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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5
  • [여적]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여적]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며 대통령 선거전을 치른 검사 출신 윤석열은 집권 이후 설득과 통합 대신 무속과 갈라치기로 국정을 운영했다. 노조를 “건폭”, 과학계를 “이권 카르텔”이라고 모욕하더니 끝내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갔다. 전 국민에 듣기평가를 강요한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보듯 거짓말조차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민심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했다면 35개월 내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초유의 퇴행은 없었을 것이다.윤석열은 독단과 불통으로 민심과 담을 쌓았으나 명품백 수수·국정개입·주가조작·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숱한 의혹은 ‘아내 사랑’으로 감쌌다. 자연히 국정 지지율은 갈수록 내리막이었고, 총선에선 참패했다. ‘입틀막’으로 해결되지 않자 “좋아 빠르게 가” 방식으로 한 방에 해결하려던 게 비상계엄이다. 그래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한다는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은 한 치도 동의...

    2025.04.04 15:13

  • [여적] 관세·계엄의 ‘작용 반작용’
    [여적] 관세·계엄의 ‘작용 반작용’

    공을 벽에 던지면 벽도 공을 똑같은 힘으로 튕겨낸다. 작용·반작용의 원리, 이른바 뉴턴의 제3 법칙이다.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할 때, 그 힘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힘이 반대 방향으로 발생한다는 우주 속 자연계 섭리다. 연료를 태우면 로켓은 가스를 분사한다. 그 반작용으로 로켓은 추진력을 얻어 공중으로 치솟는다. 중력은 반작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도 잘못된 지식이다. 지구가 사과를 당기는 것과 같은 크기로 사과도 지구를 당기고 있다.우리 몸도 작용·반작용으로 움직인다. 발로 땅에 힘을 가하면 땅은 몸을 위로 밀어 올린다.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도 의자가 같은 힘으로 몸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물체가 상호작용을 하고, 힘이란 것은 늘 쌍으로 존재한다.작용·반작용은 비물리적인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내가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도 나를 친절하게 대한다. 내가 미워하면 상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니 인과응보(&#...

    2025.04.03 18:32

  • [여적]4·3과 작별하지 않는다
    [여적]4·3과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은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다. 2003년 정부 보고서는 ‘1947년 경찰의 3·1절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진행된 역사’라고 했을 뿐 4·3의 성격, 역사적 평가는 규정하지 않았다. 발생할 수 있는 학살의 모든 유형이 망라됐고 미군정·정부·토벌대·무장대 등 그 누구도 주민 학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건이라서다. 4·3을 보는 상반된 시선은 작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상수의 사촌형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지만, 서북청년단 출신 고모부는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군경을 옹호한다. 이처럼 수난과 항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4·3의 현실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제주 곳곳에 선연한 4·3의 피와 비명 흔적은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다. 억울하게 목숨 잃은 3만여명의 희생자들, 그리고 빨갱이 가족 누명을 쓴 채 숨죽...

    2025.04.02 18:28

  • [여적]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
    [여적]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

    “어떻게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빼앗겠습니까.” 자신의 비서를 성폭력한 혐의로 법정에 섰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최후 진술이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결심공판까지 오면서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이 최후진술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부당한 폭력이고, 무시무시한 공포인지를.성폭력은 힘을 가진 이가 성적 언동으로 힘이 약한 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래서 성폭력은 권력형 범죄이지만, 특히 정치인이 가해자인 사건은 피해자에게 크나큰 압박이다. 가해자들은 막강한 위력을 무기 삼아 범죄를 부인하고, 음모론도 곧잘 편다. 용기를 낸 피해자의 고소·고발에 “왜 이제 와서”로 응수하기 일쑤다. 이들과 친소 관계로 얽혀 있는 비호 세력들도 피해자에게 회유와 압박을 서슴지 않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때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하지 않았나.성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 피해자를 대하는 잘못된 통념은 2차 가해로 이어진다. 정치권의...

    2025.04.01 18:48

  • [여적]‘내전 속 지진’ 미얀마의 비극
    [여적]‘내전 속 지진’ 미얀마의 비극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군부가 다음해 2월1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다. 반세기 만에, 불안정하게나마 쟁취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다시 무너졌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세 손가락 경례’로 저항했다. 군부는 평화적 시위조차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2021년 9월 반군부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NUG)는 군부 정권에 전쟁을 선언했다. 내전이 본격화했다. 올해 1월 기준 수도 네피도와 제2 도시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는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론 반군의 통치 지역이 많다. 어느 쪽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내전 중이다. 피란민만 300만명을 넘고, 전체 인구(5400만명)의 3분의 1이 인도적 위기에 놓였다.지난 28일 미얀마 중부 내륙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진앙에서 33㎞ 떨어진 만달레이 지역 피해가 극심하다. 고대 왕실 수도이자 불교 중심지인 이곳의 왕궁·사원...

    2025.03.31 19:41

  • [여적]산불 기부 릴레이
    [여적]산불 기부 릴레이

    2014년 온라인을 달군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릴레이 기부의 원조 격으로 꼽힌다. 이 운동은 미국 루게릭병협회(ALS)가 이 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했다. 얼음물을 뒤집어 쓴 영상을 올리고, 3명을 지목하면 24시간 이내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방식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한국의 기부 문화도 소셜미디어 덕분에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돕기 위한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 촉구 집회 때 벌어진 ‘선결제 릴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영남 산불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 마늘밭, 사과 농장, 송이밭이 잿더미가 됐다. 실의에 찬 이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며 몰리는 온정과 선의에 감동한다. 온라...

    2025.03.30 18:15

  • [여적] WTO 체제의 종언
    [여적] WTO 체제의 종언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교역 진흥을 위해 창설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한국이 정식 가입한 것은 1967년이지만, 실은 한국전쟁 시기부터 GATT 가입이 추진된 바 있다. 박노형·정명현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9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GATT 회원국(체약국) 회의에 주영공사가 참석했고, 약소국인 한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GATT에 가입하는 데 회원국 3분의 2가 동의했다. 그러나 전시 상황으로 인해 의정서 서명을 몇차례 연기한 끝에 가입이 무산됐다.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은 경제성장을 위한 밑천이 없었던 탓에 수출이 국부(國富)의 유일한 축적 경로로 여겨졌다. GATT 가입으로 한국은 시장을 적게 개방하면서도, 회원국들의 개방된 시장을 활용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생활수준이 낮고 경제발전 초기에 있는 회원국들을 배려해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특혜(GATT 18조B항)가 한국에 적용된 것이다. GATT ...

    2025.03.27 18:15

  • [여적]작가들의 ‘탄핵 시국선언’
    [여적]작가들의 ‘탄핵 시국선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미국에선 조지 오웰(1903~1950)의 소설 <1984>가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4>는 ‘빅 브러더’라는 절대 권력자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오웰을 불러낸 건 극우 포퓰리즘뿐만이 아니다. 전체주의 망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더해졌다. 오웰의 소설 속 정부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운 트럼프 2기 정부와도 통한다.돌아보면, 대통령 윤석열이 이끈 한국 또한 ‘1984’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판적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시대착오적 이념전쟁으로 사회를 갈라친 ‘대한민국 오세아니아’였다. 이렇게 민의를 거스르는 정부에 맞서는 수단이 시국선언이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항쟁 때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2016년 국정농단 때...

    2025.03.26 18:15

  • [여적]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기각’ 경고
    [여적]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기각’ 경고

    국가와 민족, 공동체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전통적 가치다. ‘보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기존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세력이 보수라는 점에도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헌정질서, 민주주의’는 보수의 정치적 사명으로 꼽혀왔다.2004년 ‘뉴라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보수도 이 궤도에선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뉴라이트는 “반공 일색의 종전 우파를 대체할 새롭고 세련된 우파”라며 세상에 나왔다. 박근혜 탄핵으로 주춤했던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재부상했다. 정부 요직만도 김영호 통일부 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광동 전 진실화해과거사위원장 등 한둘이 아니다. 3년간 ‘진보 좌파 척결’이 이들의 국정과제였고, 극우에 가까운 이념전도 불사했다. 2022년 화물노동자 파업을 ‘북한만큼 위험한’ 행위로 규정했고, 윤석열부터 정권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공격했다. 퇴행과 극우화. 한국 보수가 이 두 단어로 설명되는 현실은 진...

    2025.03.25 19:16

  • [여적] 혁명가 아이돌
    [여적] 혁명가 아이돌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 23일 잠정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 이틀 전 서울중앙지법이 어도어의 ‘기획사 지위 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데 따른 것이다.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시적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반짝이는 재능은 당분간 보지 못하게 됐다.뉴진스는 법원 판결 직후 ‘타임’과 인터뷰에서 “이게 한국의 현실일지 모른다”며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때 이미 활동 중단을 암시한 것인데, ‘혁명가’라는 말 속엔 표준전속계약으로 옥죄는 어도어와 K팝 산업이란 골리앗에 맞서는 의지가 담겼다.계약 의무와 경영권 문제, 팬들에 대한 책임 등 뉴진스가 처한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들을 두고 설왕설래도 오간다. 하지만 주목할 것 하나는 그들의 ‘선택’이란 관점이다. 멤버 해린은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저희에게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했다. 혜인은 “저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고 그래야만...

    2025.03.24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