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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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 [여적] 한덕수·정호용 그리고 광주
    [여적] 한덕수·정호용 그리고 광주

    내란 세력이 1980년 5월 광주를 소환하고 있다. 비극적 아이러니다. 국민의힘이 정호용을 선거대책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 정호용이 누구인가. 육사 11기 전두환의 동기이자 하나회 멤버인 그는 광주민중항쟁 당시 육군 특전사령관이었다. 특전사 예하 3·7·11공수여단은 광주에서 비무장 시민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과 발포를 주도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에도 가담했다. 그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김문수 후보는 5시간 만에 정호용 위촉을 철회했다. 그러나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5·18 45주기를 앞두고 비난의 소나기를 피하자는 속셈일 뿐 진지한 반성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김 후보와 윤석열은 5·18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이 닮았다. 윤석열은 2021년 10월 대선 후보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분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2025.05.15 18:14

  • [여적]‘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여적]‘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대통령 자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리 권력의지가 있어도 백성이라는 물 위에 올라타야 국정 결정권자 권위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8명 중 5명이 곤욕을 치른 우리 현실은 강물을 거슬렀던 배의 최후를 보여준다. 대통령 스스로가 ‘역사적 개인’임을 알아야 권력의 주체가 시민이란 걸 깨닫게 된다.실제로, 대통령이 ‘역사적 개인’이길 기대하는 시도 많았다. 임보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보다 무서운 대통령”(‘우리들의 대통령’)을, 신동엽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는 석양 대통령”(‘산문시1’)을 시로 꿈꾸고 기다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 의회 연설에서 낭송한 시가 신동엽의 ‘산문시1’이다. 군부독재 시절 ‘국부’로 추앙받은 대통령의 억압·폭정...

    2025.05.14 18:43

  • [여적] 식어버린 ‘보수의 심장’
    [여적] 식어버린 ‘보수의 심장’

    6·3 대선 초입에 후보들이 이례적으로 대구에서 격돌했다.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대구 유세에 나섰다. ‘국민통합 대통령’ 명분을 더하려는 이 후보, 보수 민심을 다잡으려는 김 후보, 보수정치 세대교체 토대를 놓으려는 이준석 후보의 욕망이 부딪쳤다. 윤석열 파면으로 열린 대선에서 예전 같지 않은 대구 민심을 짐작하게 한다.대구를 ‘보수의 심장’이라고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구·경북이 오래도록 보수정당의 강력한 기댈 언덕이 돼온 때문일 것이다. 보수의 심장이라기보다 보수정당의 산소호흡기 같은 곳이었다.과거 대구는 ‘혁명’의 도시였다. 1946년 10월 대구폭동이 해방공간 첫 좌익 봉기인 데서 보듯 좌익·혁신계의 성지와도 같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조선의 모스크바’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후 3대 총선에서 여당 자유당이 단 한 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한 곳도, 2년 뒤 대선에서 진보당 조봉암 후보가 ...

    2025.05.13 18:17

  • [여적] 이제 6명 남았다
    [여적] 이제 6명 남았다

    14살의 어린 나이에 중국의 위안소로 끌려가 3년 동안 참혹한 고초를 겪었던 이옥선 할머니(97)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났다. 한평생 고통의 기억을 품고 살았지만, 끝내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는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6명만 남았다. 평균 연령은 95.6세에 달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둘 잊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일제강점기에 겪은 수치와 고통을 평생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오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 있는 첫 증언을 내놓으면서 치유할 기회를 얻었다.그날 이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됐다.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의 상처’로 남겨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진실은 역사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태도다. 사죄는커...

    2025.05.12 18:15

  • [여적]다시 보고 싶지 않은 ‘한덕수’
    [여적]다시 보고 싶지 않은 ‘한덕수’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역대 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승승장구했다. ‘무색무취’라는 평가가 두루 중용된 비결일 것이다. 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두 번의 총리를 맡는 진기록도 세웠다. 그는 ‘딱총(딱 총리)’이라는 별명처럼 ‘영혼 없는 관료’일 뿐, 권력 의지는 없어 보였다.그랬던 한 전 대행이 윤석열 파면 이후 보인 행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 않고 버티던 그가 지난달 8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 등 2명을 지명한 것이다. 두 자리는 ‘대통령 몫’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추대받으려는 ‘야심’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 이때부터인 듯싶다. 이달 1일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길밖에 길이 없다면, 그렇다면 가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대선을 공정 관리해야 할 대행의 소임을 내팽개친 것을 보면 그의 내면 권력욕이 공직윤리를 압도한 듯싶다.그는 보수 정권에서 호남 출신임을 밝히지 않다가 DJ 정부에...

    2025.05.11 18:59

  • [여적] 제주 해녀의 ‘특별한 유전자’
    [여적] 제주 해녀의 ‘특별한 유전자’

    ‘해녀’는 제주의 푸른 바다 아래에서 삶을 이어왔다. 산소 공급장치 하나 없이 바다에 몸을 던져 전복과 소라, 해삼, 미역 등을 건져 올렸다. 17세기 조선시대 유배 생활을 하던 왕족 이건이 편찬한 <제주풍토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해녀를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채취하는 여자(採藿之女 謂之潛女)’라고 소개한다. 화산섬 제주, 척박한 땅은 그들에게 바다를 삶의 터로 열어주었다. 해녀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엄마처럼, 그저 평범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다. 거친 파도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긴 숨결엔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 배어 있다.잠수 때마다 1분 이상 숨을 참으며 해산물을 수확하는 해녀들 능력의 비결이 유전자 변이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UCLA·유타대 등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에 ...

    2025.05.08 18:15

  • [여적]카슈미르
    [여적]카슈미르

    히말라야산맥 서쪽 끝자락엔 고원지대 카슈미르가 펼쳐져 있다. 만년설, 깨끗한 물, 계곡 사이의 초원이 어우러져 풍광이 뛰어나다. 무굴제국 황제 자항기르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카슈미르가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괜히 ‘아시아의 알프스’라고 불린 게 아니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에 위치해 문화가 꽃피었다. 카슈미르 지역 산양의 털로 짜 부드럽고 보온성이 좋은 캐시미어는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인종과 종교가 달라도 평화로웠다.지상의 낙원이 비극의 땅으로 운명이 바뀐 건 1947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분리 독립시키면서다. 영국은 ‘종교에 의한 두 국가’에 입각해 힌두교인 인도와 이슬람인 파키스탄으로 분할했다. 카슈미르는 인구 다수는 이슬람이고 소수 지도층은 힌두교였는데, 영국은 어디로 귀속시킬지 결정하지 않고 떠났다.영국이 물러나자마자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북동부를 접하고 있는 카슈미르를 차...

    2025.05.07 18:15

  • [여적] 앨커트래즈
    [여적] 앨커트래즈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 앨커트래즈는 예로부터 전략적으로 뛰어난 요새로 꼽혔다.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보이는 천혜의 지형 덕분에 한때 미합중국 육군 기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앨커트래즈가 진정한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1930년대 ‘탈출이 불가능한’ 연방교도소로 활용되면서부터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바다 위의 철창이었던 셈이다.1920년대 금주법 시행과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 전역에 범죄가 들끓자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시기 앨커트래즈에는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수감됐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비롯해 ‘할렘의 대부’ 엘즈워스 존슨,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갱단 우두머리 앨빈 카피스 등이 이곳에 갇혔다.‘탈옥 불가’의 명성을 자랑하듯 앨커트래즈에서는 29년간 단 한 번의 성공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게 미 당국의 공식 입장이다. 14번에 걸쳐 36명의 죄수가 탈옥을 시도했지만, 사살되거나...

    2025.05.06 18:15

  • [여적]트럼프의 ‘문화 전쟁’
    [여적]트럼프의 ‘문화 전쟁’

    1988년 9월30일 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던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에 누군가 뱀을 풀었다. 이튿날에는 신촌 신영극장 화장실에서 뱀 열 마리가 출몰했다. ‘뱀 소동’은 영화인들이 벌인 일이었다. 1986년 영화법 개정으로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국내에 직접 배급한 첫 영화 <위험한 정사> 개봉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영화인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시장은 외화 직배의 빗장을 풀었고, 1993년 한국 영화 극장 점유율은 15.3%까지 떨어지며 위기를 맞았다.그러나 한국 영화는 망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맞설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외화 직배, 2006년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 등 보호막이 사라진 후였다.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쓰는 날이 올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관세전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외국에서...

    2025.05.05 19:56

  • [여적] 워런 버핏의 은퇴
    [여적] 워런 버핏의 은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는 유년시절부터 ‘경제관념’이 유별났다. 버핏의 평전 <스노볼>을 보면, 하루는 친구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자 버핏은 계산기까지 꺼내 “지금 이 돈으로 영화 보면 50년 뒤엔 몇 배가 손해인지 알아?”라며 거절했다. 매우 검소했고 단 1센트를 쓸 때도 신중했다고 한다.버핏이 견지한 투자 원칙의 핵심은 바로 ‘가치 투자’다. 기업의 적정 가치보다 낮은 가격의 주식을 매수해 장기 보유하는 방식으로 투자하고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가 이끈 버크셔 해서웨이는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주식을 사들여 장기 보유하며 수익을 냈다. 1990년대 후반 벤처붐이 일며 기술주 주가가 치솟을 때에는 “수익성이나 성장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투자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버핏은 ‘세계적인 갑부’란 수식어만큼이나 ‘오마하의 현인’이란 별칭으로 유명하다. 오마하는 그의 고향이다. 그를 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2025.05.04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