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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적] 파리장서(巴里長書)
    [여적] 파리장서(巴里長書)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에 서울의 유림 대표들은 참여를 거절했다. 일제 작위까지 받은 그들이 참여할 리는 만무했다. 유림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공의를 중시하는 유학자들이 독립 대의에 함께하지 않은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자각으로 전국의 유림은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독립을 호소하는 거사를 도모했다. 그 독립청원서가 한자음 ‘파리(巴里)’에 2674자 긴 글이란 ‘장서’를 더한 ‘파리장서’다.국립한국문학관은 지난달 25일 ‘파리장서’ 원본을 처음 공개했다.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목인 면우 곽종석의 친필인 ‘면우본’이다.파리장서는 심산 김창숙 등 고종의 인산(국장)일을 맞아 상경한 ‘경중유림’이 주도했다. 이들은 팔도 유림의 뜻을 모으기로 하고, 그중 김창숙이 스승인 곽종석에게 청원서 작성을 청했다. 곽종석은 응낙하며 “내가 망국의 대부가 되어 항상 죽을 땅을 얻지 못함을 슬퍼하였다”고 ...

    2026.03.01 18:21

  • [여적]생활형 교복
    [여적]생활형 교복

    전국 어디를 가나 똑같은 교복이 도입된 건 1969년 중학교 평준화가 시작되면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클래식>에 등장하는 동·하복을 떠올리면 된다. 1983년 교복·두발 자유화 조치로 교복이 잠깐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던 교복은 빈부의 위화감 조성 등을 이유로 1985년부터 부활했다.뻔한 교복이 싫은 학생들은 어떻게든 멋을 냈다. 펄럭이는 교복 바지나 치마를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줄여 입기도 했고, 다리가 길어 보이게 하거나 허리가 날씬해 보이도록 연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교복은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같음’을 허락하는 옷이었다. 그렇게 의류비 부담을 줄이려 도입한 교복이 오히려 학부모들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존재가 돼버린 현실은 아이러니하다.교복값은 적게는 22만원, 많게는 60만~94만원에 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교복을 가계에 부담을 주는 ‘등골 브레이커’로 지적하며 대책...

    2026.02.26 19:35

  • [여적]경자유전
    [여적]경자유전

    “소작제도라는 수천년 내려온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에요. 이것이 개혁이에요. 개혁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1949년 3월, 국회에서 조봉암 의원은 농지개혁안을 늦추려는 의원들을 설득한다. 결국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은 지주층의 방해를 막아낸 조봉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토지사유제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 유상몰수·유상분배 방식을 택했어도,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훗날 헌법에서 못 박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다.농지개혁은 한국 사회에서 ‘평등한 토지 분배’를 구현한 최초의 경제민주화 조치였다. 덕분에 자작농이 된 농민들이 땅을 팔아 자식들 대학 공부를 시키는 것도 가능해졌다. 농지개혁이 한국 고도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경자유전’ 원칙은 지켜지지 못했다. 토지보유세 강화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2026.02.25 19:00

  • [여적] 창비 60년
    [여적] 창비 60년

    동양 문화권에서 하늘(천간)과 땅(지지)이 만나 이룬 60년(육십갑자)은 인생을 의미하는 무게가 담긴다. 올해 환갑인 1966년생은 한국 민주화의 시간을 나이의 나이테마다 새긴 세대다. 1966년 1월생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약칭 ‘창비’는 한국 최근세사의 굴곡이 오롯이 담긴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창간호부터 요즘 말로 ‘혁신’이었다. 순한글을 표방했고, 가로쓰기를 시작했다. 더욱 큰 혁신은 내용이었다. “문학하는 자세를 바로잡으려 할 때 문학의 순수성을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 28세 청년 백낙청이 창간사 대신 실은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선언문이었다.한국 지성사에서 창비 의미를 한 단어로 집약하면 ‘실천’일 것이다. 창비의 길은 ‘현실의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 변화시키는 ‘실천적 지성’이었다. 이는 동서고금 전통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글로 쓴 것 중 오로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던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지성은 ...

    2026.02.24 18:44

  • [여적]이재명과 룰라의 ‘브로맨스’
    [여적]이재명과 룰라의 ‘브로맨스’

    서로 비슷한 삶의 궤적을 공유한단 것은 적과 편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의 세계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검증해야 하는 정상외교 무대에서 동질감은 특히 중요하다. 직관적 신뢰와 강한 일체감으로 상대 의도를 파악하는 시간을 줄이고, 협상 테이블의 심리적 장벽을 낮춰 난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동력으로 작용한다.지난해 11월 G7 정상회의부터 서로를 동지라 부르기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관계가 바로 그러하다. 소년공 출신이라는 닮은 꼴 서사가 두 정상 사이에 그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끈끈한 유대를 맺어준 것이다. 평소 이 대통령은 프레스기에 짓눌려 굽어진 왼쪽 팔을 “소외된 이들의 삶”이라 말하며 “내 정치는 항상 굽은 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고 했다. 19세 때 선반기계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은 룰라 대통령 역시 잘린 손가락을 “노동자의 훈장”이라 하며, “이 손가락을 잃었을 때 비로소 세...

    2026.02.23 19:10

  • [여적]최민정의 위대한 질주
    [여적]최민정의 위대한 질주

    쇼트트랙은 ‘빙판 위의 포뮬러원(F1)’이라 불릴 만큼 자리 싸움이 치열하다. 111.12m의 짧은 트랙에서 레인 구분 없이 경기하기 때문에 몸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추월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선두와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려는 후발 주자들 간의 각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쇼트트랙 중에서도 막판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기론 계주가 최고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나락이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선에선 또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했다. 18일(현지시간) 최민정·김길리·노도희·심석희·이소연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대표팀의 경기는 순탄치 않았다. 고비는 15바퀴 반을 남긴 시점에 왔다. 네덜란드 선수가 넘어지면서 뒤따르던 최민정도 엉켜 넘어질 뻔했지만, 버텨냈다. 결국 마지막 주자인 김길리가 1위로 골인하는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최민정이 충돌을 피하는 장면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고 싶다...

    2026.02.22 18:15

  • [여적] 판사 지귀연
    [여적] 판사 지귀연

    법원이 19일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유죄를 인정했다. 지당하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내란 공범이자 종범 격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앞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이 가슴 졸이며 이날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장이 다름 아닌 지귀연 판사이기 때문이었다. 3200명이 넘는 대한민국 법관 가운데 지 판사만큼 유명한 사람이 있을까. 내란 사건 본류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재판장인 그는 공판 내내 구설과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해 3월7일 지 판사는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결정해 시민들을 공황 상태로 내몰았다. 구속 기간을 날짜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동원했다. 간난신고 끝에 윤석열을 체포해 구속기소한 지 40일 만이었다. 지 판사는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고, 검찰에 신병을 이전하며 인치를 거치지 않아 수사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윤석열의 주장도 받아들였다.그뿐 아니었다. ...

    2026.02.19 18:15

  • [여적] 할머니의 육전과 두쫀쿠
    [여적] 할머니의 육전과 두쫀쿠

    병오년 설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저마다의 생각들로 엇갈렸지만, 한 가지는 같았다. 수상한 시절, 웃을 일 많지 않지만 열일곱 살 고교생이 모두를 미소 짓게 했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유일한 금메달이어서는 아니다. 그 메달에 녹아든 마음이 건넨 위로였다.“가장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거라 생각한다.”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우승한 최가온이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이다. 1차 시기 보드가 파이프 끝에 걸리며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올림픽은 여기서 그만해야 하나’ 생각해 크게 울었다. ‘내 다리를 믿고 해보자’며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하지만 2차 시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폭설 속 마지막 기회, 최가온은 기어코 연기를 완성했다. 11위(10점)에서 단숨에 1위(90.25)로 올라섰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투혼은 스포츠에서 상투어이긴 하지만, 그것 외에 달리 이 장면을 설명할 방도는 없...

    2026.02.18 18:12

  • [여적]통일부 장관의 대북 사과
    [여적]통일부 장관의 대북 사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민간인이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낸 데 대해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사건은 현재 군경이 합동조사 중인데, 정 장관은 조사가 마무리 국면이라고 판단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나온 첫 공식 사과였다. 분단 후 남북 간에 사과할 일은 대부분 북한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대체로 사과에 인색했고, 조선중앙통신 등 대외 매체를 통해 간접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2020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9월25일 통일전선부가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줘 대단히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남한 당국에 직접 공개 사과한 최고지도자는 김정은이 처음이었다. 정 장관은 이 사건과 2015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을 거론하며 민간인 무인기 침투 사건도 공식적으로 유감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26.02.12 18:33

  • [여적]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
    [여적]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

    16세기 영국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가 전기를 자기와 구별 짓고 ‘Electricity(전기)’라고 이름 붙였을 때만 해도 이 재화가 인간을 이토록 지배할 것이라 상상치는 못했을 것이다. 전기 없는 현대의 삶은 잠시도 존재하기 어렵다. 적어도 20세기 이후는 ‘호모 일렉트리쿠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공기만큼이나 필수적인 이 재화는 정부의 정책적 고민 대상이 되었다. 가격을 매길 수 없이 중요하지만, 가격이 없는 공기와 달리 전기에 매겨진 요금을 국민은 세금처럼 느낀다.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9일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산업용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수도권에서 멀수록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면 전기요금이라도 싸야 기업이 지방으로 갈 유인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했다. 지역균형 발전의 정책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 국민에 대한 적용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2026.02.11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