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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1
  • [여적] 제주 해녀의 ‘특별한 유전자’
    [여적] 제주 해녀의 ‘특별한 유전자’

    ‘해녀’는 제주의 푸른 바다 아래에서 삶을 이어왔다. 산소 공급장치 하나 없이 바다에 몸을 던져 전복과 소라, 해삼, 미역 등을 건져 올렸다. 17세기 조선시대 유배 생활을 하던 왕족 이건이 편찬한 <제주풍토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해녀를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채취하는 여자(採藿之女 謂之潛女)’라고 소개한다. 화산섬 제주, 척박한 땅은 그들에게 바다를 삶의 터로 열어주었다. 해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엄마처럼, 그저 평범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거친 파도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긴 숨결엔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 배어 있다.잠수 때마다 1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수확하는 해녀들 능력의 비결이 유전자 변이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UCLA·유타대 등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에 ...

    2025.05.08 18:15

  • [여적]카슈미르
    [여적]카슈미르

    히말라야산맥 서쪽 끝자락엔 고원지대 카슈미르가 펼쳐져 있다. 만년설, 깨끗한 물, 계곡 사이의 초원이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나다. 무굴제국 황제 자항기르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카슈미르가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괜히 ‘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불린 게 아니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문화가 꽃피었다. 카슈미르 지역 산양의 털로 짜 부드럽고 보온성이 좋은 캐시미어는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인종과 종교가 달라도 평화로웠다.지상의 낙원이 비극의 땅으로 운명이 바뀐 건 1947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분리 독립시키면서다. 영국은 ‘종교에 의한 두 국가’에 입각해 힌두교인 인도와 이슬람인 파키스탄으로 분할했다. 카슈미르는 인구 다수는 이슬람이고 소수 지도층은 힌두교였는데, 영국은 어디로 귀속시킬지 결정하지 않고 떠났다.영국이 물러나자마자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북동부를 접하고 있는 카슈미르를 차...

    2025.05.07 18:15

  • [여적] 앨커트래즈
    [여적] 앨커트래즈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 앨커트래즈는 예로부터 전략적으로 뛰어난 요새로 꼽혔다.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보이는 천혜의 지형 덕분에 한때 미합중국 육군 기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앨커트래즈가 진정한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1930년대 ‘탈출이 불가능한’ 연방교도소로 활용되면서부터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바다 위의 철창이었던 셈이다.1920년대 금주법 시행과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 전역에 범죄가 들끓자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시기 앨커트래즈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수감됐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비롯해 ‘할렘의 대부’ 엘즈워스 존슨,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갱단 우두머리 앨빈 카피스 등이 이곳에 갇혔다.‘탈옥 불가’의 명성을 자랑하듯 앨커트래즈에서는 29년간 단 한 번의 성공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게 미 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14번에 걸쳐 36명의 죄수가 탈옥을 시도했지만, 사살되거나...

    2025.05.06 18:15

  • [여적]트럼프의 ‘문화 전쟁’
    [여적]트럼프의 ‘문화 전쟁’

    1988년 9월30일 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던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에 누군가 뱀을 풀었다. 이튿날에는 신촌 신영극장 화장실에서 뱀 열 마리가 출몰했다. ‘뱀 소동’은 영화인들이 벌인 일이었다. 1986년 영화법 개정으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국내에 직접 배급한 첫 영화 <위험한 정사> 개봉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영화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시장은 외화 직배의 빗장을 풀었고, 1993년 한국 영화 극장 점유율은 15.3%까지 떨어지며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한국 영화는 망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맞설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외화 직배, 2006년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 등 보호막이 사라진 후였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쓰는 날이 올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관세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외국에서...

    2025.05.05 19:56

  • [여적] 워런 버핏의 은퇴
    [여적] 워런 버핏의 은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는 유년시절부터 ‘경제관념’이 유별났다. 버핏의 평전 <스노볼>을 보면, 하루는 친구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자 버핏은 계산기까지 꺼내 “지금 이 돈으로 영화 보면 50년 뒤엔 몇 배가 손해인지 알아?”라며 거절했다. 매우 검소했고 단 1센트를 쓸 때도 신중했다고 한다.버핏이 견지한 투자 원칙의 핵심은 바로 ‘가치 투자’다. 기업의 적정 가치보다 낮은 가격의 주식을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방식으로 투자하고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가 이끈 버크셔 해서웨이는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주식을 사들여 장기 보유하며 수익을 냈다. 1990년대 후반 벤처붐이 일며 기술주 주가가 치솟을 때에는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투자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버핏은 ‘세계적인 갑부’란 수식어만큼이나 ‘오마하의 현인’이란 별칭으로 유명하다. 오마하는 그의 고향이다. 그를 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2025.05.04 18:15

  • [여적]트럼프 미국의 ‘역성장’
    [여적]트럼프 미국의 ‘역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 전망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전쟁이 예상보다 강했고 일관성도 없어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3월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말 1.1%에서 0.9%로 내렸다. 트럼프와 ‘전면전’ 중인 중국은 지난 3월 양회에서 올해 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내놨지만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그보다 낮을 것으로 본다. 주요 대미 수출국인 한국은 기존 1.9%에서 1.5%로, 인도는 7.2%에서 6.4%로, 대만은 3.29%에서 3.14%로 줄줄이 내려잡았다. 전 세계가 트럼프 정책으로 인한 경기침체(리세션)인 ‘트럼프세션’ 경보를 울린 셈이다.미 상무부가 지난달 30일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직전 분기보다 0.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1분기(-1.0%) 이후 3년 만의 역성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선진국 중 나홀로...

    2025.05.01 18:15

  • [여적] 블랙아웃 공포
    [여적] 블랙아웃 공포

    1977년 7월13일 오후 9시쯤, 미국 뉴욕의 한 변전소가 벼락을 맞으면서 문명의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다. 공포가 퍼졌고 결국 폭력이 난무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25시간 동안 뉴욕 시내 상점 1700여곳이 약탈당했고, 2000건 이상의 방화가 일어났다. 30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경찰도 200명 넘게 다쳤다.당연히 늘 있는 줄 알고 쓰던 게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면, 그건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로 이어진다. 공기와 물이 대표적이다. 인류의 발명품인 전기도 그에 버금간다. 뉴욕 대정전이 역사적 사례다. 그래서 ‘블랙아웃’(Black Out)으로 불리는 대정전은 영화나 소설의 매력적인 소재다. 통제 불능한 무질서와 사회시스템 붕괴,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현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 그만큼 현대 문명은 전기 의존을 넘어 전기를 바탕으로 한다.전기가 멈추면 일상이 멈춘다. 전기가 없는 도시와 생존은 상상할 수도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지난 28...

    2025.04.30 18:15

  • [여적] 하이에나 검찰
    [여적] 하이에나 검찰

    검찰이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상대로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평소 수사를 거의 하지 않는 고등검찰청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긴말 필요 없이 윤석열이 죽은 권력이라는 뜻이다. 검찰은 통상 5년 주기로 정권 초 ‘권력의 충견’에서 정권 말 ‘하이에나’로 변한다. 권력자가 중도 낙마하면 그 주기는 단축된다. 개가 하이에나로, 하이에나가 다시 개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 권력 생태계의 과거·현재·미래가 읽힌다.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수사팀은 29일 명씨와 김영선 전 의원을 불러 조사했다. 윤석열 부부 소환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수단이 맡은 ‘건진법사’ 전성배씨 의혹은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다. 전씨는 윤석열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정부의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부터 대통령실·경찰 인사까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서울고검은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10월 김건...

    2025.04.29 18:51

  • [여적]‘진보적 보수주의자’ 윤여준
    [여적]‘진보적 보수주의자’ 윤여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에게 전략을 제시하던 지략가를 책사라 했다. 그 책사는 현대적으로 시대정신을 읽는 경세가, 국정·선거 홍보전문가로 통하는 스핀닥터, 크고 작은 정치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의 경계를 오간다.1984년 미국 대선에서 첫 등장한 스핀닥터는 빌 클린턴의 두번째 대선에서 유명해졌다. 성추문 스캔들 로 위기에 몰린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 캠페인을 앞세웠다. 클린턴에겐 사적 과오를 사상 최대 재정 흑자 기록으로 비틀은(SPIN) ‘보이지 않는 손’ 딕 모리스와 제임스 카벨이 있었다. 시대정신을 꿰뚫고 통찰력을 갖춘 책사는 전략가에 가깝다. 한나라 유방의 장량, 유비 옆 제갈공명, 조선의 킹메이커 정도전 등을 들 수 있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이 후보의 외연 확장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첫 인선이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쓴소리’ 참모, 2000년 이회창 한...

    2025.04.28 19:52

  • [여적]류희림의 ‘야반도주’
    [여적]류희림의 ‘야반도주’

    ‘민원 사주’ 의혹을 받아온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2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일신상의 사유”라고 하지만 속내가 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류 위원장이 연루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 건을 최근 감사원으로 이첩하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본 것 아닌가. 류 위원장은 2023년 9월 가족·지인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등을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을 겨냥해 민원을 넣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방심위 직원이 권익위에 신고하면서 조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권익위와 경찰은 류 위원장 봐주기로 일관했다. 권익위는 사건을 방심위가 ‘셀프 조사’를 하도록 했고, 지난 2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결론을 냈다. 그사이 류 위원장은 보란 듯이 연임에 성공한 반면, 신고자들은 개인정보를 유출한 ‘범죄자’가 됐다. 류 위원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시나리오였던 셈이다.이대로 덮일 줄 알았던 사...

    2025.04.27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