’이라 했다.선거 유세에 전략과 의미가 실리듯, 후보들은 투표 장소도 고심해서 고른다. 한 명의 지지자라도 더 투표장으로 이끌 메시지를 담으려는 의도다. 이를 두고 ‘투표의 정치학’이라고도 한다. 이재명 후보는 청년들과 서울 신촌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지역구 경기 동탄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남 여수 주암마을회관에서 투표했다. 각각 ‘청년 시대’ ‘대역전’ ‘기후위기 극복’의 의미를 담았다.그리 보면 김 후보의 계양 선택은 몹시 도발적이다. 아예 경쟁자의 ‘정치 근거지’에 상륙해 무너트리겠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투표 후 맥아더 동상을 찾아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완전 적화가 됐을 것”이라며 “1번(이재명 후보)을 찍으면 자유가 없어진다”고 했다. 한...

    2025.05.29 18:48

  • [여적] 드라마는 넷플릭스, 음악은 텐센트
    [여적] 드라마는 넷플릭스, 음악은 텐센트

    언론사가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에 뉴스 유통을 의존하게 된 것은 전재료라는 ‘독이 든 사과’ 때문이었다. 뉴스를 돈 주고 사가는 포털로부터 안정적 수익을 올리게 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포털은 거대한 ‘뉴스 플랫폼’이자 ‘검색 기지’가 됐다.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획을 그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드라마·영화 콘텐츠의 유통이 K콘텐츠 세계화를 촉진했다. 하지만 점점 그늘도 드러나고 있다. 넷플릭스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제작비가 상승하고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드라마 제작이 줄고 있다. 지난해 주요 OTT와 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편수는 2022년 대비 25%나 급감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드라마·영화 제작사 11곳 중 6곳이 지난해 영업적자였다. TV 드라마의 시청률·광고수익 감소로 인해 중소 제작사는 문을 닫고, 작가·연출자·카메라·음향 등 현업 종사자들이 갈 곳을 잃게 된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올 1분기에도 <중증외상센터...

    2025.05.28 19:05

  • [여적] 세계문화유산 ‘금강산’
    [여적] 세계문화유산 ‘금강산’

    ‘정선아리랑’의 첫 대목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로 시작한다. 신의 솜씨 같은 자연의 신묘함과 불교 유적 가득한 믿음의 영산 ‘금강’의 진면목이 담긴 것이다. 지옥에 가지 않으려 살아 금강산 가보길 소원하는 ‘버킷리스트’였다 하니, 민초들 영혼의 이상향 같은 곳이다.금강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금강산에 대해 ‘등재’ 권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27일 전해졌다. 이변이 없으면 7월 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확정되는데, 자연유산·문화유산 성격을 모두 지닌 ‘복합유산’으로 등재될 거라고 한다. 복합유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해동 명산 금강은 중국의 소동파가 “고려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 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이름이 높았다. 오죽하면 중국 사신이 오면 금강산 가길 청해 조정이 골치를 앓았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까지 남았을까. 왕세자 시절인 1926...

    2025.05.27 18:46

  • [여적]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부활
    [여적]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부활

    서울대에서 지난해 사라진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가 시민 강의로 부활한다. 학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제도권 밖 강의지만,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의 어두운 이면을 비출 학문의 명맥은 이어지게 됐다.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기반으로 한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부활은 학생들의 자생적 노력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8월 폐강 당시 ‘수요와 교수진 부족’을 이유로 든 대학 측은, 학생들이 연서명으로 수요를 증명하고 강성윤 서울대 경제학부 강사가 강의 의사를 밝혔음에도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불온한’ 경제학을 말려 죽여 퇴출시키고 싶었던 것이다.‘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과 강 강사가 여름학기에 무료로 여는 ‘정치경제학 입문’ 강좌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22일부터 온라인 수강신청을 받은 결과, 26일 오전까지 재학생 160여명을 포함해 1500명이 넘는 수강인원이 모였다. 학문의 다양성을 소중히 여기고 자본과 시장 논리만이 판쳐서는...

    2025.05.26 18:31

  • [여적] 트럼프와 하버드대
    [여적] 트럼프와 하버드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기간 내내 언론을 적대시했다. 뉴욕타임스나 CNN 등을 “국민의 적”으로 낙인찍고 백악관 비공식 브리핑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특히 리버럴 성향이 강한 뉴욕타임스에 대해서는 “망해가는 회사”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트럼프는 집권 2기 들어 공격 대상을 대학에 맞추고, 그중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22일 하버드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철회를 밝히며 하버드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하는 초강수를 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22억달러(약 3조원)에 이르는 보조금 지급계획을 취소했고,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 박탈도 추진하고 있다.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해온 ‘반유대주의 근절’,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 축소 등을 미국 대학 중 하버드대가 처음으로 공식 거부한 데 대한 대응이다. 하버드대는 지난달 “우리는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 학...

    2025.05.25 19:32

  • [여적] 김문수 교육특보 ‘9000명’
    [여적] 김문수 교육특보 ‘9000명’

    특보는 ‘특별보좌관’의 줄임말이다. 공식 직제에는 편재되지 않지만 권력자와의 친소 관계나 접촉 빈도에 따라 막후 실세가 되기도 한다. 대통령 특보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박철언 특보는 ‘6공의 황태자’로 불렸다. 문정인 특보(문재인 정부)나 이동관 특보(윤석열 정부) 등도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했다.대통령과 대선 후보의 차이만큼 대통령 특보와 대선 후보 특보는 중량감이 다르다. 대선 후보 특보에도 급이 있다. 후보가 직접 삼고초려한 사람,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는 사람, 제 발로 찾아가 줄 선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선거에서 열위인 후보일수록 특보 임명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시인 김광균은 낙엽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추일서정·1940년)에 비유했는데, 요즘 도장 찍듯 남발하고 나뒹구는 후보 특보 임명장이 꼭 그 꼴이다.국민의힘이 전국 교사들에게 마구잡이로 김문수 후보 교육특보 임명장을 뿌렸다.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

    2025.05.22 18:10

  • [여적] 옵티컬의 ‘슬픈 500일’
    [여적] 옵티컬의 ‘슬픈 500일’

    지난해 1월8일 두 노동자가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 올랐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하던 박정혜씨와 소현숙씨다. 두 사람은 모회사 일본 니토덴코그룹이 공장을 폐업하고 고용승계를 거부하자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발단은 2022년 10월에 난 큰불이었다. 공장이 타버리자 니토덴코는 생산물량을 자회사인 경기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긴 후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199명이 해고됐고, 이를 거부한 7명의 노동자들만 남아 긴 싸움이 시작됐다.옥상 농성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화장실이 없어 배변 패드를 이용해야 하는 텐트 안에서 물과 음식을 도르래로 받았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소씨가 건강 악화로 농성을 중단하고 땅으로 내려왔다.해고 노동자들 요구는 그저 평택공장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평택공장에 156명의 노동자를 새로 채용했다. 그러곤 공장철거 방해 가처분을 신청하고 ...

    2025.05.21 18:15

  • [여적]방탄 유세
    [여적]방탄 유세

    1987년 13대 대선은 6월 항쟁으로 부활한 직선제로 실시됐다. 3김(金)이 분열해 지역 감정이 극렬하게 표출됐다. 노태우(민정당)는 대구·경북, 김영삼(민주당)은 부산·경남, 김대중(평민당)은 호남, 김종필(공화당)은 충청이 지역 기반이었다. 이들이 다른 지역 유세를 가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그해 11월14일 김영삼의 광주역 유세는 시위로 중단됐다. 다음날 김대중의 대구 두류공원 유세도 난장판이었다. 김대중은 “여기서 지면 민주주의는 절대로 안 된다”며 34분간 연단에서 연설을 강행했다. 경호원들이 김대중을 향해 날아드는 돌, 유리병, 계란을 우산과 가방으로 막았다.그로부터 2주 뒤인 11월29일 노태우가 광주역 유세에 나섰다. 시민들은 광주 학살 가해자인 노태우가 나타나자 돌멩이와 막대기를 던졌다. 노태우는 방탄유리를 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연단에 올랐고, 연설 내내 방탄유리로 보호막을 쳤다. 노태우는 책임자 처벌이나 진상규명 약속 없이 ‘무조건 ...

    2025.05.20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