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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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7
  • [여적] 박사 ‘백수’
    [여적] 박사 ‘백수’

    지난해 최악의 청년실업 문제로 골치를 앓던 중국에서 ‘란웨이와(爛尾娃)’란 신조어가 유행했다. 직역하면 ‘썩은 꼬리를 가진 아이’라는 의미로, 고등교육을 받았는데도 끝 무렵이 좋지 않음을 뜻한다. 이 말은 ‘짓다 만 아파트’ ‘마무리가 좋지 않은 집’이란 뜻의 ‘란웨이러우(爛尾樓)’에서 유래했다. 자금부족으로 시공이 중단돼 방치되거나 미분양된 아파트에 빗대 화려한 스펙을 지니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학력자를 가리킨다. 이들은 부모에게 기대 생계를 꾸리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이처럼 암울한 상황은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 조사’ 결과, 응답자 1만442명 가운데 직업을 갖고 있거나 취업이 확정된 비율은 70.4%로 집계됐다. 10명 중 3명은 ‘백수’란 얘기다. 특히 청년...

    2025.03.03 18:15

  • [여적]미-우 정상의 ‘난투 외교’
    [여적]미-우 정상의 ‘난투 외교’

    니키타 흐루쇼프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1894∼1971)에겐 전설적인 일화가 따라다닌다. 흐루쇼프는 1960년 10월12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다 구두를 벗어들고 연단을 두들기는 해프닝을 벌였다. 필리핀 대표가 소련 강제수용소를 비난하자 흥분해서 그랬다지만, 그의 행동은 무례한 소련 외교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훗날 ‘구두’ 사진이 조작된 것으로 판명났고, 신뢰할 만한 증언도 없다. 변하지 않는 건 흐루쇼프가 외교 무대에서 충분히 무례했다는 점이다.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도 최근 보기 드문 외교 무례의 사례였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흐루쇼프의 연설과 비슷하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주먹만 들지 않았을 뿐 난투에 가까운 두 정상의 설전으로 서명 절차만 남겨뒀던 ‘광물협정’이 무산되는 외교 참사가 빚어졌다.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은 “종전을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2025.03.02 19:08

  • [여적] ‘1.5인자’ 머스크
    [여적] ‘1.5인자’ 머스크

    권력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속성상 부자나 형제지간이라 해도 나눌 수 없다. 혹여 권력자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자신의 힘과 권한을 나눠주다간 2인자가 어느새 권력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최고권력자와 2인자 사이엔 늘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돼왔다.물론 철저하게 몸을 낮춰 권력자를 모신 2인자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다. 그는 평생 마오쩌둥 밑에 있었지만 굴종에 가까운 처신으로 1인자를 모셨다. 그 덕택에 숙청을 피해가며 27년간 국무원 총리 자리를 지켰다. 반대로 비참한 말로를 겪은 2인자도 적지 않다. 린뱌오 국방부장은 마오쩌둥이 대약진운동 실패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변함없이 그를 지지했다. 그 공로로 후계자에 지목됐지만, 권력투쟁 와중에 마오의 의심을 피하지 못한 채 비행기로 도주하다 몽골 사막에 추락사했다.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

    2025.02.27 18:15

  • [여적]김건희에 ‘밉보인 죄’
    [여적]김건희에 ‘밉보인 죄’

    권력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기업이나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상당수가 권위주의 정권 때 음으로 양으로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 반면 재계 순위 7위이던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 삽시간에 공중분해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권력은 누군가를 끌어줄 수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살생부란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인치가 법치를 압도하는 후진적 사회일수록, 사유화된 권력일수록 그 정도가 더하다.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정권의 실질적 1인자라는 말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상당수 사람들이 ‘그래도 설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김 여사를 등에 업고 잘나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명태균씨 주장과 통화 녹취록을 보면, 김 여사는 김영선 전 의원이 2022년 5월 창원 의창의 보궐선거 공천을 받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뿐인가. 2024년 총선 앞엔 김 전 의원에게 ‘김상민 전 ...

    2025.02.26 18:15

  • [여적]‘The buck stops here’
    [여적]‘The buck stops here’

    대통령은 한 시대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 최후 책임자이다. 한가롭게 남 탓을 할 수 없는 자리다. 옛 왕조시대 임금들이 가뭄 때마다 기우제를 지낸 것도 하루하루 힘든 백성들의 삶에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뉴스를 볼 때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비가 오지 않아도 다 내 책임인 것 같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심경이었을 것이다. 해리 트루먼은 대통령직의 ‘무한책임’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4선 임기를 시작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 4월 사망하자 당시 부통령이던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취임이 확정되자 “달과 별, 모든 행성이 내게 떨어지는 기분”이라며 그는 압박감을 토로했다.하지만 트루먼은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며 냉전기 세계질서를 바꿔나갔다. 취임 넉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루스벨트가 비밀리에 추진했던 핵무기 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을 승인했고, 이 무시무시한 프로젝트 실행 후 ...

    2025.02.25 21:24

  • [여적]중국의 동풍과 서풍
    [여적]중국의 동풍과 서풍

    마오쩌둥이 1957년 11월 볼셰비키 혁명 40주년을 맞아 세계 공산당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는 모스크바대학 강당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고 연설했다. 이 말은 중국 소설 <홍루몽>의 ‘동풍이 서풍을 압도하지 않으면 서풍이 동풍을 압도한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동풍은 사회주의 진영을, 서풍은 자본주의 진영을 의미했다. 그 당시 마오쩌둥의 ‘동풍’엔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소련을 누르겠다는 뜻도 있었다. 결국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다.마오쩌둥의 ‘동풍 압도론’ 언급 이후 중국은 자체 생산한 기술품에 ‘동풍’이란 말을 곧잘 붙였다. 공업의 기초가 열악한 상황에서 기술 현대화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겠단 것이다. 1958년 5월12일 처음 생산한 중국산 승용차 브랜드는 ‘동풍’에 중화민족을 의미하는 금색 용을 조합한 ‘동풍금룡(東風金龍)’이었다. 1...

    2025.02.24 18:15

  • [여적]우크라이나 전쟁 3년
    [여적]우크라이나 전쟁 3년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개전 3년이 된다. 양측 사망자는 130만명으로 추산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피비린내 난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선 1000만명이 국내외 피란길에 오르고, 주택은 10% 이상 파손됐다. 참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전쟁이 발발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다. 새로운 냉전 구도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양상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급변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도로 종전 협상도 속도가 붙고 있다.트럼프는 ‘침략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옹호한다. 그의 타깃은 ‘피해국’ 우크라이나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더니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곤 종전을 위해 석유·가스·광물 등 천연자원 수익의 50%를 포함해 5000억달러(약 ...

    2025.02.23 18:15

  • [여적] 김재규 재심
    [여적] 김재규 재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심 재판이 사형 집행 45년 만에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19일 김 전 부장의 ‘내란목적 살인’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의 가혹 행위가 인정되는 만큼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 사유가 있다”고 봤다. 당시 불투명한 수사·재판에 대한 ‘사법적 교정’일 테지만, 오래도록 정치적 금기였던 사건에 대해 아주 무거운 ‘역사의 법정’도 함께 열리게 됐다.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 그는 법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당시는 부마민주항쟁으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고, 핵개발 문제로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유신독재가 내치·외치에서 모두 중대 고비에 처했던 즈음이었다. 김 전 부장은 이듬해 5월20일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 혐의가 인정돼 사형이 확정됐고, 나흘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김 전 부...

    2025.02.20 18:48

  • [여적]비동의 강간죄
    [여적]비동의 강간죄

    ‘노 민스 노 룰’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성범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더 나아가 ‘예스 민스 예스 룰’은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만 합의된 성관계로 본다.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유럽 등에선 이 룰을 성폭력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보고 있다.국내에선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예스 민스 예스’ 원칙을 적용해 성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비록 ‘9시간의 촌극’으로 끝나긴 했지만, 여성가족부도 2023년 1월 ‘비동의강간죄’를 추진하려고 하긴 했다.당시 법무부·여당 반대에 하루도 안 돼 정책을 뒤집었는데, 그 배경에 대통령실이 있었단 사실이 19일 새롭게 드러났다. 김종미 전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법 추진과 관련해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서면경고, 담당 과장은 서면주의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관리 및 검토 소...

    2025.02.19 18:46

  • [여적]김건희·명태균의 ‘총선 전망’
    [여적]김건희·명태균의 ‘총선 전망’

    지난해 11월15일 구속된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날 잡으면 한 달 만에 대통령이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고 호기를 부렸다. 그로부터 18일 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란을 일으켰고, 국회는 12월14일 그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명씨가 구속되고 한 달이 채 안 된 때였다. 명씨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명씨가 지난 18일 김건희 여사의 또 다른 공천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녹취록 제목은 ‘김건희와 마지막 텔레그램 통화 48분’이었다. 명씨가 지난해 2월16~19일 김 여사와 5~6번 통화한 내용을 복기한 것이라고 한다.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김상민 전 검사가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명씨는 그런 사람 공천하면 총선에서 진다고 난색을 표했다.그 뒤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명씨가 “이 추세로 가면 110석을 넘지 못합니다”라고 하자, 김 여사는 “아니에요, 선생님. 보수정권 역사 이래 최다석을 얻을 거라 했어요”라고 반박한다. 명씨가...

    2025.02.18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