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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2
  • [여적]조제프 푸셰와 한덕수
    [여적]조제프 푸셰와 한덕수

    ‘간보기’는 정치에서 고도의 처세술이다. ‘침묵, 중립적 태도, 명분 쌓기, 최후 행동’. 한 중진 정치인이 설명한 간보기 정치론이다. 겉으론 관망이나 거리두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상대 반응이나 여론 흐름을 보며 권력의 향배를 탐색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을 본다는 건 때로 유연하고 신중한 정치의 근육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생존에만 집착할 경우 간보기 정치는 기득권·특권에 기댄 기회주의라는 정치 술(術·재주)로 전락한다. 이런 기회주의는 자신의 그림자도 배신할 수 있다. 간보기 정치의 처세술을 말할 때 18세기 프랑스 정치인 조제프 푸셰를 빼놓을 수 없다. “권력은 바뀌어도 푸셰는 남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푸셰는 프랑스혁명부터 공포정치·나폴레옹 집권기를 거쳐 왕정 복고기까지 권력에서 멀어진 적 없는 ‘실력자’였다. 혁명기엔 온건파·급진파를 오갔고, 로베스피에르가 공포정치로 권력을 잡았을 땐 그를 따르다 공포정치가 몰락하자 그를 제거하는...

    2025.04.23 19:02

  • [여적] “비문엔 프란치스코만…”
    [여적] “비문엔 프란치스코만…”

    2013년 3월13일 열린 콘클라베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됐다. 박수갈채 속에서 브라질의 우메스 추기경이 그를 따뜻하게 포옹하며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때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머릿속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가톨릭 수도회인 작은형제회 설립자이자 ‘가난한 자들의 벗’으로 칭송받은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다. 교황직 수락 의사를 밝힌 후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라고 답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 다짐한 대로 낮은 곳에서 힘없는 자들을 위한 삶을 이어갔다. 마지막 투병 중 절대 안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을 겪은 한국 국민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내고, 성 베드로 성당을 깜짝 방문해 신자들을 만났다. 선종 전날인 20일 부활절 미사에서 마지막 강론을 통해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 전쟁 당...

    2025.04.22 18:15

  • [여적]윤여정의 커밍 아웃
    [여적]윤여정의 커밍 아웃

    배우 윤여정씨는 용감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하고,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모르는 게 드러날 때도 천연덕스럽다. 자기 생각이 맞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쿨한 할머니로 통하는 윤씨에게 쏟아지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렇다. 정작 그는 지난해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선 “(대중의 기대에) 멋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짜증 난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솔직함이 그의 어록으로 회자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동력이 됐을 것이다.윤씨는 영화 <결혼 피로연> 개봉을 맞아 19일(현지시간) 가진 해외 인터뷰에서 아들의 커밍아웃 사실을 공개했다. 이 영화는 1993년 개봉한 리안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이 집안 성화로 위장 결혼을 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윤씨는 주인공의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그는 출연 배경을 묻는 질문에 “내 개인적인 삶은 이 영화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장남이 2000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고, 뉴...

    2025.04.21 18:43

  • [여적] ‘내 죽음이 소란스럽길…’
    [여적] ‘내 죽음이 소란스럽길…’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시작한 후 가자지구의 사망자가 5만명을 넘어섰다. 부상자는 11만명에 이른다. 230만 가자지구 인구 중 190만명은 피란민이 됐다. 이 전쟁의 참상을 숫자로만 나타낼 순 없다. 사방이 봉쇄된 고립무원 땅에서 죽어나가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의 삶은 생지옥에 가깝다. 그 참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것도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기록하는 글과 영상이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 210명 넘는 언론인이 사망했다. 이곳에선 언론인임을 알리는 ‘프레스(PRESS)’ 조끼와 헬멧이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 앞에선 소용없고, 오히려 전쟁 실상이 기록되길 원치 않는 이스라엘엔 표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이스라엘이 지난달 1일 42일간의 휴전이 종료된 직후 가자지구 공격을 재개하면서 구호품 반입을 차단했다. 가자지구 어디에도 이스라엘 포탄을 피...

    2025.04.20 18:22

  • [여적] 홍준표·권성동의 ‘입틀막’
    [여적] 홍준표·권성동의 ‘입틀막’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 경구는 ‘시민의 알권리’와 ‘권력 감시’를 위한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일깨운다. 그래서 권력자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퇴행도 언론 자유 위축으로 드러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입틀막’이 민주주의 억압의 총체였고, 그 결과가 12·3 내란이었다.윤석열은 비판 언론과 취재를 노골적으로 위협했다. ‘바이든-날리면’ 발언 논란 후 이를 처음 보도한 MBC를 대통령 전용기에 못 타게 했다. “MBC는 잘 들어”라며, 황상무 전 대통령실 수석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고, CBS 기자는 윤석열의 주말 골프 현장을 취재하다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입건됐다. 비상계엄 땐 경향신문·한겨레·MBC·JTBC의 단전·단수 지시도 소방청에 내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앞세운 공영방송 ...

    2025.04.17 18:28

  • [여적] 11번째 봄, 세월호
    [여적] 11번째 봄, 세월호

    “살수록 사무치는 게 부모여도 결국 명치 끝에 백혀 사는 거는 자식이라. 부모는 죽으믄 하늘로 보내도 자식은 죽으믄 요기서(가슴에서) 살린다. 영 못 죽이고 여기서 살려.”(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봄은 생명이 잉태되는 계절이다. 희망이 솟고 꿈이 영근다. 하지만 11년 전 봄은 꿈이 꺾이는 계절이었다.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의 생명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생중계된 참사 현장에서는 허둥대는 국가를 목도했다. 침몰하는 배와 승객들을 내팽개친 선장은 직업윤리를 벗어던졌고, 학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던 어른들은 저 살기에 바빴다. 안전·재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한없이 무력했고 부끄럽고 미안했다. 11번째 봄을 맞지만 지금도 명치 끝이 아프다.참사 후에도 국가 시스템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로 파릇파릇한 생명을, 아리셀 공장 폭발 참사로 고국으로 돌아가 행복하자던 다...

    2025.04.16 18:10

  • [여적]여의도 ‘난가병’
    [여적]여의도 ‘난가병’

    귀울림(이명)은 자기 귀에는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는다. 코골이(비한)는 본인은 못 듣지만 다른 사람은 듣는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공작관문고 자서>에서 이명을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비한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비유했다. 연암은 글쓰기 태도를 논하며 이명·비한을 거론했지만, 이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명은 ‘나잘난병(病)’에, 비한은 ‘나몰라병’에 비유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이명·비한은 일상에서 큰 문제가 아니고 치료도 가능하지만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나잘난병’ ‘나몰라병’은 여간해선 고치기 힘들다.배철수씨가 지난 9일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을 하면서 “현대인의 난치병 중 하나가 ‘난가병’(나인가? 병)”이라고 언급해 화제다. 그는 “객관적 자기 평가를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병한다”며 “보통 사람들은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2025.04.15 18:15

  • [여적] 장하준의 ‘대선 제안’
    [여적] 장하준의 ‘대선 제안’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모두 힘을 합쳐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하면 좋겠지만 다른 나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다. 트럼프의 전략은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이다. 협상 대상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고, 나라별로 따로 협상해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첫 번째 협상 대상이 된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4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에 따른 대미 협상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인도와 같은 3개국과는 ‘즉각 협상을 진행하라’고 밑에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장하준 교수(영국 런던대 경제학과)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결코 서두르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파면으로 권력 공백 상태인 점을 미국에 설명하고 협상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

    2025.04.14 18:54

  • [여적]금지단어 된 ‘배민 수수료’
    [여적]금지단어 된 ‘배민 수수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이 물음 하나로 배달앱 ‘배달의민족’은 국내 음식배달 시장을 장악했다. 2014년 배우 류승룡이 철가방을 들고 내달리던 광고는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 상고 시대 이름인 ‘배달’(倍達)에서 착안해 만든 브랜드명도 소비자들에게 쉽게 다가갔다. 조선 후기에 이미 냉면이나 해장국을 배달해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배달의 민족이라 불러도 억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배달 천국이다. 한밤중이나 새벽, 한강 잔디밭부터 갯바위 낚시터까지 배달 안 되는 시공간을 찾기가 힘들다. 모바일 통신 덕에 위치 찾기가 쉬워진 데다, 폭염과 혹한에도 배달하는 노동자들 덕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배달앱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꼭 그만큼 자영업자들은 여위어갔다. 배달앱이 독과점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수익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영업자들이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포장 주문’마저 14일부턴 불가능해진다. 고...

    2025.04.13 18:46

  • [여적] 트럼프의 ‘시장 조작’
    [여적] 트럼프의 ‘시장 조작’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사건 발생 전 이스라엘 상장지수펀드(ETF)에 공매도가 급증했다. 누군가 테러 발생을 미리 알고 주가 하락에 투자해 돈을 벌었음을 의미한다. 2001년 9·11 사태 직전엔 일부 항공사 주식에 ‘풋옵션’ 매수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풋옵션은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이다. 요즘 금융시장은 대형 사건 발생이나 주요 정책을 1분 전에만 미리 알아도 막대한 부를 챙길 수 있다.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의 관세정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금융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고려할 때 관세 관련 정보에 대한 미 당국의 보안 유지는 필수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거꾸로다. 공식 발표 전까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도 부족할 판에 사전에 정보를 흘렸다. 9일 오전 9시37분(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945만명 팔로어에게 “지금이 매수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D...

    2025.04.10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