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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사상계 복간
사상계(思想界)는 1950~1960년대 지성인의 필독서였다. 장준하 선생(1918~1975)이 사재를 털어 1953년 4월 창간한 사상계는 해외 문예사조의 수입 통로였고 지식인들의 활동 무대였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민주·양심 세력을 대변했다. 꺾이지 않는 필봉은 4·19혁명 기폭제가 됐고, 5·16쿠데타 이후엔 박정희 독재에 맞섰다. 장준하 선생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 그는 사상계 창간호 권두언에서 “인간은 복잡하고도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며, 개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고, 그 목적 실현을 위한 의지적이며 적극적인 활동과 반성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잡지 수준을 넘어 시대의 좌표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상계가 내년 2월 재창간된다.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폐간된 지 55년 만이다. 사상계는 그동안 몇 차례 복간 시도가 있었다. 1998년 6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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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의 눈물
대중문화 예술인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악플이나 루머의 표적이 되기 쉽고 얼굴이 알려져 사생활에도 제약이 많다. 대중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늘 충돌하면서 내면의 갈등도 극심하다. 100점이나 정답이 없는 예술 세계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하기 어렵고, 그런 탓에 대중들의 비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K팝 아이돌에서 글로벌 아티스트로 성장한 로제가 미국 뉴욕타임스와 최근 한 인터뷰는 화려한 조명의 사각지대에 꾹꾹 감춰진 아티스트들의 고단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35분 분량의 팟캐스트로 지난 23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로제는 아침 9시반 기상해 새벽 2시까지 보컬·댄스, 어학 훈련이 반복되는 연습생 과정이 얼마나 혹독한지 외부인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담할 때도 있었지만, 호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실패한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살아남았다”고 했다. 데뷔 초기 몇해가 어려웠지만 “실은 아직도 힘들다”며 이런 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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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머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은 저서 <플라스틱 사회>에서 이 실험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실험이었는가는 아침에 눈뜨고 10초 만에 변기 의자가 플라스틱인 걸 보고 깨닫는다고 했다.당신도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까지 손에 닿는 플라스틱을 적어보자. 매트리스, 휴대전화, 칫솔, 냉장고 손잡이, 전등 스위치, 신용카드, 사원증, 컴퓨터…. 이 정도면 플라스틱이 아닌 걸 찾는 게 훨씬 더 빠를 것이다.플라스틱은 고분자 화합물의 일종이다. 폴리머(Polymer)라 하는 고분자는 다수의 분자를 결합시킨 ‘중합체’를 통칭한다. 플라스틱이 대표적인 폴리머이다.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폴리머로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이 있다. PE는 포장용 비닐봉지나 음료수병 등을 만들고, PVC는 바닥재·벽지 등 생활용품에 이용되고 있다.값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불멸에 가깝다. 태우면 독성물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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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1등급 받은 AI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과목은 통합 교과 성격이 강하다. 많은 정보가 담긴 글을 1~2분 안에 읽고, 의미 파악은 물론이고 추론까지 해야 한다. 고교 교사들에 따르면 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수학·영어·탐구 영역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 사례는 그만큼 안 된다고 한다.인공지능(AI)이 수능 국어 영역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지난 9월 출시된 오픈AI의 챗GPT o1-프리뷰 모델이 올해 수능 국어에서 97점(원점수)을 얻었다. 한 문제만 틀리고 모두 맞힌 것이다. 80분 시험에서 AI가 총 45개 문항을 푸는 데 걸린 시간은 35분이었다.연구진에 따르면 o1-프리뷰는 문제를 읽은 뒤 곧바로 답을 내지 않고, 선지를 보면서 그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오지선다 객관식 시험에 최적화한 것이다. AI가 유일하게 틀린 것은 8번 비문학 문항이었는데 수험생들에게도 매우 어려웠다. 입시 전문가들은 해당 문항의 정답률을 20% 안팎으로 추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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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상 ‘특별사면’
빌린 책을 제때 반납하는 것은 도서관 이용의 기본 에티켓이지만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도서관은 그럴 때 연체 기간만큼 대출을 제한한다. 공공재인 도서관 장서를 사회 구성원들이 편리하고 공평하게 이용하게 하려는 의도다. 연체료를 물리기도 한다. 1책당 1일 100원씩 연체료를 부과하는 식이다. 돈을 내면 연체 기간에 관계없이 바로 책을 빌릴 수 있다.하지만, 연체료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돈만 내면 대출 기한을 어겨도 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일수 이자처럼 불어나는 연체료가 겁나 이용자가 아예 도서관에 발길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 중학생 때 이후로 도서관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의 사연을 들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중3 시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요즘은 도서관들이 연체료 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다. 연체료를 받아도 총금액이 대출 자료의 시가를 초과할 수 없게끔 규정을 두기도 한다.도서 미반납은 사소해 보이지만 폐해가 심각하다. 책이 반납되지 않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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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발 ‘입시 혼란’
사전에 문제가 유출된 연세대 수시 자연계 논술전형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지 못할 대혼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연세대는 수험생들이 연세대를 상대로 낸 논술전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지난 15일 인용되자 이에 불복하고 이의신청을 했지만, 20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나 연세대는 여전히 2심에 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시 합격자 발표일이 3주 앞이고 연세대는 버티기에 들어갔으니, 애타는 수험생들만 본안소송 결과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할 판이다.연세대 수시 자연계 논술시험이 치러진 날은 지난 10월12일이었다. 연세대가 법적 공방으로 시간을 끌지 않고 시험문제 사전 유출 사실을 알아챈 즉시 바로 재시험을 치렀다면, 입시 일정에 대혼선이 빚어질 우려는 애초에 없었다.연세대 측은 지난 19일 열린 이의신청 심문에서 재시험이 불가한 이유에 대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를 들었다. 재시험을 치를 경우 1차 시험에서 이미 합격선 안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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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상 1위’ 대한민국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핏빛 노을을 배경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인물을 담고 있다.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리는 듯 착각이 들 만큼 생생하다. “해 질 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서서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뭉크가 붙인 제목은 ‘자연의 절규’였다. 1893년 작품임을 생각하면 그는 인류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역대급 폭염·홍수가 되풀이되고 식량·식수난에 ‘기후플레이션’까지 삶을 옥죄는 현재를 살아내는 인류는 뭉크의 이 ‘절규’가 실감날 것이다.한국이 이태 연속 ‘기후악당 국가’로 국제적 인증을 받았다. 지난 18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지난해 3위에 오른 ‘오늘의 화석상’ 1위를 수상했다. 화석상은 전세계 기후환경운동단체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1999년부터 기후협상 진전을 막는 나라 1~3위를 선정해 수여해왔다.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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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사관리사 ‘호칭’
성인 남성을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을 때 흔히 쓰는 말은 ‘사장님’이나 ‘선생님’이다. 여성들은 대충 ‘사모님’ ‘여사님’으로 퉁치기 마련이다. 이 호칭은 여성 직원이 많은 식당에선 ‘이모’가 된다. ‘여기요’ ‘아줌마’라고 부르면 정 없고 무례하게 들릴까봐 이렇게 부른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런 호칭이 ‘언니’ ‘이모’ 등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우리말 예절에 부합한다.당사자들이 싫다는데도 이모는 아줌마를 대용하는 사회적 용어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집안에서 가사·육아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를 ‘이모님’으로 부른 지는 제법 됐다. 부모 입장에선 내 아이를 진짜 이모처럼 돌봐달라는 생각도 깔렸을 테다. 알다시피 이모님은 직업을 나타내는 명칭이 아니다. 존중을 담은 마법의 단어 같지만, 성역할 고정관념과 가사노동에 대한 낮은 인식이 반영돼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가사노동자를 ‘가사관리사’로 부르자고 제안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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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
결혼과 출산, 늘 붙어 다니던 두 단어 사이의 연결고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반대로 출산을 해도 그것이 당연히 결혼했음을 의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17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9세 청년 중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42.8%에 달했다. 2014년 30.3%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과 비교하면 10년 새 12.5%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런 생각의 변화를 반영하듯 실제 비혼 출산도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태어난 아기 23만명 중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기가 1만900명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1981년 비혼 출산의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최대 비중이다.하지만 해외와 비교하면 한국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프랑스는 비혼 출산이 전체의 62.2%, 영국은 49%, 미국은 41.2%에 달한다. 이들 나라도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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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영관급 안보 조각’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군인 사랑은 유별나다. 그는 1기 때 국가안보보좌관 4명 중 2명을 예비역 장성에서 기용했고, 비서실장도 해병대 4성 장군을 앉혔다. 적어도 초기까지는 짐 매티스 국방장관 등 베테랑 얘기를 경청하는 듯했다. 군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이해할 만한 행동이었다. 트럼프는 베트남전 징집 대상이었지만 학업·장애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입영을 연기하다 결국 면제를 받았다. 자서전과 인터뷰에서 10대 때 다닌, 엄한 규율의 사립중등학교 시절을 마치 군 생활처럼 부풀려 자랑하곤 했다.트럼프가 2기 외교안보 참모진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군인 사랑은 이어졌다. 그런데 1기 때와 달리 장성은 없고 모두 영관급이다.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왈츠는 대령,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소령, 국가정보국장 털시 개버드는 중령 출신이다. 군 경험이 있지만 여단 이상 규모를 통솔해본 적 없다. 트럼프는 ‘정치적 올바름’에 우호적 시각을 가진 장성들을 심사해 전역시킬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