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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적]시민군의 어머니
    [여적]시민군의 어머니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시민투쟁위원회 대변인 윤상원은 1980년 5월26일 오후 5시 전남도청 2층에서 외신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불과 몇시간 뒤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우리는 오늘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했다.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윤상원은 다음날 새벽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전두환 신군부의 5·17 계엄에 맞서 열흘간 전개된 광주민주화운동은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그로부터 46년이 흐른 7일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부근 4층 건물 외벽 전체에 어깨에 총을 메고 마이크를 쥔 윤상원의 대형 벽화가 등장했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벽화 작업을 추진한 민중미술가 이상호 작가는 이날 제막식에서 “원래 있던 존 레넌의 낡은 벽화를 교체한 자리에 광주가 가장 사랑하고 기억해야 할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윤상원 열사의 구순 노모에게 제막식은 각별한 자리였다. 때마침 44년간 보관해온 솜...

    2026.05.07 18:42

  • [여적] 디지털 성범죄 ‘원스톱 대응’
    [여적] 디지털 성범죄 ‘원스톱 대응’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5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에는 멜로니 총리가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진짜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딥페이크 이미지였다. 멜로니 총리는 “딥페이크는 위험한 도구”라며 “누구든지 속이고, 조종하고, 표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믿기 전에 확인하고, 공유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경고했다.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인 멜로니는 2024년에도 딥페이크 기술로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남성 2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멜로니 총리 사례는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디지털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국내에서도 영상을 매개로 한 디지털 성범죄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물이 ‘몰카(몰래카메라)’라는 이름으로 촬영·유통됐다. 1996년 개설된 ...

    2026.05.06 19:08

  • [여적]나비쉼터
    [여적]나비쉼터

    201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는 관객들이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영화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뮤지션을 꿈꾸던 멕시코 소년 미구엘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코코>는 멕시코인들이 ‘죽은 자들의 날’을 기념하는 풍습을 배경으로, 사후세계와 죽음을 부정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풀어냈다. 영화 말미 미구엘이 증조할머니 코코를 위해 노래 ‘리멤버 미(기억해 줘)’를 부르는 장면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폭발시킨다.영화 속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에 뿌리는 꽃이 주황색 마리골드이다. 사후세계를 이토록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경기 파주의 어린이 전용 산분장지 ‘나비쉼터’는 언뜻 마리골드가 뿌려진 ‘다리’ 같기도 하다. 산분장은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장례 방식이다. 서울 시립 용미리 제...

    2026.05.05 18:53

  • [여적]북한축구단의 방남
    [여적]북한축구단의 방남

    축구는 남북 체육교류 역사를 상징하는 종목이다. 그 기원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부터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두 도시를 오가며 벌였던 경평축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민족정신 고취를 우려해 1942년 모든 구기 종목 경기를 중단시키며 명맥이 끊겼던 경평축구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부활했다. 그러나 분단선이 굳어지면서 남북교류가 끊겼고 경평축구도 더는 열리지 못했다.탈냉전기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남북 체육교류에도 다시 물꼬가 트였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가 10월11일 평양에서, 10월23일 서울에서 열렸다. 1차전은 북한이 2-1로, 2차전은 남한이 1-0으로 승리했지만 신문들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는 제목을 달았다. 국가대표팀 간 친선 경기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한 2005년 8월14일 경기가 마지막이었다.남북 스포츠 교류는 한반도 정세와 무관할 수 없었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하노이 노딜’ 이후 얼어붙은 ...

    2026.05.04 17:51

  • [여적]성수동‘잉어킹’
    [여적]성수동‘잉어킹’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피카츄는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그 귀여운 외양을 알 정도로 유명하다. 1996년 닌텐도 게임에서 시작된 포켓몬스터는 이듬해 만화가 방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았다. 151가지로 시작한 포켓몬들은 진화와 변종을 거듭하며 현재 1025종으로 불어났다.포켓몬 세상에서 ‘잉어킹’은 보잘것없는 존재다. 능력이라곤 ‘튀어오르기’뿐인데, 적에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계속해서 튀어오르다 보면 강력한 용 ‘갸라도스’로 진화한다. 잉어킹 이야기는 낭만적인 성장담이다. 약자에서 강자로 변모하는 이 극적 서사는 팬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왔다. 그래서인지 해당 카드는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지난 1일 희소성 높은 ‘잉어킹’ 카드를 준다는 소식에 서울 성수동 일대가 아수라장이 된 모양이다. 포켓몬코리아가 포켓몬 탄생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행사에 인파가 몰리면서 안전 문제로 행사가 ...

    2026.05.03 18:12

  • [여적]어느 이태원 상인의 죽음
    [여적]어느 이태원 상인의 죽음

    2022년 10월29일 당시 33세 A씨는 이태원 해밀톤호텔 부근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태원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와 방역 지침이 완화된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순식간이었다. 인파에 밀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A씨는 가게를 뛰쳐나와 쓰러진 사람들을 옮겼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 이후 이태원 상권에 인적이 끊기자 A씨는 1년 뒤 주점을 닫고 다른 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무엇보다 그날의 충격과 고통이 그를 짓눌렀다. A씨는 지난 19일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어졌고 29일 숨진 채 발견됐다.사회적 참사는 생존자와 유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피해자들은 그날의 기억이 갈수록 뚜렷해진다고 한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지 가슴속 응어리를 부여안고 버틸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생존자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2026.04.30 18:03

  • [여적] ‘예스 민즈 예스’
    [여적] ‘예스 민즈 예스’

    2024년 프랑스 사회는 남편이 건넨 약물로 의식을 잃고 50명의 남성에게 9년간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 경악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저항하지 않아 동의한 줄 알았다”고 항변했지만, 피해자인 지젤 펠리코는 “부끄러움은 가해자들 몫”이라며 이들을 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의회는 폭력·협박이 있어야만 인정되던 강간죄를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규정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피해자의 저항’이라는 낡은 신화를 거부한 사례는 스페인에도 있다. 2016년 한 축제에서 18세 여성을 남성 5명이 집단 성폭행한 ‘울프팩(늑대 무리)’ 사건이다. 1심 재판부가 “피해자가 항거 불가능할 정도의 폭력이 없었다”며 강간죄 대신 성적 학대죄를 적용하자 분노한 민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강간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성관계 시 명시적 동의가 없으면 강간으로 간주하는 ‘성적 동의에 관한 포괄적 법률’ 제정(2022년)의 동력이 됐다....

    2026.04.29 18:03

  • [여적] 지정생존자
    [여적] 지정생존자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테러로 미 대통령과 대통령직 승계 서열 상위 인사들이 모두 숨지자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이 백악관 주인이 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승계 서열 13위 커크먼이 대통령직에 오른 것은 대통령 국정연설 당시 ‘지정생존자’여서 참변을 피했기 때문이다.지정생존자란, 미국에서 국가 최고위층이 모일 때 권력 승계 서열에 있는 각료급 한 명을 제외해 안전한 곳에 두는 제도다. 수뇌부가 한꺼번에 유고되더라도 정부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지정생존자는 행사 직전 비밀리에 군부대 등으로 이동한다. 대통령급 경호가 이뤄지며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로 불리는 ‘핵가방’을 든 참모도 따라붙는다.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60일, 지정생존자>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로 무너지고 대통령이 사망한 뒤 국무위원 중 ...

    2026.04.28 18:10

  • [여적]미국의 ‘차가운 내전’
    [여적]미국의 ‘차가운 내전’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였다. 대다수 시민이 임금으로, 퇴직 후 연금으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중산층 비율은 60%가 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세계화가 본격화하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각한 나라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비백인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는 백인 보수층의 박탈감과 분노를 자극해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다.트럼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트럼프 지지층도 마찬가지다. 2021년 1월6일 트럼프의 대선 불복을 옹호하는 시위대의 연방의사당 폭력 점거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드러냈다. 지난해 트럼프가 재집권한 후 정치·사회적 갈등은 더 커졌다. 지난 1월 이민세관집행국(ICE) 요원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여성 시민을 총으로 쏴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바버라 월터는 저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2026.04.27 18:26

  • [여적]피해자 연대가 이끈 전세사기법
    [여적]피해자 연대가 이끈 전세사기법

    소설가 김훈은 2019년 10월 ‘생명안전 시민이야기 마당’에서 “집에 누워 있으면 사람들 몸 터지는 소리가 매일매일 들린다”고 말했다. 매년 2000명가량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돈이 많고 권세가 높은 집 도련님들이 산재로 죽었다면 이 문제는 진즉 해결됐다”고 했다. 하지만 “산재 현장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교육을 잘 못 받고, 말하자면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다.돈도 없고 ‘빽’도 없는 노동자들이 ‘여의도 정치’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좁은 길은 연대와 싸움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죽음과 투쟁의 역사다.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끼여 죽거나 병들어 죽은 노동자의 동료, 노조,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연대해 싸웠기 때문에 산안법은 이윤보다 생명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향으로 개정됐다.지난 23일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특별법) 개정안...

    2026.04.26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