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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실세’ 머스크 리스크
일론 머스크는 2020년 “도지코인이 세계 금융시스템을 정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모두가 변덕스러운 갑부의 시덥잖은 장난이라 여겼다. 그러나 ‘트럼프의 귀환’ 후 그의 말은 더 이상 농담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머스크는 진짜 ‘도지(DOGE)’의 수장이 됐다.‘도지’는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딥 스테이트’라 지칭하는 연방정부 관료들을 대거 해고하기 위해 신설할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의 약자이다. 도지코인에서 따온 다분히 의도적인 명칭이다. 트럼프 당선 후 150%가량 치솟은 도지코인은 ‘도지 파파’로 불리는 머스크가 ‘도지’ 수장으로 임명된 날, 또 한번 폭등했다. 이제 머스크는 한 손에는 돈의 권력을, 다른 한 손에는 세계 최대 패권국인 미국의 정치권력까지 쥐었다.사실 머스크는 트럼프 당선으로 날개를 달기 전부터도 우려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행동 때문이 아니다. 외려, 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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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진 ‘코리안 드림’
1994년 ‘인화’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홀로 한국에 왔다. 한국인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미등록 노동자가 됐고, 몽골로 돌아갔지만 남편은 딴살림을 차린 후였다. 인화는 어린 아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다시 왔다. 공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웠다. 다섯 살이던 아이는 호준(한국 가명) 또는 호이준(몽골 가명)이라고 불렸다.한국에서 미등록 이주민의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법을 어긴 존재가 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고등학교까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로 자란다. 법무부가 2021년 구제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내 출생이 아닌 호준은 대상이 아니었다. 이듬해 영유아기에 입국해 6년 이상 살아온 미등록 아동에게도 체류자격을 허용했지만, 호준은 재입국 기회를 얻기 위해 몽골로 자진출국한 뒤였다.한국 사회는 그에게 끊임없이 ‘자격’을 물었다. 2022년 단기비자로 돌아온 뒤에도 두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32세 청년이 지난 8일 산재로 목숨을 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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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골프 외교
미국 역대 대통령은 대부분 골프를 즐겼다. 그중에서도 우드로 윌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은 ‘백악관에 없으면 골프장에 있다’는 말이 나온 대통령이었다. 외국 정상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골프가 빠지지 않았다. 상대국 정상에게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의 긴 시간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였다. 2014년 1월 당시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하와이에서 오바마와 골프 회동을 했는데, 후일 “5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골프 한 게임을 한 것이 양자회담을 10년 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9일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아가 1000만원이 넘는 일본제 혼마 골프 드라이버를 전달했다. ‘골프광’ 트럼프에게는 ‘취향 저격’ 선물인 셈이다. 두 사람은 이듬해 2월 첫 미·일 정상회담 후 전용기를 함께 타고 플로리다로 가서 5차례나 골프 라운딩을 하며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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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끝나는 교제폭력
“그렇게 입지 마” “○○ 만나지 마” 교제폭력의 시작은 ‘강압적 통제’라고 한다. 2007년 에번 스타크 미국 럿거스대학 교수가 처음 사용한 ‘강압적 통제’는 “상대방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비난하기, 가족·지인 등에게서 고립시키는 등의 가해 행위”를 전반적으로 일컫는다.처음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 욕구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헤어지자”는 말이 살인의 방아쇠가 됐다. 다른 이유도 많다. 가해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잠자는데 불을 켜서” “텔레비전 전원을 끄지 않아서” “휴대전화 잠금을 풀어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피해자들을 죽였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집계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이다. 살인이 미수에 그쳐 목숨을 건진 여성은 최소 311명에 이른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까지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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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틀린 ‘트럼프 여론조사’
미 대선이 ‘유례없는 초박빙’이라더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트럼프 지지율을 과소평가한 것은 연속 세 번째다. 2016년에는 85~99% 확률로 힐러리 클린턴 승리를 점쳤지만,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샤이 트럼프’로 불리는 백인 노동계층 유권자들을 간과한 탓이었다. 2020년에는 트럼프가 조 바이든에 8%포인트 이상 차이로 완패하리라 예상했지만 실제 표차는 이보다 훨씬 적었다.절치부심한 전문가들은 세 번째 실수를 피하기 위해 이번 대선에서는 응답자 학력이나 과거 투표 방식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식으로 트럼프 지지율이 더 잘 반영되도록 여론조사를 보정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가중치가 너무 높은 것 같다는 노파심 때문이었는지, 선거 당일 카멀라 해리스의 승리 가능성을 더 높이는 쪽으로 앞다퉈 수정했다.여론조사가 실제 여론을 100%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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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국계 상원의원
미 국회의사당에 가면 걷는 뒷모습만 봐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구별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상원의원 위세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미 상원은 연방정부의 임시예산안 의결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라 해도 상원 동의 없이는 장관 한 명조차 임명할 수 없다. 이렇다보니 미국 상원의원들은 스스로를 웬만한 나라의 국가원수급으로 여긴다고 한다.앤디 김 미 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이 5일(현지시간)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상원에 입성했다. 상원의 위상을 감안하면 재미 한국계 공동체에 큰 경사라 할 수 있다. 그는 “50년 전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소아마비로 고생했던 저의 아버지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으로 왔다”면서 “그 이민자의 아들이자 공립학교 학생 출신이 상원의원이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실제 아시아계 소수인종인 그가 상원에 도전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민주당은 뉴저지에서 약 18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군림한 밥 메넨데스 의원이 부패 사건에 연루돼 당적을 잃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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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의 ‘법적 신분’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현직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기 전 70일 이후의 첫번째 수요일에 치러진다. 대통령 당선 후 취임까지 대략 70일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지낸다.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법률상 신분이다. 헌법 68조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와 예우도 받는다. 언론의 관심도 대통령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린다. 실질적인 국가 권력 서열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통령 당선인 시기를 가장 바쁘게 보낸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일 것이다. IMF 외환위기의 급한 불을 끄느라 동분서주했다. 당선인의 권한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일 때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측으로부터 선임 청탁과 함께 1230만원 상당의 의류를 수수한 혐의(사전수뢰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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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해리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자 ‘샤이 트럼프’가 주목받았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던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다고 반증하기도 어려웠다. 이 말에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론조사 업계, 이에 의존하는 주류 언론이 자신들의 처참한 예측 실패를 사후 정당화한 측면이 있었다.5일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는 ‘히든 해리스’라는 말이 뜨고 있다. ‘수줍어하는’ 대신 ‘숨은’이란 말이 민주당 후보를 꾸미는 게 차이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정해진 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지키다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에게 추월당한 조사가 나오자 부쩍 더 주목받았다. 이 말에는 민주당이 아직 못 찾아낸 해리스 표를 끌어내려는 선거 전략이 담겨 있다.대표적 사례는 주요 경합주에서 방영되고 있는 30초 분량 TV광고이다. ‘누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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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의 ‘원전 데브리’ 반출
일본 도쿄전력이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후 처음으로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격납용기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반출한 데브리 파편은 길이 5㎜ 이하, 무게 3g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소량이다. 동전 크기보다 작은 파편을 끄집어내는 데만 무려 13년이 걸린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로 안에는 아직 880t의 데브리가 남아 있다.사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것은 전 세계에 전례가 없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핵연료봉이 녹아 건물 잔해물과 함께 굳어진 데브리는 지금도 치명적인 양의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어 인간은 물론 로봇의 접근조차 쉽지 않다. 도쿄전력은 2017년 원자로 안으로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을 들여보냈지만, 시간당 650㏜(시버트)로 추정되는 엄청난 방사능 등의 영향으로 로봇이 작동을 멈춰 실패한 바 있다.이번 반출 작업도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원자로 안이 데브리로 꽉 차 있어, 로봇이 들어갈 통로 확보부터 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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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국극
박녹주는 딸을 나라 제일 명창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두 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명창 박기홍에게 배울 때는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소리를 하느라 목에서 피가 났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박녹주는 1948년 임춘앵·김소희 등 당대 여성 명창들과 함께 최초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창설한다. 그는 훗날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울에는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예술단체가 있었지만 모든 운영이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은 꽤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종이 돼서 순전한 여성 단체를 만든 것이다.”여성국극에서는 여성 소리꾼이 남성 배역까지 소화했고, 기존의 창극과 달리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 등의 비중이 컸다. 이후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판소리계 판도가 바뀌었다. 호동왕자나 이몽룡 역을 맡은 남역 배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