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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적] 한강의 ‘언어’와 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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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언어’와 계엄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연결한다.”한강 작가가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연회 연설에서 밝힌 소감이다. ‘사유하는 존재’ 인간은 언어로 표현되고 기록된다. “생각이 자라나는 영혼의 피”(비트켄슈타인)인 언어는 기록으로 남아 시공을 초월해 인간을 잇는다. 연결된 언어는 인간을 각성시키고, 그 힘 앞에서 어떤 거짓도 무력하다. 인간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비상계엄 그날(3일) 밤 시민들은 연결된 인간의 힘이 얼마나 강인한지 증거했다. 그 힘이 언어에 깊이 기대고 있음도 목도했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 언어가 전례없는 규모와 속도로 실시간의 ‘동시성’을 가졌다는 것일 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민들은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150분 동안 언어를 나누고, 행동으로 옮기며 놀랍게 연결됐다.그래서 모든 폭력은 ‘말’을 빼앗는 것부터 시작한다. 1...
  •  [여적]탄핵송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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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송 플레이리스트

    ‘하루를 마무리하며 듣는 포근한 음악’ ‘청소할 때 듣기 좋은 노래’.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원사이트 플레이리스트(플리) 제목들이다. 공부, 휴식, 노동요 등 여러 갈래인 플레이리스트는 검색해 바로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젊은 세대들에겐 하나쯤 가지고 있는 필수템이다. 혼자 듣기도 하지만 링크로 만들어 주변과 공유하기도 한다. 오래전 기성세대가 좋아하는 곡을 추려 음반가게를 통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친구들과 주고받던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2024년 겨울, 대통령 윤석열의 불법 계엄 사태 이후 탄핵송이 가장 핫한 플레이리스트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여의도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로 시작하는 G드래곤의 ‘삐딱하게’가 단연 인기였다. 이보다 현 시국과 국민의 염원을 잘 설명해주는 노래가 있을까.집회장에서는 에스파의 ‘위플래시’,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로제의 ‘아파트’ 등 K팝 레전드곡들은 물론 무...
  •  [여적] 서문시장의 ‘윤석열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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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시장의 ‘윤석열 지우기’

    보수의 중심 대구에서도 서문시장은 성지로 통한다. 상인만 2만명인 이 거대 시장은 보수 정치인들이 철만 되면 힘 받으려, 기 받으려 ‘순례’하듯 찾는 곳이다.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서문시장을 찾아 “보통 사람 노태우”를 외쳤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세 차례 대선 후보 시절이나 정치적 곤경에 처할 때마다 방문했다. 전 대통령 박근혜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던 2004년,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이 위태롭던 2016년 서문시장을 찾았다. 2016년 방문 땐 “미안하다”고 했지만, 차가운 민심에 10분 만에 돌아나와야 했다.대통령 윤석열의 서문시장행도 잦고 남달랐다. 정치 시작 후 여섯 차례 찾았다. 그때마다 그는 “권력은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서문시장과 대구 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등 주옥같은 러브콜을 발신했다. 올해도 4·10 총선을 앞두고 대구민생토론회에서 “애국도시 대구의 상징”으로 국립구국운동기념관을 서문시장 부근에...
  •  [여적]‘소신 투표’ 안철수·김예지·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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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신 투표’ 안철수·김예지·김상욱

    국회의원은 저마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헌법 제46조 2항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한 대로 국민 대표자로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 결사체인 정당은 번번이, 특히 중요한 표결을 앞두고 당론을 정해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의원이 당론을 거스르고 소신을 지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당 지도부 눈 밖에 나고, 차기 공천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지난 7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195명이 참여했다. 재적 의원 300명의 3분의 2를 넘지 못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안은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당론으로 윤석열의 탄핵안 표결에 집단 불참했고,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 3명만이 표결에 참여했다.안 의원은 오후 5시45분 탄핵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때 여당 의원으로선 유일하게 의석에 앉아 있다, 예고한 대로 ‘찬성 표결’을 했다. 안 의원은 “헌법...
  •  [여적] 비겁한 국무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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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한 국무위원들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100여년 전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한 말인데, 관료는 ‘정치’가 아닌 ‘행정’을 하는 집단이란 의미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관료의 본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표현이 한국으로 와선 정권 입맛에 맞춰 일하는 관료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러나 잘못된 권력의 지시에도 무조건 따른다면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지난 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법적 절차인 국무회의를 열었다. 문제는 국무회의가 정상적으로 열렸는가이다. 국무회의는 국무위원 과반 출석, 출석 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지만, 계엄법은 의결이 아닌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국무회의가 개의하려면 대통령을 포함, 21명의 국무위원 중 최소 11명은 참석해야 한다. 현재 면직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약 절반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6명은 참석 여부 확인을 ...
  •  [여적] 포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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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고령

    포고령(布告令)은 ‘어떤 내용을 널리 알리는 법령·명령’이나 ‘한 나라가 상대국에 전쟁 시작을 알리는 명령’을 뜻한다. 그렇게 보면, 자국민을 향해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계엄 포고령은 국민에 대한 전쟁 시작을 알리는 명령과 다를 바 없다. 제주 4·3항쟁, 유신체제, 광주 5·18민주화항쟁 등 한국 근현대사에서 계엄이 쓰여온 실제 방식이 항상 그랬다.지난 3일 오후 10시23분 대통령 윤석열이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했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건 윤석열이 처음이다. 그로부터 불과 30여분 후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령은 박정희 정권의 포고령을 상당 부분 참조한 듯 보이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더 반헌법적이다.유신 때 선포된 계엄 포고령은 제1항에서 ‘모든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한다’고 했지만, 윤 정부는 여기에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추가했다...
  •  [여적]뇌 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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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썩음

    2006년에 공개된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인간의 지능이 극단적으로 퇴화하는 미래를 풍자했다. ‘바보’(idiot)에다 ‘민주주의’(democracy)를 합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보들이 통치하는 세상을 그린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거짓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사회적 책임과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 조 바우어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료에게 당부한다. “사람들에게 꼭 말해줘. 학교에 다니라고! 책을 읽으라고! 제발 머리를 쓰라고!”영화의 설정이 황당무계한 공상만은 아니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골랐다. 질 낮은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한 결과,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낱말이다.올해 초 미국의 한 행동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업체가 뇌 썩음의 예시로 든 것도 부정적 콘텐츠를 찾아 끝없이 스크롤하는 행위인 ‘둠 스크롤링’과 소셜미디어 중독이다. 해외에선...
  •  [여적] ‘노쇼’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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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쇼’의 기준

    자영업자들은 대량 주문이나 단체회식 예약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노쇼(No-Show·예약 후 연락 두절)를 걱정한다. 약속 시간이 됐는데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안 되면 말 그대로 ‘멘털’이 무너진다. 금전적 피해도 막대하지만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된다. 배달 앱을 이용하면 노쇼 걱정은 덜지만 수수료가 든다.최근 충북 지역에선 군 간부를 사칭한 노쇼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14~25일 충주 지역 음식점 6곳에서 “군인이 수십인분의 음식을 주문한 뒤 잠적했다”는 내용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이런 것은 범죄 행위다.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처벌을 할 수 있고,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낼 수도 있다. 주문자가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 자영업자가 음식을 준비했다면, 주문자는 취식이나 수령 여부에 관계없이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주문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는 쉽지 않다. 승소하겠지만 변호사비가 더 들어간다.윤석열 대통령...
  •  [여적]통계도 안 잡히는 ‘이주노동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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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도 안 잡히는 ‘이주노동자 죽음’

    1970년 11월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은 실태조사였다. 평화시장 노동자 126명에게서 받은 설문지를 토대로 이 시장 2만여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건강 실태를 고발했다. 126명 중 96명(77%)이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 질병을, 102명(81%)이 신경성 위장병을 앓았다. 이런 사실이 그때 경향신문 사회면에 보도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실태조사가 무엇보다 강력한 고발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업턴 싱클레어는 1906년 발표한 소설 <정글>에서 미 시카고 지역 육가공업체들의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을 생생하게 폭로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실태를 조사한 결과 현실은 더욱 심각했고, 이를 계기로 순수식품 및 의약품법과 육류검사법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실태조사야말로 현실을 바꾸고 바로잡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태조사...
  •  [여적] 네타냐후 체포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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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타냐후 체포영장

    “푸틴 체포영장에 박수 치면서 네타냐후 영장에 침묵할 수는 없다.” 호세프 보렐 폰텔레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지난 26일 G7 외교장관회의에서 했던 이 말은 국제법의 이중잣대를 잘 보여준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 범죄 및 반인도 범죄 혐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처음 열린 국제회의였다.‘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내세워온 G7은 분열됐다. 캐나다와 영국은 네타냐후 체포영장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후견국 미국은 체포에 반대했다. 독일·이탈리아·프랑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면서도 입국 즉시 체포는 유보했다. 이스라엘이 ICC 가입국이 아니어서 면제를 받는다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웠다.그 외에 아일랜드 등 일부 서방 국가들도 네타냐후 체포 방침을 밝혔다. 2002년 발효된 ICC 로마규정에 125개국이 비준했기 때문에 네타냐후가 가지 못하는 나라는 더 많아질 것이다.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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