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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6
  • [여적]작가들의 ‘탄핵 시국선언’
    [여적]작가들의 ‘탄핵 시국선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 미국에선 조지 오웰(1903~1950)의 소설 <1984>가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4>는 ‘빅 브러더’라는 절대 권력자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오웰을 불러낸 건 극우 포퓰리즘뿐만이 아니다. 전체주의 망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더해졌다. 오웰의 소설 속 정부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운 트럼프 2기 정부와도 통한다.돌아보면, 대통령 윤석열이 이끈 한국 또한 ‘1984’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판적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시대착오적 이념전쟁으로 사회를 갈라친 ‘대한민국 오세아니아’였다. 이렇게 민의를 거스르는 정부에 맞서는 수단이 시국선언이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로 이어졌고, 1987년 6월항쟁 때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2016년 국정농단 때...

    2025.03.26 18:15

  • [여적]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기각’ 경고
    [여적]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기각’ 경고

    국가와 민족, 공동체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전통적 가치다. ‘보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기존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세력이 보수라는 점에도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헌정질서, 민주주의’는 보수의 정치적 사명으로 꼽혀왔다.2004년 ‘뉴라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보수도 이 궤도에선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뉴라이트는 “반공 일색의 종전 우파를 대체할 새롭고 세련된 우파”라며 세상에 나왔다. 박근혜 탄핵으로 주춤했던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재부상했다. 정부 요직만도 김영호 통일부 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광동 전 진실화해과거사위원장 등 한둘이 아니다. 3년간 ‘진보 좌파 척결’이 이들의 국정과제였고, 극우에 가까운 이념전도 불사했다. 2022년 화물노동자 파업을 ‘북한만큼 위험한’ 행위로 규정했고, 윤석열부터 정권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공격했다. 퇴행과 극우화. 한국 보수가 이 두 단어로 설명되는 현실은 진...

    2025.03.25 19:16

  • [여적] 혁명가 아이돌
    [여적] 혁명가 아이돌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 23일 잠정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 이틀 전 서울중앙지법이 어도어의 ‘기획사 지위 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데 따른 것이다.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시적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반짝이는 재능은 당분간 보지 못하게 됐다.뉴진스는 법원 판결 직후 ‘타임’과 인터뷰에서 “이게 한국의 현실일지 모른다”며 “한국이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이때 이미 활동 중단을 암시한 것인데, ‘혁명가’라는 말 속엔 표준전속계약으로 옥죄는 어도어와 K팝 산업이란 골리앗에 맞서는 의지가 담겼다.계약 의무와 경영권 문제, 팬들에 대한 책임 등 뉴진스가 처한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타협하지 않는다’는 그들을 두고 설왕설래도 오간다. 하지만 주목할 것 하나는 그들의 ‘선택’이란 관점이다. 멤버 해린은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저희에게 꼭 필요한 선택”이라고 했다. 혜인은 “저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고 그래야만...

    2025.03.24 19:05

  • [여적]“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여적]“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1974년 9월2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지학순 주교의 석방을 촉구하는 ‘순교자 찬미 기도회’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기도회는 사제들의 첫 시국선언이었고, 반유신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사제들은 시국선언에서 “한 사람의 집권자가 긴급명령이라는 권력남용으로 국민의 존엄성을 짓밟았다”고 비판하며 유신 철폐, 민주헌정 회복, 국민 기본권 존중을 촉구했다.이 시국선언 후 사제단은 유신·군부 정권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고난받는 자들의 언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5·18민주화운동 때 유가족들을 품으며 광주의 한을 달랬던 고 김수환 추기경, 1987년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축소를 폭로하며 6월 항쟁 방아쇠를 당겼던 김승훈 신부. 국가가 부재했던 세월호·이태원 참사, 쌍용차 투쟁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눈물을 닦아준 것도 사제들의 기도였다.한 사회가 퇴행할 때 종교 지도자의 말은 중요하다. 양심·정의의 실현이라는 종교 본연의 역할이 공동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

    2025.03.23 19:06

  • [여적] 광기에 죽어가는 가자 어린이들
    [여적] 광기에 죽어가는 가자 어린이들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갑자기 떨어진 미사일에 맞았고,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는 폭격에 집이 무너져 엄마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하얀 천에 덮인 주검들 앞에서 살아남은 가족은 통곡하고, 안치소에서 어린 딸의 얼굴을 확인한 아버지는 오열했다.휴전을 파기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재개하면서 ‘지옥도’가 다시 펼쳐졌다. 많은 어린이가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졌다. 현장을 목격한 기자는 “이 참극을 설명할 단어가 없다”고 전했다. 1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의 민간인 436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183명이 어린이였다.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발발 후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이다. 지난해 12월까지 1년여간 전쟁으로 사망한 가자 주민 4만4700여명 가운데 44%가 어린이인 것으로 집계됐다(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보고서). 가장 약하고 여린 이들이 폭력의 광기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살아남은 아...

    2025.03.20 18:13

  • [여적] ‘겸, 겸, 겸’
    [여적] ‘겸, 겸, 겸’

    침실 겸 거실 겸 부엌인 원룸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돈도 아낄 겸 운동도 할 겸 걸어서 출퇴근한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목적을 이루면, 흔한 말로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 먹고다. 그래서일까. 정부가 18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회의를 주재한 사람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그 역시 각종 직무를 겸하며 1인3역 중이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서 본디 임무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 역할까지 맡고 있다.‘대통령 겸 국무총리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세 묶음의 ‘관계장관회의’답게 이날 회의에선 미국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부터 서울 집값 안정과 농촌 소멸 대응 전략까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현안이 논의됐다.구체적인 정부 대책으론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과 유니콘 벤처기업 등에 75조원 규모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2025.03.19 18:15

  • [여적] 꽃샘폭설
    [여적] 꽃샘폭설

    자고 일어나니 눈 세상이었다. 꽃샘추위가 찾아온 18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 폭설이 쏟아졌다. 봄을 알리는 절기인 춘분을 코앞에 두고 곳곳에 대설특보가 내려졌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울산, 광주는 ‘가장 늦은 대설특보’ 기록을 15년 만에 갈아치웠다. 3월 중순에 추위와 폭설이 한꺼번에 찾아온 건 영하 40도의 찬 공기를 머금은 강한 소용돌이가 북극에서 내려오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이 한반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린 강북구는 11.9㎝의 적설량을 기록했고, 경기 남양주와 이천, 의정부 등에는 10㎝가 넘는 눈이 쏟아졌다.때아닌 큰 눈에 시민들은 당황했다. 지난주만 해도 얇은 점퍼와 재킷을 입어도 될 만큼 포근한 날씨가 급변한 탓이다. 잠시 가벼워진 옷차림이 다시 두꺼워졌다. 직장인들은 다시 장롱을 뒤져 패딩을 꺼내 입고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했다. 예기치 못한 눈으로 인한 피해도 속출했다. 의정부경전철은 열차를 ...

    2025.03.18 18:15

  • [여적]‘미국의소리(VOA)’
    [여적]‘미국의소리(VOA)’

    일제강점기인 1942년 어느 날 경성방송국(KBS 전신)의 기술직원 성기석은 직접 만든 단파 수신기의 다이얼을 돌리다 우연히 한국어 방송 전파를 잡았다. 방송은 ‘자유의 종은 울린다’는 제목으로 매일 밤 애국가와 함께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해 30분가량 진행됐다.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VOA)’가 1942년 8월29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송출한 것이었다.조선총독부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조선에서 모든 외국 단파방송 청취를 금지하고 고성능 수신기도 통제했다. 신문과 라디오는 일본군의 승전보 일색이었다. 그러나 VOA를 통해 미드웨이 해전 참패 등 날로 기울어가는 일본의 전황이 소개됐다. 이런 소식은 VOA 방송을 몰래 듣던 방송국 직원들을 통해 조금씩 밖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그해 12월 일제 경찰의 대대적 단속으로 방송국 직원, 학생, 언론인 등 200명 넘게 체포됐다. 7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6...

    2025.03.17 18:21

  • [여적]광장과 일상
    [여적]광장과 일상

    #. 2021년 1월6일(현지시간),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이 연방의회 의사당을 점령했다. 트럼프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군중을 선동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3일 미국 하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2025년 1월19일,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극렬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경찰과 취재진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영장을 발부한 판사실까지 뒤지고 부쉈다.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을 ‘적’으로 내몰았다. 미국 정치학자 바버라 F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 즉 아노크라시(anocracy)로 추락한 국가는 내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아노크라시로...

    2025.03.16 19:19

  • [여적] ‘트루먼과 포드’ 사이, 최상목
    [여적] ‘트루먼과 포드’ 사이, 최상목

    국가를 지탱하는 권력의 근본적 힘은 ‘책임’에서 나온다. 권력의 무게에 비례해 운명을 걸어야 할 결정이 많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에서의 치명적 두 죄악 중 하나로 “책임성의 결여”를 꼽았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4일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명태균 특검법을 거부할 거라고 한다. 법안 공포시한(15일)까지 뭉개다 밀린 숙제 털 듯하는 것이다. 3개월도 안 돼 8번째 거부권인데,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보다 빠른 속도다. 여소야대 국회의 입법권을 거부권으로 무력화하던 대통령 윤석열(25회 행사)의 권한만 아니라 악정도 승계한 듯하다. 오죽하면 ‘거부권 권한대행’이란 말이 나올까.“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던 최 권한대행의 초심은 딱 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임명까지였다. 다수 국민이 요구하는 내란특검법은 ‘정치권 합의’를 촉구하며 두 번 거부했다. 마은혁 헌재재판관 임명도 ‘여야 미합의’를 이유로 거부하더니 헌재의 권한침해 결정에 “존중...

    2025.03.13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