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적
첫 한국계 상원의원
미 국회의사당에 가면 걷는 뒷모습만 봐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구별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상원의원 위세가 대단하다는 뜻이다. 미 상원은 연방정부의 임시예산안 의결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라 해도 상원 동의 없이는 장관 한 명조차 임명할 수 없다. 이렇다보니 미국 상원의원들은 스스로를 웬만한 나라의 국가원수급으로 여긴다고 한다.앤디 김 미 연방 하원의원(민주당)이 5일(현지시간)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상원에 입성했다. 상원의 위상을 감안하면 재미 한국계 공동체에 큰 경사라 할 수 있다. 그는 “50년 전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소아마비로 고생했던 저의 아버지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으로 왔다”면서 “그 이민자의 아들이자 공립학교 학생 출신이 상원의원이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실제 아시아계 소수인종인 그가 상원에 도전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민주당은 뉴저지에서 약 18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군림한 밥 메넨데스 의원이 부패 사건에 연루돼 당적을 잃자... -
여적
대통령 당선인의 ‘법적 신분’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현직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기 전 70일 이후의 첫번째 수요일에 치러진다. 대통령 당선 후 취임까지 대략 70일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지낸다.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법률상 신분이다. 헌법 68조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와 예우도 받는다. 언론의 관심도 대통령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린다. 실질적인 국가 권력 서열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대통령 당선인 시기를 가장 바쁘게 보낸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일 것이다. IMF 외환위기의 급한 불을 끄느라 동분서주했다. 당선인의 권한을 악용한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일 때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측으로부터 선임 청탁과 함께 1230만원 상당의 의류를 수수한 혐의(사전수뢰 후... -
여적
히든 해리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자 ‘샤이 트럼프’가 주목받았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던 유권자들이 대거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렇다고 반증하기도 어려웠다. 이 말에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론조사 업계, 이에 의존하는 주류 언론이 자신들의 처참한 예측 실패를 사후 정당화한 측면이 있었다.5일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는 ‘히든 해리스’라는 말이 뜨고 있다. ‘수줍어하는’ 대신 ‘숨은’이란 말이 민주당 후보를 꾸미는 게 차이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정해진 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지키다 주요 경합주에서 트럼프에게 추월당한 조사가 나오자 부쩍 더 주목받았다. 이 말에는 민주당이 아직 못 찾아낸 해리스 표를 끌어내려는 선거 전략이 담겨 있다.대표적 사례는 주요 경합주에서 방영되고 있는 30초 분량 TV광고이다. ‘누구 ... -
여적
13년 만의 ‘원전 데브리’ 반출
일본 도쿄전력이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후 처음으로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격납용기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반출한 데브리 파편은 길이 5㎜ 이하, 무게 3g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소량이다. 동전 크기보다 작은 파편을 끄집어내는 데만 무려 13년이 걸린 것이다. 후쿠시마 원자로 안에는 아직 880t의 데브리가 남아 있다.사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것은 전 세계에 전례가 없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핵연료봉이 녹아 건물 잔해물과 함께 굳어진 데브리는 지금도 치명적인 양의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어 인간은 물론 로봇의 접근조차 쉽지 않다. 도쿄전력은 2017년 원자로 안으로 카메라가 장착된 로봇을 들여보냈지만, 시간당 650㏜(시버트)로 추정되는 엄청난 방사능 등의 영향으로 로봇이 작동을 멈춰 실패한 바 있다.이번 반출 작업도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원자로 안이 데브리로 꽉 차 있어, 로봇이 들어갈 통로 확보부터 쉽... -
여적
잊혀진 여성국극
박녹주는 딸을 나라 제일 명창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두 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명창 박기홍에게 배울 때는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소리를 하느라 목에서 피가 났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박녹주는 1948년 임춘앵·김소희 등 당대 여성 명창들과 함께 최초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창설한다. 그는 훗날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울에는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예술단체가 있었지만 모든 운영이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은 꽤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종이 돼서 순전한 여성 단체를 만든 것이다.”여성국극에서는 여성 소리꾼이 남성 배역까지 소화했고, 기존의 창극과 달리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 등의 비중이 컸다. 이후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판소리계 판도가 바뀌었다. 호동왕자나 이몽룡 역을 맡은 남역 배우에게... -
여적
지자체의 ‘소개팅’
한때 ‘마담뚜’라 불리는 직업이 성행했다. 마담뚜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는데, 책 속 주인공 초희와 두 자녀를 둔 50대 부자의 결혼을 마담뚜가 연결해줬다. 마담뚜는 부유층에 중매를 서고 거액의 사례금을 받다가 사회 문제가 돼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지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는 결혼정보업체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과거 매파에서 마담뚜, 전문업체로 중매 시장의 산업화가 이뤄진 셈이다.심정적으로, 사람들은 중매보다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를 원한다. 한 번쯤은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요즘 청년들 중에는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를 선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솔로> <환승 연애> 등 연애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런 욕구를 대변한다고 하겠다.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청년들의 만남 주선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
여적
WP의 ‘대선후보 지지 포기’
워싱턴포스트(WP)가 미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준비했다가 사주인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의 지시에 따라 철회한 후, 불과 사흘 만에 20만명의 구독자를 잃었다. 전체 유료 구독자의 8%에 달하는 숫자다. 앞서 LA타임스도 해리스 지지 선언을 하기로 했다가 사주 반대로 불발되자, 이에 항의하는 편집위원들이 줄사퇴하는 후폭풍을 겪고 있다.사설을 통해 지지 후보를 밝히는 것은 미 언론의 오랜 관행이다. 시대가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누가 그에 가장 가까운 후보인지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판단 잣대를 제공하는 걸 언론의 공익적 사명이라 여겼다. 언론사의 지지 후보가 정권과의 친소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고, 의견과 사실은 철저히 분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그러나 몇년 전부터 이런 관행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마이애미헤럴드 등 30여개 신문사 사주인 맥클래치가, 2022년에는 시카... -
여적
이시바의 ‘26일 천하’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뒤 미군정 지배를 받다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다음날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 국권 회복과 동시에 미국의 ‘기지국가’가 된 일본이 외교안보에서 미국이 그어둔 선을 넘는 일은 드물었다.그 선을 넘다 몰락한 대표적 인물이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다.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가 무르익자 다나카 총리는 미국보다 7년 앞선 1972년 중국과 깜짝 수교를 단행했다. 미국은 일본의 ‘추월’이 괘씸했다. 다나카는 내친걸음으로 시베리아 유전 개발을 목적으로 소련에 접근했다. 다나카의 ‘자원외교’는 동서 대립이라는 냉전질서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또 다시 미국의 노여움을 샀다. 그는 결국 미국 록히드 항공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기세가 꺾였다.다나카의 ‘정치적 아들’인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도 비슷한 운명을 걸었다. 오자와는 1993년 펴낸 <일본개조계획>을 통해 ‘보통국가론’을 주창했는데, 미·일 ... -
여적
로제의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노래 ‘아파트’(APT.)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내외 주요 음악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더니, 뮤직비디오는 지난 18일 공개 5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기록했다.로제는 이 노래를 한국에서 유행했던 술자리 게임 ‘아파트’에서 착안해 만들었다고 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로제와 마스는 이 게임을 재현한다. 마스가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우리말로 ‘건배’를 외치는 모습은 국내 팬들 사이 화제가 됐다.노래 흥행으로 한국식 영어 표현인 ‘아파트’ 단어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소셜미디어에선 아파트가 ‘아파트먼트’(apartment)를 뜻하는 말인 줄 모르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발음 ‘아파트(AP-A-TEU)’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덩달아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까지 인기다. 1982년 발표된 이 노래 음원에는 “아파트 42년 만에 재건축 축하합니다” 등 댓글이 ... -
여적
“내 직감은 트럼프, 믿지는 말라”
예전만 못하다 해도 여전히 ‘선거 족집게’로 명성이 높은 네이트 실버의 ‘촉’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박빙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미 대선 향방이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실버가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내 직감은 트럼프”라고 밝혔다. 그런데 단서를 하나 달았다. “하지만 나는 물론 누구의 직감도 믿지 말라.”실버는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맞붙었던 2008년 미 대선에서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맞히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어쩌다 얻어걸린 우연은 아니었다. 2012년 대선 때도 오바마의 승리는 물론 50개 주의 모든 결과를 맞혀 ‘예측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하지만 표심은 숫자가 아니고, 예측은 예언이 아니다. 그의 분석은 2016년 대선에서 크게 빗나갔다. 71%의 확률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였다. 다른 전문가들의 확률(85~99%)보다 조금 낮았다는 것이 그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