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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솔아 푸르른 솔아
‘눈이 내리네’ 노래는 프랑스 샹송의 번안이다. 원곡보다 번안이 더 살갑게 귀에 감긴다. 이 겨울 찬 바람 무릅쓰며 광장에 서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에게도 탄일종이 댕댕댕 귓전에 감돌길. 이 나라에 없는 사이 ‘눈이 내리네’ 노래의 날들이었나봐. 소나무도 그렇지만 단톡방마다 첫눈 소식이 대박. 두어 주에 걸쳐 유럽에 다녀왔다. 의장 주교님과 신부 수녀님, 목사님들 따라서 평화를 비는 순례사절단의 일원으로다가. 믿기지 않겠으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면전에서 뵙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에 오월 광주의 소년시민군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의 사인을 받아들고 갔는데, 이를 순례단은 선물로 드리고 왔다. 어김없이 눈이 오고, 소년도 오고, 살아 돌아오는 이들을 마중하는 시절이렷다. 최근 내 선곡음반 시리즈 ‘여행자의 노래’ LP반을 발매했다. 어디서 제작할까 찾다가 눈꽃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알판을 찍어왔다. 검고 둥그런 ‘엘피판’에다 그간 지... -
겨를
덜 하기보다는 잘하고 싶어서
전 세계 개발자와 창업가들이 시제품 정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올려 사용자의 반응을 확인하는 플랫폼이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된 지난 2년 동안 이 사이트를 문지방 닳듯 들여다보며 제품 타깃의 변화를 봤다. 데이터로 분석해보면 재밌는 게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1월까지의 데이터 6만여건을 모아 분석해봤다. 이 가운데 ‘오늘의 제품’으로 꼽히는 최소 요건인 1000건을 득표한 제품들을 뽑아보니 딱 300개가 나왔다. 시계열로 어떤 기능의 제품들이 더 관심받고 덜 출시됐는지 알고 싶었고, 맥락적으로 분류 참 잘하는 챗GPT와 함께 거칠게 데이터를 군집별로 쪼개봤다. 총 6개의 클러스터가 나왔다. 이 중 20개월 내내 높은 비중을 보였던 군집은 조직에서의 특정 업무를 빠르게 돕는 B2B 제품들이었다. 웹사이트를 생성하고 팀 협업을 하고 정보 관리를 하는 도구들이 여기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기업 생산성 측면에서 AX를 하려는 타깃을 노린 제품이 많았고,... -
임아영의 레인보 Rainbow
미완의 1980, 밝혀야 할 2024
계엄령에 동원 젊은 장병들또 희생양이 될 뻔했다이 사태를 모의한 수뇌부에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정부 수립 이래 가장 길었던 계엄은 1979년 10월27일부터 440일간 지속된 비상계엄이다. 신군부 세력의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계엄은 5·18이라는 비극을 불러왔다. 과거처럼 보였던 ‘역사’가 ‘현실’로 들어온 것은 지난 4월 44년 만에 5·18 당시 계엄군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를 취재하면서다. 여전히 일상에서 계엄의 시대를 지우지 못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계엄군 여럿에게 강간을 당한 피해자는 아직도 계엄군이 입고 있던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그때 맡았던 술 냄새, 땀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구토한다고 했다.1981년 해제됐던 계엄령이 2024년 다시 선포됐다. 스웨덴에서 열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을 일주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의 상처를 들춰냈고 ‘친위쿠데타’나 다름없는 ‘비상계엄’... -
직설
아름다운 최애의 아이
만약 좋아하는 아이돌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로 예상되는 시대에 이희주 소설가의 단편소설 ‘최애의 아이’(<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인기 남자 아이돌의 정자가 인공수정 시술용으로 판매되는 사회가 배경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우미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인 유리의 정자가 공여되었다는 소식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냉철하게 결정한다. 아름다운 유리의 아이를 낳아야겠다고.이 대담한 선택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첫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빠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려왔던 젊은 여성 팬의 사랑은 이희주의 소설에서 더 이상 모호하거나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정서적, 성적, 미학적 취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쾌락의 기술이다. 또한 성숙하고 현실적인 이성애 관계에 돌입하기 전에 거치는 예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 -
김숨의 위대한 이웃
이발사 박씨
아파트 5층 높이의 미루나무가 머쓱히 서 있던 신작로에 이발사 박씨가 마을에 등장한 건 1970년대 말. 다섯 살쯤 먹은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사내아이와 함께였다. 버젓한 버스표지판도 없던 그곳에 그들을 내려준 버스는 알감자 같은 흙먼지를 매달고 거칠게 내달리다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대전과 충북 옥천 사이에 지빠귀 둥지처럼 들어앉은 마을을 두 쪽으로 가르며 관통하던 신작로. 박씨는 신작로에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집을 얻어 이발관을 냈다. 농사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마을사람들의 아들들이 도시로, 중동으로 돈을 벌러 떠나던 시절이었다. 신작로에는 제법 규모가 큰 방앗간과 가게가 꼭 붙어있었다. 방앗간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은 보름달처럼 노란 양철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 가게로 향하곤 했다. 버스를 타고 면 소재지까지 나가 이발하던 사내들은 제법 버젓한 박씨의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고 수염을 다듬었다. 아이들도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 -
기고
톨스토이의 ‘모두를 위한 예술’
올 한 해를 보내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뒷걸음치고 있는 듯해 매우 불안한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마지막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애인예술의 예산 편중문제를 지적해 장애인예술계가 어수선하다.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일까 한탄스럽다.톨스토이는 1889년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없는 ‘평등한 예술’‘모두를 위한 예술’을 주장했고, 모두가 참여하는 만인의 예술을 ‘좋은 예술’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보편적 예술을 지향하는 예술사상은 마침내 2000년 유네스코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 다시 말해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예술활동을 선언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 실천을 위해 장애인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개관된 장애인전용 극장 명칭이 ‘모두예술극장’이고, 곧 오픈되는 장애인전용 전시장 이름도 ‘모두미술공간’인 것을 보면 한국도 ‘모두를 위한 예... -
특별기고
윤석열 일당을 체포하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명백한 내란 및 군사반란이다위중한 시간에 국회로 달려가고소셜미디어에서 싸운 이들이긴 밤, 민주주의를 지켰다지난 밤 한숨도 못 잤다.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처의 비명 소리에 놀라 달려갔더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곧이어 ‘대통령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기에서 내린 특전사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려는 광경을 생중계로 보면서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몇몇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아연해서 뭐라고 말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저 “이건 내란입니다”라고 몇 군데 쓴 게 전부다. 즉시 서울로, 국회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총칼이 두려워졌다. 망설이는 동안 국회로 의원들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군경의 저지를 뚫고 모인 국회의원들이 결국 비상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윤석열은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체념한 듯 ... -
역사와 현실
성현 말씀보다 더 가까운 몽둥이
봄가을이 되면 지역 향교는 좋은 날을 골라 춘추 대제를 거행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대표 성현들을 대상으로 그 지역 수령 등 양반과 유생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지역 수령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여 제사를 주재했고, 지역 권력(향권)을 대표하는 양반과 유생들이 이를 주관했다. 당연히 춘추 대제에서 제관을 맡거나 주관하는 일은 향권을 상징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보니 향권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제사 주관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824년 가을, 안동향교가 그랬다.당파의 측면에서 안동은 영남 남인의 메카였지만, 중앙 정계에서 퇴출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은 영남 선비들의 당색도 바꾸었다. 유일한 자기 성취가 관직 진출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당색으로 관직이 막혀 있었으니 그들의 전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게다가 안동은 기호 노론에서 수령이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수령들은 전향한 기호 노론들에게 향교의 향권을 맡겨 향전(鄕戰)을 부... -
사설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 윤석열 물러나라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만장일치 해제 요구로 150분 만에 무위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과 그 민심에 부응한 여야가 ‘친위 쿠데타’에 가까운 헌정 중단 시도를 막아냈다. 백척간두 위기였던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는 정상 궤도를 회복하게 됐다.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로 헌법 수호 의무를 진 대통령 자격을 상실했다. 사익을 위해 헌법을 파괴한 행위는 온전히 그가 책임질 몫이 됐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국민이 피 흘리고 희생될 수도 있는 결정을 한 것은 용납받기 어렵다. 헌법 정신과 절차에 따라 탄핵됨이 마땅하다. 헌정 질서 유린에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면, 탄핵 이전이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이다.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유로 ‘내란’적 상황을 들었다. 내란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형법 87조) 경우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하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91조... -
사설
경제도 안보도 국격도 위기, 정부 비상 관리해야
대통령 윤석열의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국가 위신도 추락 위기를 맞았다. 위기의 진원지가 된 대통령은 리더십을 잃었다. 국가 기관들은 주도면밀하게 비상시국을 관리해 경제·안보 모두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윤석열의 ‘계엄 정국’은 한밤중 6시간 만에 막을 내렸지만, 경제·외교·문화적 후폭풍은 거세지고 있다. 외환·금융 시장은 흔들렸고, 국가 신인도는 크게 훼손됐다. 비상계엄 발령 소식에 원·달러 환율은 1442.0원까지 치솟으며 2년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4일 외환시장 개장 이후에도 1400원대를 웃돌며 심리적 마지노선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스피는 전장보다 49.34포인트(1.97%) 내린 2450.76에 개장한 뒤 1.44% 하락한 2464.00으로 장을 마치며 하루 만에 2500선을 내줬다. 기관·개인의 순매수에도 외국인은 대거 순매도했다. 경기 침체와 미국 통상정책 악재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진 것이다.K팝과 한...